그러나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어린 자녀는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과 권위를 가진 아버지에게 대드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데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만 해도 아버지의 무서운 표정과 폭력적인 말투가 생각되어서 때론 심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딸보다 남자인 아들의 경우에 더 잘 들어맞는데 그 이유는 자금은 꽤나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가부장제에 기반한 남아선호 사상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전과는 달리 출산율이 바닥을 길 정도로 무척이나 낮아서 아예 아이를 가지지 않는 부부도 있고 아이를 가져도 단 한 명만 가지는 것이 지배적인 추세가 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자유로운(?) 경쟁이 급격하게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낙관적인 미래를 꿈 꾸며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원하는 보수를 받는 꿈마저 점점 더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아 결국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포기한 젊은 부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마치 무슨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넘어서 어린 시절 동화 속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해서 동일시하듯이 아빠는 외아들에게, 엄마는 외동딸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높디높은 기대를 걸고는 아이가 헉헉대고 싫증을 내고 짜증을 부려도 좀처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 이건 이다음에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다"라고 자신의 모진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자녀를 통해 대리보상을 받고 이를 통해서 "자유로운" 무한경쟁에서 낙오되어 상처 받고 무너진 자존감을 마술적으로 복원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특히 아직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부모와 똑같은 인간적 존재로서 자신의 취향과 관심과 특정한 잠재적 소질을 가진 인간인 자녀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의 사실상 일방적인 강요에 가까운 규칙과 명령은 숨이 막힐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물질적인 욕구의 충족뿐 아니라 심리적인 욕구의 충족도 부모, 특히 엄마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아이들이 부모의 규칙이나 명령에 반기를 들고 반항(?) 한다는 것은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 박탈되지 않더라도 부모, 특히 엄마의 보살핌과 사랑을 박탈당해서 심리적으로 볼 때 버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물리적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고립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아직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킬 힘이 많이 부족해서 부모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린아이들에게 부모, 특히 엄마의 사랑과 관심으로부터 축출당한다는 것은 이른바 심한 "분리 불안"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런 외상(trauma)에 가까운 분리불안, 특히 정도가 심할 뿐 아니라 그 지속의 정도도 긴 분리 불안을 경험한 아이들은 자신 안에 인간에 대해 불신하는 심리적 도식(schema)이 생기게 되고 이 도식적 틀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해석하게 될 위험이 있는데 이런 도식적 해석과 판단이 위험한 이유는 과거에 자신의 원초적이고 절대적인 보호자로부터 버림을 당했다는,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상처 때문에 사람들을 완벽한 내 편, 즉 언제나 어떤 경우에도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사랑해 주는 내 편과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미워하는 적으로 나누어서 판단할 개연성이 높고 그로 인해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거나 비판을 받거나 심지어 그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면 심한 배신감을 느끼면서 그가 나를 버렸다고 믿을 수 있는데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불신의 도식적 틀은 마치 독버섯이 자라듯이 점점 더 마음속에서 강고해지는 악순환을 그릴 위험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