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 미카엘 축일(내 축일)

by 레푸스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네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축일을 열었다. 이 말씀으로 병에서 오는 고초도 역경도 외로움도 내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기도를 놓지 않는 신앙의 즐거움으로 산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상태로 천국과 지옥을 구분 짓곤 한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느님 때문에 구분 지어지며 '빛의 자녀'로서 삶을 희망의 증거자로 산다. 인위적인 행복이 아니라 참된 기쁨을 회복할 때 주님의 부활이 현재 텅 빈 연옥 상태의 나를 충만한 것으로 부활하게 한다.


나는 언제나 라자로처럼 하느님의 천사들에 의해 하느님 나라에 올려져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예수님‧마리아님‧요셉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라자로는 가난하고 아팠던 사람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셨으므로 천국을 얻었다. 아마도 그는 평생 원망하는 법 없이 희망하며 주의 자비를 믿으며 찬양드렸을 것이다. 반면 좋은 것을 받아 누렸던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스러운 하느님과의 단절의 시간 속에 있다.


자기 집 문 앞에 누워 있었던 라자로를 대해주거나 보살펴 주지 않았던 부자는 어떻게 살았기에 그냥 "죽었다", 이름이 아니라 "부자"로만 기억되고 있는가? 어떻게 살지를 모를 때 우리는 매력을 잃는데, 희망과 믿음의 소유자는 매력적인 삶을 산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이다.


고대 철학자, 수도자들은 안락함을 경계해야 한다 가르쳤다. 특히 부와 명예, 이기심이 주는 평범한 삶의 독을 경고하였다. 평범한 영혼에는 결코 이타심, 측은지심이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인색함, 무관심을 통해 악은 우리를 유혹하며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라자로처럼 병자는 무조건 천국을 갈까? 그렇지 않다. 영적인 전쟁터에서 빈 무덤에 대한 당찬 믿음과 자기 십자가를 품고 걷는 평화에 천국에 있다. 십자가를 외면한 병은 저주가 될 수 있지만, 주님의 부활과 함께 끌어안은 병은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향한 문이 된다. 나는 이 믿음을 붙들며 오늘도 기도의 호흡 속에서 살아간다.


"하느님, 거룩한 삶을 선택하도록 제 안의 부패한 마음씨와 완고함을 오늘 미카엘 축일을 통해 치유해 주십사오.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사람은 아니오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의 공로를 보시어 이 기도를 들어주소서. 자신의 비천함을 아뢰어 순종하신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저도 비천한 사람임을 고백하며, 간청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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