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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05. 2020

아빠가 나에게 살갑게 전화를 걸었다.

화해의 여정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아빠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아빠가?라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지만 이내 엄마일 거라 생각했다. 엄마가 아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을 게 틀림없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00야! 아빤데!”


당연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올 줄 알았던 나는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빠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나?


“응! 아빠 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목소리를 한껏 높여 물었다.


“너네 언제 내려오냐?”

“왜? 아빠? 컴퓨터가 또 말썽이야?”


아빠는 멋쩍게 웃으며 우리가 다녀간 뒤 컴퓨터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컴퓨터를 못 보니까 영 심심하고 불편해!”


지난번 코로나가 지금처럼 심각해지기 전에 신랑의 휴가차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사용하는 컴퓨터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는 제주도를 포기하고 친정행을 택했다. 공대 출신인 신랑 덕에 우리 집 컴퓨터는 막내 사위 담당이다. 가격은 저렴하게 사양은 높여서 시중에 판매되는 완성된 제품이 아닌 잘 조합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컴퓨터가 한 번씩 말썽일 때면 대형 전자제품 A/S를 이용하지 못한다. 신랑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로 향했다. 드라이버를 들고 내부를 살펴보고 그냥 닫았다는데 전원이 켜졌다. 아마도 안에 연결된 선이 접촉 불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돌아가자마자 그 컴퓨터가 다시 말썽인 거다.


아빠는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 계신다. 유튜브에서 짤막하게 나오는 서부영화에 꽂혀서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고 계신다는 엄마의 제보가 있었다. 엄마는 내심 쌤통인 듯 물건도 적당히 사용해야지 너무 많이 봐서 고장 난 거라며 잘 되었다는 듯 고소해한다. 아빠 나이 올해 74세. 정년퇴임 후 지금까지 서예 말고는 특별한 취미가 없으신 분이다. 매일 집에서 먹을 갈고 화선지를 접고 글씨를 쓴다. 그도 아니면 복지관에 가서 서예 수업을 받으신다. 그런 분이 십몇 년 만에 새로운 취미를 가지셨다고 한다. 그 기쁨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쯤에나 내려가게 될 거라고 그동안 불편해서 어떻게 하냐고 농담인 듯 가볍게 물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빠는 막내딸인 나를 특히나 예뻐하셨다. 대학교 때였나. 아빠가 친구 분이랑 통화를 하면서 어쩌다 내 얘기가 나왔는데 나를 우리 아기라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아빠는 참 자상했다. 엄마와 투닥거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서 그랬지 우리들에게는 재미있고 편안한 아빠였다. 어릴 적 음식점에서 잠든 나를 안고 집에 돌아오면서 타이즈를 거꾸로 입혀 내가 온갖 짜증을 다 내어도 묵묵히 나를 안고 오셨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TV에서 만화가 나온다며 잠자고 있던 나를 일부러 깨워 함께 봐주기도 했다. 내가 연하였던 독버섯(X남친)을 만나는 걸 알았을 때 서울에 있던 내게 전화를 걸어 “ 아빠는 싫어. 정말 싫어” 라며 울면서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친구들과 술 한 잔 걸쭉하게 드시는 날엔 어김없이 막내딸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던 분이셨다. 그런 아빠가 나에게 전화를 뚝 끊은 건 내가 부모님 몰래 사업한답시고 돈을 다 날려먹은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는 걸 알았을 때부터다. 47년생인 아빠에겐 연하 남편은 이해도 안 될뿐더러 9년이나 연애한 것을 아빠만 몰랐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아빠는 나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엄마와 통화할 때도 옆에 계셨지만 나보다는 손녀들과 통화를 더 즐겨하셨다. 가끔씩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가 대신 전화를 받으면 세상 그리 불편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생 때 홀로 계신 할머니를 위해 우리 가족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향했다. 5남매의 외아들이었던 아빠는 할머니가 죽어도 고향집을 떠나기 싫다고 하셔서 회사를 장항 지점으로 지원해 주말부부 생활을 택하셨다. 한창 사춘기였던 나는 그때 아빠와 떨어졌던 시간만큼이나 아빠와의 거리도 멀어졌던 것 같다. 큰 딸인 언니는 아빠에게 전화도 자주 걸고 따로 용돈도 드리고는 했는데 나는 오직 엄마밖에 몰랐다. 집 전화가 있음에도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아빠가 받으면 서로 어색해했다.


