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석詩今釋) 박서원 시인 - 파티

누구의 어깨 위에도 영영 앉을 수 없는 새

by 시유

시금석詩今釋

지금의 나와 시를 연결하며 주석을 답니다.

그런 방식으로 시와 나를 잇고 시를 체화합니다.

시로 촉발된 이야기와 이야기 속에 어렴풋이 깃든 시적 순간을 나눕니다.

시와 지금의 나 사이를 오가며 희미하게나마 내가 되어가려 합니다.



파티


박서원



희롱하는 술잔과 사랑의 즐거움으로 찢겨져나간 드레스

음악은 멋도 모르고 손가락이 흥에 겨워

손님들도 멋도 모르고 잔을 부딪치네 건배! 건배!

나는 그때 보았네 하나의 예감이었던

내 유년의 공작새가

깃털마다 파란 피를 적시며 푸드득 날아가는 것을

벌써 보았네 그 누구의 어깨 위에도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


소름 끼치도록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인간들과 부대낄 때. 인간들 속에 속하고 싶은 짐승처럼 섞여 있을 때.

섞여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나만 여전히 짐승일 때.


"희롱하는 술잔과 사랑의 즐거움"이 가득한 곳에서는 누구도 외로울 것 같지 않았지만,

그 떠들썩한 곳이야말로 나를 "찢겨져나간 드레스"처럼 만드는 곳이었다.

"음악은 멋도 모르고", 내 속도 모르고 흥겨웠고,

평생 내게 머물러줄 리 없는 "손님들도 멋도 모르고 잔을" 부딪쳤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예감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살았다.

나는 하필 공작새였다.

가벼워 네 어깨 위에 오래 머물 수 없는.

거추장스러운 자의식과 무거운 마음 때문에

날갯짓을 시도할 때마다 실패하고 마는.

그런 나를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래서


"내 유년의 공작새가

깃털마다 파란 피를 적시며 푸드득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보였다.

내 속에 든 피가 너무 차가워서

당신과 눈을 마주하고 살을 맞대고 있을 때도 실은 추웠어.

텅 빈 뼛속이 내내 시렸어.

그렇지만 그걸 말하면 나는 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걸 알아서


"그 누구의 어깨 위에도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겼지. 사실

잘 새겨지지 않아서

자꾸만 문장을 지우고 싶어서

모른 척하고 싶어서

부러진 뼈를 집어 들고 살갗 위에 새겼네.

이 이상 나를 혐오하게 되면 나는 살 수 없을지 몰라,

내가 나를 또 죽이고 싶을까 봐 겁을 내며.


*


시를 읽으며 아주 시끄럽고 정신없고 외로운 곳을 떠올렸어요. 누군가를 실없이 놀리고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것을 '희롱'이라고 한다면, "희롱하는 술잔"들이 있는 곳은 화자를 아주 가벼이 막 대하는 곳일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왠지 화자가 스스로 희롱당하는 걸 모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즐거움으로 찢겨져나간 드레스"라는 표현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가벼운 마음들이 나를 찢고 할퀴는 걸 아는데도 그걸 내버려두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마치 자신에게 뻗어지는 학대의 손길을 모른 척하는 사람처럼요.

음악도, 손님들도, 화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네요. 어쩌면 시끄러움과 떠들썩함 속에 각자가 갖고 있는 치부가, 외로움이 가려졌기 때문일까요. 연거푸 건배하느라, 서로를 가벼이 지나치느라, 술잔을 기울이고 곁을 스칠 때마다 닿을 살갗의 온도를 제대로 감각하지 못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와중에 화자는 "내 유년의 공작새"를 보고 있네요. 지금-여기에 겹쳐지는 어떤 시공간 하나를 더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도 같고요. "깃털마다 파란 피"가 적셔진 새의 몸은 얼마나, 얼마나 차가울까요.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 몸이, 얼마나 지긋지긋할까요. 그럼에도 공작새는 공작새가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내가 나 아닌 존재가 될 수 없듯이. 그 무겁고 차가운 몸으로도 기어이 푸드득 날아가네요. 왜 그랬을까요.

저는 더는 '너'에게 폐를 끼칠 수 없어서라고, 혼자 상상해버렸어요. 이 시 어느 곳에서도 '너'는 호명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왠지 화자가 아끼고 사랑하는 너를 염두에 두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특정 한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아끼고 사랑하게 될 누군가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방식으로 이미, 미리 사랑하고 있는 누군가를요.

날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도, 지칠 땐 내려앉고 싶겠죠. 게다가 "깃털마다 파란 피"가 들어찬 새라면, 그래서 차고 무거운 숨을 쉬는 새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그런데 이 새는, 이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벌써 보았네 그 누구의 어깨 위에도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이라고요. 누구에게도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자신을 의탁할 수 없을 것임을 예감하며, 그 예감을 철저히 홀로 목도하며. 이 문장은 마치 "절대로 누군가의 어깨 위에 앉아선 안 돼"라고 다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나는 작고 여려 보듬어주고 싶고, 어깨 위에 올려도 폐 끼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새가 아니니까요. 나는 너무 크고 무거운, 지저분한 슬픔이 덕지덕지 붙어 천박하게 화려한 새니까요.




-첫 번째 글은 박서원 시인의 시 「파티」전문입니다.

-두 번째 글은 시를 읽고 빙의된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사실 저도 이게 무슨 글인지 모르겠어요. 나오는 대로 말하다 보니 이런 글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글은 한 줄 한 줄, 제가 이 시를 어떻게 읽었는지에 관해 쓴 일종의 주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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