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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04. 2020

코로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엄마

엄마에게 숨을


며칠 전부터 혓바늘이 오른쪽 혀를 둘러싸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잇몸도 구멍이 나려나 헤짐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피곤한 거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면 아이들이 깨기 전에 다시 침대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곧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그래서 잠이 부족하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왜 피곤한 걸까?


요즘 코로나가 다시 격상되면서 가정보육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엄마 닮아 집순이인 우리 딸은 코로나가 격상되기 전부터도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오히려 등원하는 날은 둘째 녀석 때문에 등하원 시간 내내 놀이터로 편의점으로 끌려 다니기에 안 가는 날이 더 속 편할 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가 다시 심각해지며 단계가 격상되어도 우리 집엔 큰 영향이 없다.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던 지라 어린이집에서 해야 하는 활동지를 선생님께 부탁해서 집에서 해주려는 여유까지 보인다. 놀아도 너무 노는 아이고 따뜻한 봄이 되기 전에는 계속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을 예상하기에 조금은 영리하게 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요 며칠 엄마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꽤 현명하게 아이들을 양육하던 엄마들도 심리적으로 지침을 호소하며 우울감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잠시라도 자유를 느꼈던 엄마로서는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될 것이다. 하루 세끼 밥과 간식을 준비하고 놀이와 교육까지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시간으로 하루가 돌아간다. 다음 주는 꼭 보내야지 다짐을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가정보육 소식을 들으면 좌절하면서도 무책임한 엄마 같아서 차마 보낼 수가 없다.


이번에는 심각하긴 한가보다. 국공립을 다니는 우리 딸네 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모가 많기에 웬만한 일에는 끄떡없이 등원시키고는 했다. 지난 2단계로 격상했을 시에도 긴급 보육이 무색하게 한 반에 2~3명을 제외하고는 정상 등원을 했다. 그래서 긴급 보육을 하는 아이들을 위해 통합반을 운영하던 것이 결국엔 각자의 반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오히려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이가 너무 결석을 해서 등원해달라고 전화가 올 정도였다.


며칠 전 아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 키트를 받기 위해 어린이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선생님을 기다리며 무심코 아이들의 신발장을 바라보는데 텅텅 비어있었다. 나는 그 새 코로나라는 사실을 잊은 채 “아이들이 어디 외출했나 봐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긴급 보육이라 나오는 아이들이 몇 명 없다고 말했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나도 모르게 이 곳은 당연히 정상 등원이 이루어질 것이고 다음 주에는 우리 아이도 보낼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텅텅 비어있는 신발장을 보고서야 이 시기가 정말 심각함을 느낀 것이다. 엄마들의 심적 부담이 얼마나 클지도 느껴졌다. 그동안 아이와 복닥거리는 시간이 많았던 나와는 달리 그들은 내가 초반에 느꼈던 불안함과 공포, 분노를 한꺼번에 느끼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엄마들이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은 불안한 경제로 생계를 위협받겠지만 엄마들은 가정의 생계뿐만 아니라 피폐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아무런 조치 없이 육아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짠하다가도 어지럽혀진 집안을 보면 화가 난다. 한없이 맑게 노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쉴 새 없이 엄마를 찾는 목소리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하루에 잠깐이라도 커피 마실 시간조차 없다고 하면 믿으려나. 나 또한 그나마 아이들에게서 자유로울 시간인 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내가 편하고 할 만하니까 이것도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집안일은 조금 내려놓은 상태이다. 원래도 살림엔 젬병인지라 다른 것은 못하면 배우고 노력을 하게 되는데 집안일은 영 취미가 붙질 않는다. 내 관심 밖의 일이다. 그래도 아이들을 굶기지는 않는다. 정성스러운 밥상은 차려주지 못하지만 먹고 싶다는 건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건 단 하나, 함께 재미나게 놀아주지 못한다는 것. 이건 정말 체력이 딸리는 일이다.








노인경 글, 그리미 문학동네



그림책 『숨』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숨이 모여 아이가 되고 아이의 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고 말한다.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숨 쉬는 모습을 여러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그 그림만 보고 있어도 내 안의 숨이 다 내뿜어지는 기분이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아이가 생겼고 엄마의 뱃속에서 아이와 함께 숨 쉬었다는 내용만으로도 경이로운 책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그림책은 나를 숨 쉬게 하는 열쇠처럼 다가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때 이 책을 찾는다. 그림을 보면서 함께 호흡하다 보면 내 안의 부족한 산소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지금 엄마들에게 필요한 건 작은 한 숨이다.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그 한 숨이 간절하다. 잠깐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주자. 단 5분이라도 스스로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면 우리는 마녀 같은 엄마가 아니라 언제나 포근한 엄마로 남아있을 수 있다.


가끔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지나가는 기분이 들을 때도 있다. 내 아이를 버거워한다는 죄책감은 엄마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단순히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 있어서 몸이 힘든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이질적으로 다가오며 그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스스로에게 꽂혀서이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엄마도 사람이다.

몰아넣었던 숨을 내뱉고 청량한 숨으로 다시 채워보자. 그리고 그 숨으로 오늘 하루도 잘 견뎌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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