아빠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건 나에 대한 노여움이 조금이라도 풀리신 건 아닐까? 너무도 반가웠다. 컴퓨터 얘기만 하는 나와는 달리 아빠는 손녀들의 안부를 묻고 계셨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예뻐했던 모습이 생각나고는 한다. 아빠와 나는 1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관계에서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야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훌쩍 커버린 딸은 곁에 아빠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보다 할머니를 택한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낯선 동네에서 친구 하나 없이 살고 있는 엄마와 나에 비해 아빠는 고향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어 매일 친구들을 만나 술을 드셨다. 아빠 혼자만 즐기며 사는 거 같았다.




  


커다란 손ㅣ최덕규ㅣ윤에디션



그림책 『커다란 손』은 책을 감싸는 띠지를 보면서부터 마음이 울컥하다. 표지에 보이는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책을 감싸는 띠지이다. 일반적으로 책날개에 감싸져 있는 띠지와는 달리 이 책의 띠지는 위아래로 벗겨내야 안을 볼 수가 있다.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띠지를 벗겨내면 아버지가 안고 있는 갓난아이가 보인다.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너무도 완벽하게 표현한 띠지가 아닐 수가 없다. 책의 시작은 갓난아이가 아빠의 큰 손 중 가장 작은 새끼손가락을 잡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장성한 아들이 병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어릴 적 아빠가 아들에게 해줬던 행동을 아들이 자라면서 쇠약해진 아버지를 위해 같은 행동을 한다.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글이라고는 마지막 장에 딱 한 줄 나오지만 누가 봐도 공감할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갓난아이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아빠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보통 아버지는 아들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거리감과 서먹함은 아버지가 나이 들고 힘이 빠지면서 아들의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연결된다. 아빠와 딸은 어떨까? 신랑을 보면 딸바보였을 아빠가 상상이 된다. 동네에 소문난 딸바보인 신랑은 내가 다음 생에 당신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잘한다. 그런데 그 모습에 우리 아빠가 보인다. 굳이 건너 건너 신랑의 딸로 태어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딸바보인 아빠의 딸이었다. 아빠에겐 항상 죄송한 마음이다. 사춘기 때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마음도 많이 벌어져 있다. 멀어져 가는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심정이 어땠을까. 아빠는 딸 셋의 막내딸로 태어난 나를 처음엔 예뻐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1년이나 지난 후에야 내 이름을 지어 호적신고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엄마에게 말하더란다. 예쁘긴 내가 제일 예쁘다고. 아빠가 나의 이름을 지어주고서야 나는 아빠의 꽃이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빠에게 혼났던 기억이 없다. 사업에 실패해서 오피스텔 전세금을 다 날려먹었을 때도 아빠는 나를 나무라지 않고 홀로 여행을 떠나셨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많이 궁금하고 내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겠지만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여행에 돌아와서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00는 잘 될 거야. 이렇게 큰 일을 겪었으니까 더 잘 될 거야.”


결혼해서 매달 얼마씩 부채 상환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지켜내지 못했다. 서먹했던 관계가 그걸로 인해 더 멀어진 거 같다. 내가 아빠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다. 이미 70대 중반을 바라보는 아빠는 이미 많이 쇠약해지셨다. 열심히 운동은 하고 계시지만 친정에 갈 때마다 늘어나 있는 주름은 세월을 피하지 못한다. 아빠가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은 나에 대한 노여움이 조금은 떨쳐진 거라 착각해도 좋을까? 아빠의 그 살가움이 너무도 따듯해서 어릴 적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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