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른 뜻풀이를 보니 "마음에 미안함"이라는 뜻도 있었습니다. 불안, 즉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를 달가워할 사람은 없겠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 때로는 창피하거나 자기 자신조차도 어이가 없을만한 이유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성질의 불안은 도대체 왜 생겨서 우리를 곤혹스럽고 힘들게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전형적인 불안으로는 공부와 성적에 대한 불안, 취업에 대한 불안, 승진과 관련된 불안, 건강에 대한 불안, 노후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두 앞날, 즉 가깝거나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걱정은 우선 "그런 좋지 못한 일이 나에게 또는 우리 가족에게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 주관적인 걱정의 정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관적인 걱정의 정도는 주변 사람들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바에 따라서도 결정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른바 "~카더라"는 식으로 전파되고 확산되는, 정체가 묘연한 뜬소문의 영향입니다. 그리고 이 "~카더라"식 괴소문이 무서운 것은 그 진위를 판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저 뜬소문이어서 확률적으로 가늠해 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전신주 같은 기둥에 사설학원이 붙인 전단지 광고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이다음에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겁박성 홍보 문구처럼 그게 사실인지도 확인할 길이 마땅히 없고 그 홍보문구로 인해 "내 아이 또래 자녀를 가진 다른 엄마들은 다 그렇게 하나 봐"라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 때문에 마음이 몹시 불안해진 그 엄마는 앞뒤 잴 것도 없이 당장 자녀를 학원에 등록해서 미리미리 고등학교 수학의 미분적분을 선행 학습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은 "~하게 될지도 몰라"라는 애매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말 앞에는 반드시 "내가 무엇을 한다면 또는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이 따라붙습니다. 이런 상태를 이제는 할머니라고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들은 배우 맥 라이언이 젊을 때 찍었던 "프렌치 키스"라는 영화 속 장면으로 설명드리자면 프랑스에 거 있는 남자 친구가 바람이 난 것 같다는 깜새를 느낀 케이트(맥 라이언 분)가 그 꼬리를 잡으려고 미국을 떠나서 프랑스로 가려하는데 문제는 그녀가 심한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두 가지 불안이 서로 충돌하는데 하나는 "내가 프랑스로 가서 남자 친구의 바람난 현장을 잡지 않으면 / 영영 남자 친구를 빼앗길 텐데"라는 불안과 함께 "만약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다가 사고로 비행기가 추락하면 / 나는 목숨을 잃거나 요행으로 살아남더라도 구조받지 못하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할 텐데"라는 불안입니다. 영화에서는 케이트가 무슨 이유로 고소공포증에 걸렸는지 설명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두 가지 불안은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즉 어릴 때 높은 데서 실수로 떨어져서 본인이 크게 다쳤거나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 사고로 높은 데서 떨어져 죽은 사실에 대한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고소공포증에 걸렸을 수 있고 사춘기 때나 훨씬 젊었을 때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또는 주변에서 사랑했던 남자 친구한테 버림을 받고 우울함에 빠져버린 젊은 여자들을 보거나 들었기 때문에 자기의 남자 친구도 바람이 나서 자기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불안해졌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차라리 이것이나 저것이었으면"하면서 애매한 상황, 즉 어떻게 될지 100 퍼센트 장담할 수 없어서 생긴 불안을 없애려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불안이라는 느낌은 생리적인 증상으로 말하자면 입이 마르고 혈압이 높아지고 근육이 딱딱해지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등의 달갑지 않은 신체 반응들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인 긴장과 함께 말이지요.
이런 생리적 반응들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적"에 대비하면서 그 적을 공격하거나 그 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신체적 반응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맹수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원시적 반응이 외부의 사회심리적인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 반응으로 발달되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사회심리적인 적이란 나에게 심리적으로 해를 끼칠 것 같은 외부의 대상이나 현상일 것입니다. 즉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보편적인 인간성과 함께 개인적인 소질이나 성향을 갖춘 인간은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거나 사적 영역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른바 프라이버시가 침범되면 불안을 느끼면서 그런 상대방에게 적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