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리, 주를 찬양하여라

by 레푸스

(만 나이)


1999년. 엄마는 서른다섯,

그해 MBC, 그리고 같은 해 <가톨릭신문>에 실린 기사 속

엄마의 인터뷰를 읽으며, 당시 나는 울다가 잠이 들었다.


기사 읽어보면 병인줄 모르고 등을 때려서 걷게 했다는 엄마의 죄책감..

이제 내가 서른넷이 되고 나서야,

그 시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엄마는 “허락하신 아들이라는 십자가”를

끝내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말은 단지 체념의 문장이 아니라,

어쩌면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자,

자식을 향한 가장 깊은 사랑의 형태였다.


엄마는 내가 세례를 받고 꿈을 꾸셨다.

내가 세례를 받을 때 입었던 흰옷 그대로

성당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자,

땅은 초록빛 잔디로 물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여섯 명의 무리—

흰 의복을 입고 얼굴은 흑백으로 가려진 자들이

꿈속에 나타났다고 했다.


나는 뒤뚱거리는 걸음이 아니라

온전한 걸음으로, 어떤 손이 등을 밀었고 내가 그들 사이를 지나

가장 높은 돌계단 하나 위에 올라섰다.


그들은 반원을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 반원의 중앙에 있었다.

그 순간, 엄마는

"하느님이시다!" 외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고백은 신비였다.

예언이었고, 시였고,

오로지 사랑으로만 읽어낼 수 있는 진실이었다.


어쩌면 그 꿈은

세례의 순간이 멈춘 시간 속에서

다시금 엄마에게 되새김질된

하느님의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엄마는 아들을 통해

이 세상의 고통을 넘어서

하늘의 완성을 보신 것일지도.


나는 아직도 그 꿈을 생각한다.

엄마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내가 아닌

어떤 더 큰 존재의 빛으로 서 있었다.

그 자리는 나의 자리가 아니라,

나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리였다.


엄마는 참 영이 맑다, 묵주기도를 드리고 "마리아야, 엄마 그만 미워하라" 성모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현도의 부고 전화받기 전에,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목소리가 현도를 가르쳐 "여기까지 오느라고 힘들었다" 하는 꿈도 꾸셨다. 항아리 뚜껑과 하늘로 뻗은 거미줄에 갈색 거미 사체가 병원 근처 풀밭 배경으로 있었다고.


엄마는 하느님 꿈을 성화가에게 맡겨 내 사후에 그림으로 견디고 싶다 하신다.


20대 후반 냉담을 푼 나를 보고 다시 하느님을 찬미했다는

엄마는 하느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삶을 산다.


종종 "기적이 일어난다면, 주님 제 아들을 드리겠습니다"

내 면전에서 지향을 드린다.

엄마의 꿈은 사실, 내가 사제, 수사가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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