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힘내세요!
가끔은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것은 문득문득 떠올라 동물적 감각보다 더 예민하고 뚜렷하여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어 버린다. 마치 비눗방울이 톡 하고 터질 때처럼 비눗방울 안의 세상과 바깥세상이 마주하게 되는 찰나와도 같다. 신랑과의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내가 연하의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나는 1981년생이다. 1년이나 늦게 호적 신고를 하는 바람에 생일을 앞당겨 학교를 빨리 들어가게 됐다. 내 이름을 늦게 지어준 세월의 보상이라도 하듯 부모님은 생일을 앞당겨 1년의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빠른 81년생. 나는 80년생들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왔다. 이 애매한 설정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부터 꼬여버렸다.
그곳엔 나보다 일찍 입사한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사회에서는 굳이 학번으로 나이를 말하지 않았다. 나를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주민등록증에 찍힌 숫자뿐이었다. 80년생들에겐 언니, 오빠라고 부르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81년생들에게 언니, 누나라고 불리기엔 멋쩍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한동안은 굳이 빠른 81년생이라고 구차한 수식어를 달고 다녔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겐 나는 그저 81년생일 뿐이다. 그래서 첫 직장에서의 동갑내기 여직원과 친구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빠른 82년생이었다! 하아, 이건 또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빠른 81과 빠른 82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무척이나 어색해진 관계로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어릴 적 엄마는 한두 살 터울의 윗 선배들에게는 자존심 상한다며 언니라 부르지 못하게 했고, 반대로 한 살이라도 어린 동생들은 함부로 기어오르지 (?) 못하게 했다. 어떤 계산법에 무슨 의도로 그런 개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지금도 7살 차이 나는 아빠와의 나이 차가 창피하다며 당신 나이보다 4살을 더 올려 살고 계신다. 어려 보이기를 바라는 일반적인 여성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런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에게 살갑게 다가서지를 못한다. 입에서 언니, 오빠라고 처음 내뱉는 말이 세상 껄끄럽다. 그리고 나보다 한 살 어린 82년생들에겐 누구보다 냉정하게 위계질서를 따지고는 했다. 대학 다닐 때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쉽사리 선을 넘으려고 하는 한 살 터울 후배들에게 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대학 다니는 동안 친한 후배 하나 없을 정도이다. 그런 내가 4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엄마도 물론이거니와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그것도 교생실습에서 만난 학생이라니! 그래서 가끔 몰려드는 현타에서 내가 연하 남편과 산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한다. 그것은 부끄러움과 수치심 그 중간 어디쯤의 감정이다.
요즘 온라인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르고 나이 따위는 묻지 않고도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칭하니 나이가 많든 적든 상대를 존중하게 된다. 그 사람의 직업이나 배경을 궁금해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가 있다.
그림책 『도토리랑 콩콩』 에서는 엄마에게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아이, 도토리가 나온다. 도토리에게는 배려심 많은 친구부터 따뜻한 마음을 지닌 친구까지 기쁘고 슬플 때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다.
세상에 나와 새로운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도토리처럼 나 또한 새로운 세상에 나와 있다. 그것은 온라인 속 세상일 수도 있고 앞으로 겪게 될 미래일 수도 있다. 모든 관계가 다시 처음으로 리셋되었다면 용기 내어 반가운 인사를 건네 본다.
"같이 놀자. 콩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