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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y 26. 2020

공산에 우는 접동

한恨의 정서



공산(空山)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짖는다

너도 나와 같이 무슨 이별 하였느냐

아무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박효관(朴孝寬, ?~?)



접동새는 고전시가부터 현대시까지 꾸준히 등장하는 새다. 소쩍새, 자규,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 이름도 다양하다. 소쩍새는 올빼미과다. 그래서 주로 밤에 운다. 인터넷에서 소쩍새 울음소리를 찾아서 들어보면 ‘접동접동’으로도 들리고 ‘소쩍소쩍’으로도 들린다. 소쩍새가 ‘소쩍당 소쩍당’하고 3음절로 울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솥이 적으니’ 큰 솥으로 준비하라는 뜻이라나. 접동새는 두견새와 곧잘 헷갈리는데 두견새는 뻐꾸기과라서 생김새도 울음소리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접동새는 밤에 우는 새라서, 그리고 울음소리가 구성져서 주로 슬픈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냥 슬픈 정도가 아니라 ‘피맺힌 한’을 대변한다. 조선 말기의 대표적 가인(歌人) 박효관도 어두운 산에서 혼자 우는 접동새에게 자신의 마음을 대입해서 피나게 그리운 사랑을 노래했다.


(source: sanwik.tumblr.com)


흉년에 굶어죽은 막내딸 전설, 시어미의 핍박에 죽은 며느리 전설 등, 소쩍새가 우는 유래는 처절하기 그지없다. 김소월 시인도 <접동새>에서  고향에 전해오는 가슴 아픈 전설을 읊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못된 의붓어미는 열 남매를 학대하다 결국 큰딸을 가두고 불 질러 죽이는데, 딸이 죽은 잿더미에서 새가 날아올라 접동접동 울었다. 접동새가 된 딸은 두고 온 아홉 남동생 걱정에  밤마다 접동접동 울었다. 무섭고 서러운 이야기가 깨끗하고 담백한 언어로 쓰여서 더 처절하다. 전설 속의 누나는 4연에서 어느새 ‘우리 누나’가 되어 있다. ‘누나’가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며 걱정하는 가족은 그 의미를 확대하면 고통 받는 겨레다. 소월의 언어는 아름답다. 슬프고 아름답다. 폐부를 찌르고 심장을 꼬집는다. 군더더기도 모호함도 없다. 소월은 그런 언어로 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를 노래했다.        



(source: sparksfly.tumblr.com)

한(恨)은 설명하기도 번역하기도 어렵다. 그냥 슬픈 것도 아니고,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단지 서러운 것도 아니고, 단지 억울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화가 나는 것과도 다르다. 울화병도 아니고 우울증도 아니다. 복수심도 자괴감도 아니다. 그리고 본인 걱정은 아무리 절절해도 어쩐지 한이 아니다. ‘한’의 정서에는 내가 아닌 남이 있다. ‘누군가’가 개입돼 있다. 연인이거나 가족이거나. 한은 관계의 확장이다.


그리고 이미 끝난 일에 연연하는 것도 어쩐지 한이 아니다. 한이란 말에는 달성하지 못하고 확인하지 못한 답답함이 있다. 이루지 못한 꿈이거나 닿지 못한 사랑이거나 갈 수 없는 고향이거나. 한에 어두운 기운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은 순기능도 한다. 영혼의 표면에 상처를 내기보다 영혼에 깊이를 더한다. 예술로 승화한다. 기운이 된다. 그래서 한은 열정이나 집단의지나 감정이입 같은 말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은 한국인의 EQ지수다.


어떤 사람은 한국인이 핍박을 많이 받아서 한이 많다고 한다. 난리를 많이 겪어서 한이 많다나. 그런데 생각해보라. 우리는 한을 약한 의미로 쓰지 않는다. ‘한을 품다.’ ‘한이 많다.’ ‘한이 서리다.’ 약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은 패배감이 아니다. 실패나 좌절에서 온다기보다 시도와 저항에서 오는 정서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무서운 힘이다. 그것이  접동새가 대답하는 이 없어도 ‘피나게 울고’,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우는’ 까닭이다.  


고등학교 때 부여로 수학여행을 갔다. 밤에 백마강 나루에 4열종대로 앉았다. 한밤중이어서 물도 까맣고 하늘도 까매서 기분이 아찔했다.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 그럴까. 강물소리만 났다. 담임선생님이 흥이 났는지 필이 돋았는지 ‘백제의 한이 흘러가는 소리’라며 한마디 했다. 한이 흘러가면서 가만히 가지 않고 나루를 흔들면서 갔다. 배를 탄 기분이었다. 낙화암에서도 느끼지 못한 고대의 한을 거기서 단체로 느낄 줄이야. 무녕왕릉 생각은 안 나도 그때 나루터는 지금도 생각난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내 한을 건드려 주면 짜릿하다.

같은 한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도 짜릿하다.

한은 외로우면서 외롭지 않은 기분이다.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하느냐 말이다. 

진짜 접동새만 알려나. 


(title image source: unsplash.com, photo by 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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