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극도의 흥분과 극도의 절망 사이 (2)
언젠가 제가 간혹 읽곤 하는 정신의학신문에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직장 동료나 주변 친구에게 유독 집착하면서 그의 관심과 호감을 얻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는 사람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한 가지 별난 점은 그에게 관심이나 호감을 가진 동료나 친구에게는 그가 별 관심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 기사를 읽고서 저는 젊을 때 어느 만화잡지에 짤막하게 실린 만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는데 그 만화에서는 자기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남성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에 지쳐서 그만 두자 그 동안 냉담했던 그 여자의 태도가 돌변해서 오히려 그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는 내용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그 남자가 가벼운 공주병에 걸려 있는 그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을 그만두자 그 여자는 공주병 환자답게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고 그렇게 다친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자신을 포기한 남자에게 병적으로 집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정신의학신문에 사연이 소개된 그 사람은 자기에게 관심이나 호감을 보이지 않는 사람의 관심과 호감을 얻어서 마음속 깊숙이 잠재해 있는 과거의 상처가 덧나지 않거나 더 깊어지는 것을 악착같이 막으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건 학부모 모임이나 남편 직장의 사모님들 모임에서 입고 있던 옷 때문에 말로 은근한 망신을 당한 어느 여자가 홧김에 무리를 해서 자신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고가의 옷을 사고는 그 옷을 장롱 깊숙이 처넣고 입지 않는 것과 많이 닮아 보입니다. 짐작일 뿐이지만 설사 그가 그토록 관심과 호감을 필사적으로 구하던 동료나 찬구들 중에 누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호감을 표하면 그는 더 아상 그의 호감이나 관심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아직 그에게 관심과 호감을 보이지 않는 다른 동료나 친구에게 온갖 수를 다 써서 구걸하듯이 그의 관심과 호감을 얻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일지도 모릅니다.
젊을 때는 미처 실감하지 못한 표현 중에 "물신주의"나 "물신 숭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온 세상의 형편이 그리 다르진 않겠지만 한국은 유독 물질에 과하게 집착하면서 물질이 인간을, 다시 말해서 "불행한" 인간을 구원해 줄 거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정작 물질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인 돈을 밝히면 경멸 어린 곱지 않은 눈으로 보면서도 말입니다. 물론 적당한 물질적 토대가 많이 부족하면 당연히 남의 노동으로 생산된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사는데 큰 곤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이유가 자신의 (주관적인) 효용가치, 즉 쓸모 때문이 아니라 그저 돈이 많아야, 그것도 끝도 없이 많이 축적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이유만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더 이상 돈은 유용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는데 이때 우리는 "돈을 좇아간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좇아가는 대상인 돈을 좇아가서 잡을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런 정지 상태가 가능할까요? 게다가 돈을 쫓는다는 표현은 돈이 계속 앞서서 도망치기만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데 사람에게 돈이 쫓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무한정 돈을 좇는 사람은 그렇게 좇는 돈으로 무엇을 사고 싶어서일까요? 좀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한해에 몇십 억의 수입을 얻는 대기업 임원이나 좀 더 극단적인 예로 워런 버핏 같은 손꼽히는 세계의 상위 1 퍼센트의 부자들은 무슨 이유로 계속 고수익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물론 예측하기 힘들어서 불안한 노후를 대비하느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게 돈만 좇는 것은 마치 주객이 뒤바뀐 현상으로 보입니다.
흔한 표현으로 "행복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행복"이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와 취향이 다른 분들은 다른 연상을 하실 수도 있을 텐데 좀 보편적인 예를 들자면 휴일 날 오래간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거나 캠핑을 가서 술 한잔에 바비큐를 먹는 일, 눈독을 들였던, 만만치 않은 가격의 옷을 사는 것, 연로하신 부모님을 해외여행시켜 드리는 것,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낸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 그리고 전세나 월세를 살다가 드디어 내 집 마련에 성공하는 것 등등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이 모두 그를 위한 돈이 없거나 부족하면 마음만 있을 뿐 실현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은 당연히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어서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당연히 행복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으로 원하지 않는 한 돈만 많다고 행복할 수 없을 텐데 그 정직한 마음이 "이렇게 하면 참 좋겠어"하며 우리를 행복 쪽으로 부추겨야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힘이 생기고 그와 섞일지도 모르는 우연 때문에 백 퍼센트 장담할 순 없지만 행복감이 찾아 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겠지요.
어떤 분들은 "물신 숭배"라는 표현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거부감을 느끼실지도 모르는데 저도 젊은 날 "물신숭배"라는 표현을 접하고서 그 표현이 그저 책 속의 과장된 표현으로 읽혀서 거부감을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마치 무슨 요상한 주술에 걸린 듯이 마냥 돈만 좇는 현상을 한국 사회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 이 표현이 얼추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신 숭배"라고 하면 오래전 성경에나 나오는 금으로 화려한 외피를 두른 우상에 대한 숭배가 떠올라서 거부감과 함께 너무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정직한 취향과 관심과 주관적인 능력을 돈 때문에 고스란히 반납하면서 그 돈을 왜 벌어야 하고 어떻게 쓸 것인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은 채 원하는 돈을 벌게 되면 순간적인 짜릿한 쾌감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번 돈을 어떤 이유로 어떻게 쓰면 좋겠다는, 때론 가슴이 많이 부풀어 오르는 기대를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들기 때문에 당연히 그 짜릿한 쾌감은 잠시 허공에 맴돌다 이내 사라져 버리는 담배 연기처럼 곧바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냉온탕을 오고 가는 듯한 조울증 현상과도 비슷한데 왜냐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벌거나 얻었을 때 순간 기분이 몹시 흥분될 수 있지만 이내 시들해져 버리고 게다가 다시금 더 많은 돈을 한없이 좇으면서 언제나 그 돈을 소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더 급해지고 초조해지고 불안해져서 마음이 몹시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울증 증세 중 몹시 흥분된 상태인 조증은 마치 마법의 주술에 홀린 듯 근거 없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낙관적인 상상에 빠져서 완전히 딴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드는데 이 근거 없는 낙관론이 이내 사라져 버리면 마주하기 싫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우울증으로 빠지기 십상입니다. 그 현상은 마치 마약의 약효가 다 하면 다시 어둡고 캄캄할 뿐만 아니라 마주하기 몹시 두려운 구체적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게다가 마약의 기운이 떨어지면 그 대가로 치루어야 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커져가는 초조함, 긴장감과 심한 불안 때문에 다시 마약을 반복하게 되어서 중독 증상이 더 심해져 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