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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03. 2020

몽상가의 하루

매장의 유혹

기어이 가고 말았다. 조금 홀가분한 몸으로 가보고자 했던 그곳은 큰 아이의 가정보육이 시작되면서 갈 수가 없었다. 이미 마음이 꽂힌 상태라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그곳이 눈에 아른거려 손에 일이 잡히질 않는다. 짧은 시간 안에 기필코 가리라 마음먹었던 것을 오늘 실행해 버렸다. 아이 둘과 택배 보낼 상품을 바리바리 싸들고서 말이다. 내가 언제부터 이리도 실천력이 강했던 사람이었나? 역시 돈 쓰는 건 우주 최강인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던 옛 자기 계발서의 한 구절이 생각나면서 간절히 돈 쓸 생각을 하니 온 우주가 도와 탈탈 털리게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여기 2층 좀 보여 주세요.”

이 한마디 하기가 어찌나 두근대던지!

“앉으세요. 들어와서 말씀하세요.”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다.

“아니에요. 애들 때문에 잠깐 보고 갈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미 웨건을 부동산 안으로 집어넣고 있는 나였다. 세 번째 방문하는 나는 괜스레 한 번 더 물었다.


“여기 얼마에 나온 거죠?”

매번 사장님도 가격만 알려주셨는데 오늘은 왠지 내가 계약이라도 할 것처럼 보였는지 꽤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여기 보증금 1000에 60에 나왔고요. 한 달 렌탈이에요. 다 나가고 이거 하나 남았어요. 이 가격은 이제 없다고 보시면 돼요.”


싼 건가? 비싼 건가? 뭘 알아봤어야 말이지. 딱 하나 여기에만 꽂혀서 다른 곳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제야 다른 곳은 어떤지 물어보았으나 이 사장님 베테랑이다. 내가 여기에 꽂힌 걸 알고(이번이 3번째니 알 수밖에!) 다른 곳은 볼 것도 없다고 말한다.


“추가로 들어갈 돈은 얼마예요? 관리비가 있나요?” 정신을 부여잡고 물었다.


“관리비는 없고 한 달에 3~4번 청소하는 업체가 오는데 돌아가면서 부담해요. 한 달에 2만 5천 원 더 낸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 부가세 6만 원 추가되고요.”

“우선 내부 좀 보고 싶어요!”


아이 둘을 데리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오르며 머릿속엔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쁘다. 월세 60만 원에 부가세 6만 원, 청소비 2만 5천 원. 총 68만 5천 원을 내가 벌 수 있을까? 한 달 무료 렌탈해준다 해도 한 달 동안 고정수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2층 맨 끝에 곱게 자리 잡은 나의 꿈의 장소에 가려면 3곳의 매장을 지나쳐 가야 한다. 첫 번째 네일아트, 두 번째 수학학원, 세 번째 영어학원을 거치면 그곳이 나온다. 그때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기 수학학원도 이제 빠지고 곧 케이크 공방 들어와요.”

“케이크 공방이요? 언제 들어와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이제 곧 시공 들어가요.”


마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공방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은 한 곳도 공방 종류로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8개 매장 중에 1층에 한 곳, 2층에 2곳이 꽤 오랜 시간 비어있었는데 한 번에 2개의 매장이 들어오는 것이다. 1층은 이미 공사가 들어간 상태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마도 내 얼굴은 이미 나 여기 들어오고 싶어요! 가 잔뜩 드러나 있었을 거다. 마지막 남은 곳을 가보니 10평이라던 공간은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꽤 크고 넓어 보였다. 바닥이며 벽도 마감이 된 상태여서 크게 인테리어 할 것도 없다. 집에 있는 책상과 책꽂이를 배치하고 가운데 놓을 큰 테이블과 의자만 구입하면 구색이 맞춰질 것 같다. 에어컨도 기본 옵션이다. 생각보다 들어갈 돈은 없을 거 같은데 문제는 유지비다. 한 달에 70만 원가량의 돈을 벌 수 있을까? 뭘 팔아야 70만 원이 되는 거야 대체! 그때부터 나는 구차하게 구절구절 이야기를 쏟아낸다.


