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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태진 Nov 15. 2021

불안과 마주칠 때 (2)

자신의 사적 영역(privacy)을 침범하거나 부당하고 억을 하게 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면 어떡하나? 또는 내가 취하고 싶은 것의 획득에 실패하면 어떡하나?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불안, 때로는 심한 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경고 신호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선택이 "위험하다" 또는 "잘못됐다"와 같은 경고음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기본적인 기능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마치 미로에 갇힌 것처럼 어디로 가야 빠져나갈 수 있을지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혼란상태에서 갈팡질팡 하는 것과 같이 불안이라는 경고음은 이런저런 선택에 대해 서로 결이 다른, 또는 내용이 다른 경고음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앞선 예를 다시 들자면 "다른 엄마들은 자기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미리 엄청난 선행학습을 시키는데 나만 안 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로 인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 때문에 몹시 불안해질 수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벅찬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고 자주 짜증도 내는데 학원까지 다니게 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까? 게다가 그 벅찬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서 성적이 오르기는 할까?" 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때 예상되는 이익과 불이익을 따져 보기 위해 어떤 근거를 찾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의 경우 확인되지 않은 불이익, 즉 아이가 벅찬 공부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게다가 학원의 선행교육이 성적을 올리는데 별 소용도 없다는 막연한 생각보다 다른 엄마들은 다 선행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다른 엄마들이 그런 선택을 한 데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확률적으로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 안전한 선택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 말고도 우리는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옛 속담으로 표현하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간다"는, 예상되는 불이익을 피하려는 조심스러운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안전함을 위해 통상적으로 쓰는 전략적인 방법 중에는 "다수에 속하기"라는 방법이 있는데 이 전략적 방법의 근거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다수가 선택한 선택지에는 다 그럴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로부터 공격, 즉 비난받고 조롱받고 무시당할 위험이 존재하며 "혹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마저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에는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 다시 말해서 심한 부담은 그에 비례하는 심한 스트레스를 일으켜서 쉬고 싶고 자고 싶어 진다는 인간의 속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백기 들고 투항하듯이 오롯이 다수에 편입해서 막연하기 짝이 없는 안전감을 느끼도록 할 뿐입니다. 사실은 부담이 너무 크면 능률이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성취도 측면에서는 하향곡선을 그리게 만들고  아이가 무척이나 힘겨워서 행복이나 즐거움은커녕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만성적인 노이로제 상태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뻔한 "사실"에 애써 눈 감으면서 말이지요.  


최근에 저는 독일 정신과 의사가 쓴 "불안의 두 얼굴"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 속에는 이가 썩어서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치과에서 썩은 이를 뽑을 때 몹시 아픈 마취 주사를 맞게 될 것이라는 "예기 불안", 즉 미래에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되는 고통을 피하려고 망치로  자신의 이빨을 부숴버리는 어이없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건강 려증 (hypochondria)"이라는 심리적 질환이 있는데 이는 의사로부터 신체에 전혀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는데자기가 질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을 때까지 계속 다른 의사들을 찾아가는 일종의 강박적 행동을 가리키는 심리 질환으로서 이 또한 예상되는 주관적인 불이익을 피하려는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앞서 저는 불안이 예상되는 가깝거나 비교적 먼 미래의 불이익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우리가 내려야 할 어떤 선택이나 결정과 관련해서 우리 내면에서 보내는 경고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를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principle of pleasure)에 기대어 설명하자면 가까운 또는 비교적 먼 미래에 닥칠 것 같은 예상되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를 묻는 내면의 정서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이때 불안이란 정서가 동반되지 않고 건조한 질문만 내면이 보낸다면 이른바 각성 상태의 위기의식은 느낄 수 없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저 사소한 잡념 취급을 받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질의 불안을 "잠재우겠다"또는 "잊어버리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강박적으로 어떤 도취적이고 열광적 활동, 이를테면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다거나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광란에 가까운 춤을 춘다던가 액션 영화 같이 빠르고 소란스러운 내용의 영화를 본다던가 하는 행동을 한다면 순간적이나마 그동안은 불안이 느껴지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자신 안에서 발생한 느낌이기 때문에  당연히 억지로 잊으려고 해 도 잊히지 않고서 마치 매복한 복병처럼 불안은 도취적이고 열광적인 활동을 통해 몹시 흥분된 상태가 가라앉으면 다시 돌아와서 "상황이 이렇게 보이는데 어떡하면 좋을까?"를 다시 묻게 될 것입니다.(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굳이 말씀드리자면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서 춤을 추거나 액션 영화를 보는 것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억지로 잊으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때 그 불안을 자꾸만 무시하고 억압해서 잊으려 한다면 마치 적이 우리 편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척후병처럼 우리 마음은 점점 더 절박하게 그 위험을 알리고자 할 텐데 이를 생리학적으로 간단히 표현하면 각성의 상태가 점점 더 높아져서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외부 자극에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고 일이나 공부 같이 집중을 요하는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고 중요한 점은 내일의 일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휴식으로서의 수면도  방해를 받아서 원치 않게 불면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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