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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02. 2020

엄마 같은 아이, 아이 같은 엄마

아이가 나를 키운다

“엄마 나 싫어해?”


아이가 가져온 꼬깃꼬깃 접힌 하얀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나 네 살 때까지는 엄마 나 엄청 예뻐하고 사랑해줬잖아.”

“그게 기억나?”

“응! 그땐 엄마가 잘해줬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못하는 거 같지? 왜 그런지 알아?”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목소리를 내어 단호하고 짧게 말했다.


“그건 내가 네 엄마가 아니니까.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냐~! 으아~~”


보통의 여섯 살 여자 아이라면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겠지만 천하의 우리 큰 딸은 그럴 리 없다.


“아니거든! 우리 엄마거든!”

“너희 엄마는 내가 잡아먹었다! 으아~~”

“웃기지 마! 우리 엄마 뚱뚱해서 못 먹거든!”

“(ㅡㅡ+)”

“너 이무기지? 죽어!!”


그럼 내가 깨갱할 차례다.


“너 누구야? 우리 딸 아니지? 우리 딸 어디 있어?”

“나는 구미호다~~~~~!!”



요즘 우리 집은 TVN에서 나오는 드라마 <구미호뎐>을 즐겨 보고 있다. 아이도 무섭다면서도 곧잘 보는 편이라 함께 놀이로 이어지고는 한다. 아이가 다섯 살 때 네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이 생긴다는 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엄마밖에 모르던 껌딱지였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고집 한 번 부리지 못한 채 엄마 곁을 내주었다. 애착 인형 대신 엄마 팔꿈치를 꼬집으며 자던 아이였다.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둘째를 제왕절개로 낳은 후 조리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병원 좁은 침대에서 큰 아이를 데리고 잘 정도였다. 나는 조리원 동기는 없지만 회복실 친구인 큰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사이가 참 좋았다. 간혹 큰 아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우리 엄마와 언니, 혹은 내 친구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첫 아인데 왜 사이가 안 좋은 거지? 이렇게 귀하게 아끼며 키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아이가 스스로 떨어져 나가고 아빠에게 의지하며 지내는 것을 보며 처음엔 짠하고 안쓰러웠던 마음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큰 아이의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둘째는 어르고 달래야 하지만 말을 알아듣는 큰 아이에게는 무서운 눈빛 하나, 단호한 말 한마디면 되었다. 아이는 항상 엄마 곁을 노리고 있었다. 동생이 잠들면 엄마에게 와서 살을 붙인다. 제법 덩치도 커지고 엉덩이도 무거워진 큰 딸이 이제는 징그럽고 버거울 때가 있다. 떨어지지 않는 둘째를 겨우 떨어트렸는데 큰 아이가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온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쉬고도 싶은 마음에 나는 얼굴 표정으로 아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겠다면서도 엄마인 내가 온몸으로 아이를 부정한다. 좀 더 얌전하고 좀 더 착하고 좀 더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








이태준 글ㅣ김동성 그림ㅣ보림출판사



그림책 『엄마 마중』에는 오지 않는 엄마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네다섯 살쯤 되는 아이가 나온다.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엄마를 찾던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앙 다물고 버스가 오는 방향만 바라보고 서 있다. 결의에 찬 듯 코만 새빨개져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책을 인생 책으로 삼는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어릴 적 엄마를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나면서 내면 아이를 만났다고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큰 딸이 생각났다. 한동안 미친 듯 강의를 수강하며 바쁜 날들을 보낼 때 둘째를 재우면 나는 작업방으로 들어와서 강의를 듣고는 했다. 그러면 큰 아이는 내 옆에 와서 딱 저 꼬마 아이처럼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 나는 “엄마 잠깐만, 이것만 하고 갈게.”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둘째가 깨어 엄마를 찾고 큰 아이는 그렇게 계속 엄마를 기다리기만 했다.


오늘 아이가 자신을 싫어하냐는 쪽지를 건넸을 때 나는 아차 싶으면서도 예전처럼 마음이 아프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이 순간을 넘길 수 있을까가 먼저였다. 아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엄마를 떠봤을 것이다. 엄마가 당연히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을 할 것을 알기에 엄마의 입으로 직접 말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 거다.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기보다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가 스스로 자라나길 바란 듯하다. 엄마가 잘 사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 본이 될 줄 알았다. 권위적인 엄마보다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필요에 의해 권위적인 모습으로 아이를 통제하며 친구처럼 나의 의무를 아이에게 떠넘겼다. 아이는 친구 같은 엄마가 아닌 엄마다운 엄마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배려하며 돌보고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하고 내리사랑이라 엄마보다는 아이가 먼저라고 하지만 우리 집은 항상 내가 먼저였다. 아이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내 살 길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의 삶에서 엄마는 항상 기다려야 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뭐하는 사람이야?”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지.”

“아니야. 엄마는 우리 00랑 동생 돌봐주고 맛있는 거 만들어주고 함께 놀아주는 사람이야.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하질 못했지? 그럼 엄마는 잘못하고 있는 거야.”


우리 엄마가 나에게 집착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적어도 그런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항상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우리 엄마라면 천하무적 다 물리쳐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과연 나에게 그런 무한신뢰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빠는 슈퍼맨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어쩌면 아이는 2020년 여섯 살의 삶에서 코로나로 인해 일상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엄마를 잃어버린 시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태어난 다섯 살 때 엄마의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며 이땐 엄마가 나를 예뻐했다며 눈물짓던 아이다. 씩씩하면서도 여린 마음을 지닌 아이가 나와 같지 않아서 그저 믿고만 싶었다. 잘 자라고 있다고.


오늘 아침 아이가 눈을 뜨면 말없이 꼭 안아주련다.

아이의 텅 빈 마음을 채우기엔 내 가슴이 너무도 작지만 엄마답게 엄마스러운 모습으로 오늘은 아이의 곁을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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