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비를 육체적 탐닉이 아니라 부러운 마음으로

ㅡ자궁과 모성적 사랑에

by 레푸스


나는 종종 신부님이나 목사님의 강론에서 혼합주의적인 설교를 경계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생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말씀을 단정적으로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쪼가리들이 묻어나는 강론—체험이 녹아든 선포야말로 진짜 복음이라 믿습니다. 신학적 이론은 많지만, 그 속에 고백과 눈물, 그리고 흙 묻은 발자국이 없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지요.


예수님께서는 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씨앗과 겨자, 누룩과 고기잡이 이야기를 통해 하늘나라를 전하셨습니다. 그러니 신학을 몰라도, 성경을 통째로 외우지 않아도, 양들이 회심하는 설교는 오히려 일상에서 비유처럼 피어나는 쉬운 말씀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나는 정식 선교사는 아니지만, 평신도로서 삶을 묵상하고, 글을 통해 나누는 "선교의 여정"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우리 본당의 주임신부님, 부주임신부님의 강론처럼—나는 단지 나의 언어로, 나의 걸음으로, 한 편의 묵상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꿈이 있습니다.

불교 신문에도, 개신교 계열의 매체에도 기고할 수 있는 언어, 경계를 넘어선 통합의 은총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장애인, 어린이, 그리고 외롭고 낯선 이들을 위한 설교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천주교 신앙을 산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과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스님과 목사님, 불자와 신교 성도를 환대하는 태도를 갖는 일일 것입니다.


자비란 자궁을 뜻한다지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남성일지라도 부성보다 앞서 모성적인 것입니다.

살과 뼈, 흉곽을 열어 타인을 품는 일, 그것이 곧 사랑이며,

그 사랑이야말로 주님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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