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이상한 걸까? (7)

by 조태진

우리는 과중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에 부딪혔을 때 신경이 예민해져서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평상시 같지 않아서 "나, 왜 이러지? 좀 이상해" 또는 "내가 평상시 나 같지 않아"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완벽히 일반화하기는 곤란하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 있는데 이를 정신의학계에선 "우울 삽화(depressive episode)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는 평상시에는 멀쩡해 보이다가도 발작적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철학적 표현 중에는 "양적인 증가가 어떤 특이점에서 질적인 변화를 초래한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표면적으로 볼 때 변화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성질의 것으로 보이다가 어떤 특정 지점에 도달하면 이전과는 다른 성질의 것으로 질적((質的) 변화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 쓰는 예는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현상인데 즉 물이 끓는점에 도달하면 물이 종전과는 다른 성질의 기체로 변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울증을 앓고 있는 당사자도 그렇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히 엄마 같은 가족 구성원들이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마치 특정한 물체만 통과할 수 있는 필터처럼 그를 특정한 또는 고정된 도식적 시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그전에는 무심코 지나쳤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우울증의 증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마치 중년에서 노년으로 진입한 사람이 예전에도 어떤 사소한 일들을 잊어버리곤 했는데 대중매체나 입소문 등으로 치매 현상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를 접한 뒤 그에 대해 예민해져서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사소한 일들을 잊어버리지만 이를 "의식하게" 되어서 "혹시 내가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라고 불안해하면서 의심하는 현상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위에서 저는 "양적 증가가 어느 지점에서 질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유명한 철학적 명제를 언급했습니다. 아를 우울증에 대입해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우울감이 어느 지점에서 심리 질환으로 분류되는 우울증으로 질적 변화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독일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 들었던 정신병리학 수업의 교재에는 "전문가들도 평범한 우울감과 병적인 우울증을 구분하는데 곤란을 겪는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의학계에서는 평범한 우울감과 병적인 우울증을 나누는 결정적인 척도로 "그가 우울함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는가와 더불어 그 우울함으로 인해 일과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방해받는가? 즉 우울함으로 인해서 하고 있는 일과 영위하던 일상의 삶이 거의 불가능한 정도인가?"라는 기준을 사용해서 우울증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주목 효과"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입소문이나 티브이 방송의 교양 프로그램 등에서 피상적인 정보를 얻은 사람은 이전에는 그저 일상의 불쾌한 현상으로 여기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그의 말이나 행동 그리고 그와 연관된 감정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면서 피상적으로 얻은 우울증에 대한 정보를 잣대로 상대방이나 자신을 판단하려 들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가 또는 내가 혹시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의심해서 생긴 적지 않은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침소봉대 식으로 자신의 최근 경험과 그에 대한 자신의 정서적 반응을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평가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이로 인해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를 찾게 된다면 일종의 선입견과 같은 "낙인 효과"로 인해 그는 전문가에 의해서 실제로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우울증 진단에 있어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그가 무엇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것인가?라는 의문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정신의학의 특성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은 심리적 질환의 원인을 기질적 요인, 즉 유전적인 요인으로 돌려버리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경향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환경적 자극을 받아도 별 영향을 받지 않거나 그저 불쾌한 경험쯤으로 여기면서 지나치는데 그 사람은 그 자극에 병적으로 오랫동안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병적으로 심한 우울감에 빠진 사람이 자신이 왜, 즉 무슨 이유로 그런 심한 우울감에 빠졌는지 명백하게 또는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다는 점과 노래의 멜로디처럼 서로 연결되어 보이는, 우울감을 유발하고 지속시켰고 심화시킨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런 유사한 자극에 예민해진 사람이 그런 성질을 가진 일련의 자극들을 점점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면서 주관적으로 자신과 결부시켜 해석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갑상선 이상증과 같이 심리적 원인이 아니라 신체적인 원인에 의해 유발되는 심리적 장애도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지만 말이지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정신의학계에서 우울증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 "우울 삽화(depressive episode)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평상시에 멀쩡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책 속에 드문드문 들어있는 삽화처럼 돌발적으로 심한 우울감에 빠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아입니다. 이를 "방아쇠 효과(trigger effect)"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어떤 외상적( traumatic) 경험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예전과 비슷하게 일상을 살다가도 공포나 두려움으로 강하게 충전되어 기억 속에 잠복된 외상적 경험 때문에 그 외상적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자극에 노출되면 다른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과민반응, 이를테면 병적인 두려움이나 포 반응을 보이거나 마치 귀신 들린 듯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내용의 말을 횡설수설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거칠게 비교하면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자 술을 마신 사람이 만취가 되어서 그의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내용의 말을 마치 맥락이 없는 듯이 횡설수설 늘어놓는 현상이나 사람이 무슨 일로 몹시 흥분했을 때 분명히 그를 흥분시킨 것과 관련이 있다고는 여겨지지만 앞뒤 없이 게다가 뜬금없어 보이는 얘기를 늘어놓는 현상과 그 양상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울 삽화를 적용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무슨 일로 (심하게) 우울해지면 일이 손에 좀처럼 잡히지 않고 밥맛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런 우울감을 유발한 사건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잠도 잘 오지 않는 신체적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일견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병적인 우울증의 증상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우울함과 "병적인" 우울증은 어떻게 분간이 가능할까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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