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가 중요하다
올해 나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건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라>라는 공자 말씀이었다. 항상 남들보다 뒤처지고 남과 비교하느라 앞으로 나아가다 뒷걸음치던 나였다. 올 한 해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보자 다짐했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법으로 나아가 보자 했다.
고비는 처음부터 왔다. 그림책에 관심은 있었는데 쉽게 도전하지 못할 때였다. 올봄 4월 정도였던 듯하다. 우연히 그림책 관련 글을 검색하다가 어떤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그림책을 보다 말고 그분이 사용하는 키즈용 플래너에 눈이 꽂혔다. 아이의 규칙적인 생활과 학습 습관을 들여주고 싶어 플래너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플래너는 텀블벅에서 이미 펀딩이 완료된 상태였다. 추가 구입이 가능할까 싶어서 플래너를 만든 사람의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그분은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을 위해 자신의 강점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플랫폼을 운영 중이었다. 앞서 봤던 블로거가 그 프로젝트 1기였고 마침 2기를 모집 중이었다. 시작은 정말 단순하게 나만의 강점을 찾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준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이지 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 같은 전업맘들이 많이 모이겠지 생각하며 마음 편히 참가하고자 했다. 그곳에서 처음 줌(ZOOM)이라는 영상회의를 알게 되었다. 2기에는 나를 포함해서 4명이 모였는데 나를 제외하고 이미 줌(ZOOM)을 이용하고 있었다. 경단녀들이 모여들 줄 알았던 프로젝트는 각자의 일을 갖고 있지만 일을 더 전문적으로 UP 시키려 하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꿀리는 시작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강점 찾기 또한 결국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었다. 6주 동안의 스타터, 마스터 과정을 참여하며 매주 해야 하는 과제조차도 수행할 수가 없었다.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매일 목표를 적어야 하는데 나는 하고자 하는 목표가 없었다.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번 놓치기 시작하니 하기 싫어졌다. 그만둘까? 수없이 생각하며 고민하던 날들이었다.
어느 날 신랑과 대화를 하는데 그만두고 싶다고 말을 했다. 신랑은 왜 그만두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하면 되지 않겠냐며 그 특유의 담백한 말투로 툭 내던졌다.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버티게 했다. 첫 스타터 과정 중의 한 번은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코로나와 아이 때문에 참석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결국 핑계였다. 오프라인에 나서기는 더 창피했던 거다. 그런데 그 모임의 운영자가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겠다고 한다. 평소 집을 노출시키지 않던 나는 일부러 집으로 초대했다. 현재의 나와 집 상태를 보여주며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댈 작정이었다. 집으로 온 그 분과 여러 이야기를 하며 의외로 수다스러운 나를 발견했다. 방 한 가득 리본 재료가 쌓여 있는 걸 보자 그분은 리본으로 시작해보면 어떠하냐고 제안했다. 전에 만들어두었던 플라워 펜을 보고는 당장 주문을 해주기도 했다. 그때가 스승의 날 즈음이라 단톡 방에 올려주고 다른 분의 주문도 받게끔 도와주었다. 그것이 나의 시작이었다. 다시 포기하지 않고 지속되게 할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온라인 세계로 발을 들이고 그 모임이 끝나도 머물지 않고 다른 모임을 찾아다녔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내가 발들인 세상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마치 내가 잠자고 있는 동안 수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꼬마요정처럼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여러 프로젝트를 참여하며 수없이 좌절하고 비교하고 멈춤을 계속했다. 멈추고 조금 나아가고 또 힘들면 멈추고. 멈출 때는 나만의 동굴 속에 완벽히 숨어들었다. 세상과 차단하고 처음부터 나란 존재는 아무도 몰랐다는 듯이 동굴 속에 꼭꼭 숨어있었다. 그러다 조금 살만하면 살포시 얼굴을 내밀어 인기척을 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리더로서는 미적지근한 내가 참으로 걸리적거렸을 거다. 그럼에도 꾸준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내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약속한 바는 늦더라도 지키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멈추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서 한동안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하던 나였다. 그로 인해 우울감은 더 늘어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멈추기까지의 기간이 길어지고 멈추어도 금방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항상 여러 책이나 채널들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많이 봐왔다. 엄청 보잘것 없었다는 사람들도 들여다보면 무언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애초에 그 사람들은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 또한 다른 건 몰라도 꾸준히 하는 것에는 그리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했다고, 시작해보라고, 시작했으면 꾸준히 한 번만 해보라고.
지난 4월에 비하면 나는 많은 것들이 변해있다. 내 주변 환경이 변해있고 관심사가 달라졌으며 소통하는 사람들이 바뀌어 있다. 올 한 해 내가 <나만의 속도로 조금씩 나아가자. 꾸준히만 하자.>라고 버텨왔다면 내년 2021년에는 무조건 OK를 하려고 한다.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 자꾸만 뒷걸음치던 습관을 내년에는 고치고 싶다. 강제적인 장치가 필요함을 느낀다. 올해도 시작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나를 좋게 봐주시고 여러 번 제안을 해주었지만 조금만 더, 잠시만 더 머뭇거리며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모든 제안을 OK! 하려고 한다. ‘생각해볼게요’가 아니라 ‘할 수 있어요, 하고 싶어요’로 바꾸는 연습을 할 거다.
그림책 『하나둘셋, 지금!』에서는 줄넘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세게 돌아가는 줄넘기 안으로 들어가려면 숨을 고르고 줄넘기가 바닥을 탁! 칠 때의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뛰어 들어가고 싶지만 두려운 마음과 여러 장애물로 인해 쉽게 뛰지를 못한다. 정작 뛰어들어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매서운 줄넘기가 철썩 나의 몸을 때리기도 한다.
나는 철썩 때리는 줄넘기가 두렵고 무서워서 친구들이 하는 줄넘기 놀이를 늘상 바라만 보던 아이밖에 되질 못했다. '내가 들어가서 걸리면 어떻게 하지? 나 때문에 친구들이 멈추게 되면 어쩌지? 아프진 않을까?' 나만의 속사정을 꽤나 많이 갖고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운 좋게 줄에 걸리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줄넘기를 넘고 있자면 폴딱폴딱 뛰는 박자에 맞춰 자신감이 붙게 된다. 그리고는 뛰면서 다음 친구에게 말을 하겠지.
00야, 너도 빨리 들어와!
2020년의 나는 숨을 고르고 있던 해였다. 이제는 뛰어들 차례. 다가오는 2021년은 뛰어들어 다치고 아파하면서 줄넘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시기다. 내년의 나는 OK Woman.
(많은 제안 부탁드립니다. 언제든 기다리고 있습니다.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