“사장님, 제가 공방을 운영하다가 이전하는 게 아니라 처음 시작하는 거라서 지금 시기에 해도 되는지 고민이 돼요. 아이도 아직 어린이집 다니기 전이라 내년 봄에 시작하려고 했는데 지금 벌써 12월이라 얼마 남지 않아서 보러 온 거거든요.”

“그럼 두고 보다가 내년 봄에 여세요.”

“그때까지 나가진 않겠죠? 혹시 누가 보러 오면 전화 좀 주시겠어요?”

“언제 나갈지는 장담 못해요. 여기만 매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곳에서 나가면 끝이에요.”

“혹시 여기 문의 들어온 건 있나요?”

“발마사지 들어오려고 알아본 사람 있어요. 본사에서 아직 결정이 안 나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파트 상가에 어울리지 않게 발마사지라니! 공실은 들어가기가 쉽지만 그런 체인점이 들어오면 인테리어 비용이 꽤 들어서 권리금이 발생할 수 있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싱숭생숭해진다. 마음 같아선 당장 주인을 만나 계약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우선 상의해보겠다며 부동산 명함을 받아 들고 나왔다.






오후에 마침 브랜드 코칭이 잡혀 있어서 부동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건 무리죠? 미친 짓이죠?” 아니나 다를까.

“그러시면 안돼요. 그 생각 접으세요.” 단호하게 말을 한다.


아,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왜 이럴 때만 발동하는가. 소울메이트인 수진쌤에게 당장 카톡을 보낸다. 그래도 1인 기업가이니까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수진쌤, 나 오늘 부동산 다녀왔어요. 나 좀 말려줘 봐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동조해주길 진심으로 바랬다.

“쌤 하지 마요! 코로나 단계 격상될 때마다 너무 힘들어요. 지금은 아니에요. 딱 1년만 매장 없이 해봐요. 1년 후면 날아다닐 겁니다. 내가 보장해요!”

“그렇죠? 고마워요!!” 마음이 조금 안정된 것 같다.


그래, 지금 매장을 내는 건 남 주머니에 돈 넣어주는 거지. 지금은 아니야.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인천에서 운영한 지 1년 된 그림책 책방 대표님의 피드 글을 보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아쉽다는 글과 지금 다시 격상되고 있는 단계에 허탈감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하지만 내 눈엔 책방 일기, 책방지기라는 단어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도 좀 되고 싶다. 책방지기! 한 번 뵌 적이 있어서 무작정 댓글을 남겼다.


“지금 이 시점에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싶은 건 허영이겠죠? 책방 관련 강의 부탁드려요!”


진심이었다. 어떻게 책방을 꾸리게 되었는지 꾸려 나가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힘들다 말하고 있지만 내 눈엔 너무 멋지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을 이루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했던 모습을 봐왔다. 곧 답글이 달렸다.


“올해는 정상적인 운영을 한 달이 거의 없어요. <좋아하는 마음 하나> 그것 말고 해 드릴 말이 없어요. 만약 저라면 코로나가 진정될까지는 기다릴 듯해요. 흠... 그런데요, 책방지기님들 출판사 대표님들 다다 하시는 말이.. 아무리 말려도 할 거라는 거 안다고 ㅎㅎㅎ 말려도 하실 거 잘 알아요 ㅎㅎㅎ“


망해 본 경험이 있어서 무모해지고 싶지 않았다. 매달 월세 나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기에 다시는 미친 짓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무런 준비 없이 하고 싶다는 마음만 빗발치고 있다. 그럼에도 저 한마디. 말려도 할 거 안다라는 그 말이 어찌나 위안이 되는지.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저질러도 질타를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위로가 되었다. 하지 말라고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전 같으면 젊음과 패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러 버렸을 거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마흔이다. 생각 없이 저질렀다가는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도 크다.


심장아, 나대지 마라. 아무래도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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