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만 하지 말고, 종종(種種) 행복하길

by whilelife


<꽃을 심다>


꽃 심을 땐 언제 필까 걱정

꽃 피면 또 언제 질까 걱정

피고 지는 일 모두 걱정만 가득해

꽃 심는 즐거움 난 아직 모르겠소


-『동국이상국집』「꽃을 심다(種花)」/ 이규보 作 -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는 사람들을 잘 관찰하던 사람이었던가 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은 물론이고 주변의 사물들을 잘 관찰하여 현대인이 읽어도 참신하면서도 공감가는 글들을 써서 남겼습니다. 이규보의 시 <종화(種花)>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시를 읽은 순간, 저는 마치 이규보가 어리석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쓴 것은 아닌지 뜨끔하고 말았습니다.


제목의 '종화(種花)' 는 '심을 종'과 '꽃 화' 두 글자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심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원인입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도 '심는다'는 말의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한문에서는 '종선(種善)', '종덕(種德)'이라는 말이 종종 사용됩니다. '종선'은 '선을 심다'라고 해석되며 일반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종덕'은 '덕을 심다'라 해석할 수 있는데 덕을 행한다는 말을 이리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선'과 '덕'은 행하면 나에게 다시 돌아 온다는 믿음을 가진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옛 사람들은 '공부를 한다'는 것을 '종학(種學)', 즉 '배움을 심는다.'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공부의 결과에 대해 자기 자신의 노력을 얼마나 철저히 책임지우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종(種)'의 느낌을 가지고 위의 시를 한문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種花愁未發 종화.수미발

꽃 심을 땐 언제 필까 걱정


花發又愁落 화발.우수락
꽃 피면 또 언제 질까 걱정


한시의 첫 구와 둘째 구의 내용을 보면 시인의 자신의 마음을 잘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꽃을 심을 때는 언제 싹이 나서 꽃이 필까 걱정합니다. 이 안에는 다양한 층위의 걱정이 숨겨져 있겠지요.


죽은 씨앗은 아닐까, 때에 맞추어 비가 내려줄까, 지나던 새가 새싹이라도 파먹어버리면 어쩌나, 하며 씨앗의 타고남과 환경의 적절함까지 모두 걱정투성이입니다. 꽃이 핀 뒤에도 이를 감상하며 즐기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시인의 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開落摠愁人 개락.총수인
피고 지는 일 모두 걱정만 가득이니


未識種花樂 미식.종화락

꽃 심는 즐거움 난 아직 모르겠네


시인은 꽃을 심고 걱정 가득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꽃이 피고 지는 모든 일이 모두 근심거리이니 꽃 심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겠다고 말이지요. 어여쁜 꽃이 피면 이를 완상하려고 꽃을 심을 텐데 스스로 꽃 심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인의 뼈 있는 말이 유머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현재를 즐길 줄 모르고 근심 속에서만 사는 자기 자신과 인간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하지요. 한편으로는 그만큼 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절실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래를 기대하고 근심하면서 현재를 즐길 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은 한없이 가여워집니다. 아무리 즐거운 일이 바로 곁에 존재한들, 걱정 때문에 발견해내지 못하니 말입니다. 너무 기다려져서 근심이요, 너무 아름다워 떠날까 근심이라니요.


시를 바라보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이야기이구나 싶었습니다. 인연도 어쩌면 '종(種)'이라는 글자로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인연은 씨앗을 심은 뒤에도 가꾸고 돌보는 일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연을 다룬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바로 곁에 둔 사랑하는 이들을 걱정하느라 함께 지내는 지금 이순간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자주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연을 다루며 느끼는 불안이 두려워 심었던 꽃을 뽑아버리거나 애써 인연을 맺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지요. 혹은 맺은 인연마저 애써 외면하고 심지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규보는 어땠을까요? 근심덩어리인 꽃을 뽑아버렸을까요, 아니면 다음해에 또 꽃을 심었을까요? 이규보의 다른 시에는 꽃을 심은 날 찾아온 친구와 함께 꽃을 다 심은 뒤 술을 나누어마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이규보는 근심가득하다 하지만 꽃 심는 것을 그만두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규보는 단절보다는 소통을 택했던 것이지요.


꽃을 심지 않고 걱정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위안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꽃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감내해야하겠지만요. 이규보와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있음을 선택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음미하는 것, 그것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생존을 위해 인간 존재가 그렇게 진화해왔다고 하니, 아마 저만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 스스로 진화의 결과를 이겨낼 수 없어 이렇게 근심이 드는 순간을 어쩔 수 없다해도 하루 중 단 한순간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의 행복을 느껴보길 스스로에게 당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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