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스트리트》(신선비)
나는 양재천을 좋아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등굣길과 하굣길을 그 물길 따라 오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행운이었다. 하우스 푸어라지만 병원 가까운 이유로 강남구에 터를 옮겼고, 창문을 열면 여전히 양재천이 보인다.
집 앞에 흐르는 물 하나로, 삶이 넉넉해진 듯했다. 학생 때부터 유난히 집을 좋아했고 번화가를 기웃거릴 나이에도 양재천이면 충분했다. 간혹 다리 하나가 잘린 비둘기와 발을 저는 길고양이를 만나면 애초롭게 바라보곤 했다.
병이 중반부로 진행되던 시절, 전동휠체어를 몰고 학교를 다녔다. 발판 모서리로 교실 문을 밀어 열었고, 급하면 계단에서 3층에서 1층으로 ‘통통’ 내려오기도 했다. 특수 바퀴도 없었지만 조이스틱과 몸의 반동을 믿는 감각이 있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 지나갔다.
교내에서 나는 특별한 아이도, 불가촉의 외톨이도 아니었다. 밥을 함께 먹는 친구였고, 선생님들에게는 아들인 ‘제자’였다. 누구도 내게 오토다케나 호킹, 헬렌 켈러의 그림자를 덧씌우지 않았다. 장애의 표상도 아니었다. 벗으로, 제자로, 대해주었다. 정과 복음의 마음이 따뜻하게 섞여 있었다.
가끔 양재천을 바라보면 그 시절이 되살아난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던 봄, 휠체어 진동이 손목을 타고 흐르던 여름, 은행잎 밟으며 귀가하던 가을, 찬 공기 속에서도 학교로 향하던 겨울. 특별한 영웅담 없이도 하루를 건너온 나의 계절들이다.
내가 양재천을 통해 학교를 오가며 시간을 견뎠던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삶을 지탱해 줄 자기만의 메인 스트리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건축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공간이란 결국 ‘상태의 확장’이다.
이를테면 문학이 그렇다. 활자가 단순한 글자를 넘어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텍스트 속 공간에 마음을 눕히면 삶은 다시 일어난다.
나는 기계호흡을 내 전부라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엔 고흐와 뭉크처럼 실패와 실수, 고통까지 정면으로 껴안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쳐버릴 만큼의 곤경에서 붓을 들고 삶과 겨루던 인간들. 그래서 모든 것이 경이롭다. 생에 표준이 있다면 온갖 종류의 일상과 감정들일 것이다. 아픔, 기쁨과 두려움, 평범함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양재천은 지금도 흐른다. 나는 그 물빛을 바라보며 산다. 숨을 의지하는 몸이 되었지만, 그때의 바람과 노을은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다. 인생은 거대한 드라마보다 이처럼 조용한 풍경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흐르는 것은 물뿐 아니라 기억이고, 사랑이고, 나의 삶이기도 하다. 양재천은 오늘도 말없이 응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