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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06. 2020

공동육아는 개나 줘버려!

잃어버린 빛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게 아냐. 적어도 할 일은 하면서 해야 하지 않겠어?”
“내가 해야 할 일을 안하진 않지. 우선순위가 바뀐 거지!”
“왜 우선순위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먼저냐고. 애들이 먼저고, 살림이 먼저지.”
“그거 하나하나 다 하고 나면 내 시간이 전혀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내 시간을 확보해야 해.”

매번 같은 말만 반복한다. 서로의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차라리 피하면 피했지, 한 번 시작하면 앵무새처럼 끝없이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왜 이해를 못해주는 거야?”

속상하고 서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누구네 집은 신랑이 요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음식도 직접 다 한다는데 퇴근하고 돌아오면 냉장고 청소도 해준다는데 내가 그런 걸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퇴근하면 아이들을 맡아줘야 내 할 일을 할 수가 있다. 최소한의 내 시간이 보장되지 않기에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내 생각은 다른 곳을 향하게 되고 틈만 나면 작업실로 향하는 것이다. 어떻게 깔끔하게 집안 살림 다 하고 아이들 챙기며 내 일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슈퍼우먼은 되지 못한다.

신랑이 이어 말한다.

“남자들은 참 불쌍해. 퇴근해서 돌아오면 공동육아라고 애들하고 놀아줘야지. 와이프 자아실현도 시켜줘야 하지. 왜 본인 자아실현할 때는 공동육아가 해당이 안되는데? 자아실현은 결혼 전에 하고 왔어야지. 공동육아는 개나 줘버리라고 해!”

농담 섞인 그의 말엔 100% 진심이 섞여 있었다. 그의 말이 틀린 거 하나 없기에 나도 멋쩍게 웃어버렸다. 나는 왜 육아와 살림엔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매번 내 일을 찾겠다고 이 난리란 말인가! 엄마라는 이름 말고 내 이름이 불러지는 곳에 소속되고 싶었다. 직장 다니며 나만을 위해 소비하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인지 신랑 월급으로 내 취미활동까지 하기엔 빠듯하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고 싶은 거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하고 싶었다. 아이가 기관에 간 사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엄마들의 로망이다. 짧은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것이 수익으로 이어지면 완전 땡큐인 시스템. 당연히 그런 꿀직은 없다.

나는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되묻는다.

“내가 만약 돈 벌어오면 나한테 이런 식으로 얘기하진 않을 거지? 내가 지금 돈도 못 버는데 돈만 쓴다고 이러는 거냐?”
“아니! 자기가 돈 벌면 이것보다 더 심하게 하지! 너만 돈 버냐? 이렇게!!”

그것도 맞는 말이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동안 매일 하루 2~3시간씩 신랑이 퇴근하면 아이들을 맡기고 내 방에 들어와 강의를 듣고는 했다. 조금이라도 평소 퇴근시간보다 늦게 오는 날엔 저녁도 차려주지 않고 왜 이렇게 늦었어!라는 불만과 함께 나의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신랑은 계속 놀아달라는 큰 아이와 역할 놀이를 하고 엄마를 찾는 둘째를 달래며 하루 종일 어지럽혀진 거실을 치웠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랑이 오기 전까지 두 아이에게 시달리느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신랑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만큼 내게도 근무시간이 필요했다. 신랑이 퇴근을 했으니 나는 나의 세계로 출근을 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어느 날 저녁 신랑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 그가 보였다. 피로감에 찌들어 무기력한 얼굴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불행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내 행복을 위해서는 신랑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내가 신랑의 희생을 당당히 요구할 만큼 신랑이 없는 시간에 육아와 살림에 최선을 다했느냐. 또 그건 아니다. 참 이기적이고 못되었다. 이러다간 우리 가정이 깨질 것만 같았다.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신랑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짜두었던 스케줄을 전격 수정했다. 가능한 강의는 모두 오전 시간으로 옮기고 신랑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나니 조금씩 우리의 관계도 회복되는 거 같았다. 서로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었는데 신랑의 입에서 공동육아는 개나 줘 버리라는 말을 들으니 또 뜨끔했다. 워라밸이 중요한 만큼 맘라밸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 취미가 점점 일이 되면서 내겐 더 이상 맘라밸이 아닌 워라밸이 되었다. 신랑에게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가정에 충실하라고 요구하면서 나는 정작 그러지 못한다.







홍지혜 글,그림ㅣ엣눈북스



그림책 L부인과의 인터뷰』에서는 사냥을 하려다 남편과 눈이 맞아 인간 세계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늑대 부인이 등장한다. 그저 평범한 엄마로 살아가길 원한다는 L부인은 결혼 전엔  나가던 실력 좋은 사냥꾼이었다. 지금은 매일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며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대단한 늑대도 엄마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똑같은 삶일 뿐이다. 인간 세계에서 평범한 엄마와 아내로 살아가고 싶지만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여전히 늑대였던 과거가 떠올라 힘이 든다고도 말한다. 가끔은 꿈속에서 숲을 뛰어다니며 빨간 망토를 기다린다는 L부인은 지금이 너무 행복하지만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닌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집안일이 모두 끝난 야심한 밤이 되면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찾아 밤의 숲을 헤매기 시작한다. 그것이 남편들에게는 허튼짓이고 보기 싫은 모양새이겠지만 우리는 너무 바쁘게 지낸 탓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 것뿐이다. 엄마들도 엄마이기 전에 나로서 살았던 삶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역할이 늘어났을 뿐이다. 나를 잊은 채 새로운 역할 놀이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삶이 너무 무료해서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앞뒤 생각 없이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나도 내가 잘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의 눈처럼 반짝이는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 반짝임이 사랑스러워서 결혼한 것 아닌가? 그러니 신랑아. 공동육아는 개나 줘버리라고 말하지 말고 잃어버린 빛을 같이 찾아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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