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참 맛있는 과일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거기에 계절이 차가워지면 나오는 귤인지라 귤, 하면 집안 풍경이 덩달아 떠오르지요. 좋아하는 만화책이며 소설책을 읽으며 이불 위를 뒹굴거리다 입이 심심해지면 귤바구니에서 귤 하나씩 까서 먹다 보면 순식간에 내 옆에는 깐 귤의 껍질들이 수북하게 쌓이고, 내 손 끝은 노랗게 물들어 있습니다. "귤 좀 아껴먹어라! 귤 박스 나르다 허리 휜다!" 하셨던 엄마의 장난스러운 잔소리도 찬 겨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사랑으로 추억됩니다.
지금의 나는 이제 어른으로, 내 엄마가 하셨던 것처럼 이제는 나의 아이들에게 귤박스를 날라다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스를 열고 맞이하는 선명한 귤 색을 맞이하는 이 셀렘을 어떤 과일이 대신할 수 있을까요. 며칠 전, 처음으로 귤을 박스 채로 사 와 가장 맛있어 보이는 말랑한 귤을 들고 이런저런 한시들을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고려시대에도 귤을 먹었다는 사실을 한시를 통해 알게 되었게 때문이지요.
또 귤을 읊다
손에 쥐고 굴리면
동글동글 사랑스러운 귤
어이해 눈 내리는 계절
중국 강남에서만 보리
한 개라도 쉽사리
쪼개어 보지도 못하는 건
머나먼 천리 길 따라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야
又詠橘 우영귤
掌中持弄愛團團 당중지농애단단
何必江南雪裏看 하필강남설리간
一箇忍堪輕擘破 일개인감경벽파
邈從千里致長安 막종천리치장안
어떠신가요? 고려 중기를 살다 간 이규보가 쓴 한시입니다. '또 읊다'라는 제목을 보면 예전에도 귤에 대해 시를 쓴 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규보가 일상을 시로 짓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귤에 대한 감상이 특별했던 것이리라 생각해봅니다.
한시 속에서의 이규보의 모습은 마치 현재의 우리와 같습니다. 약 천년 전을 살다 간 고려시대의 사람도 내가 그러는 것처럼, 손 위에 귤을 올려두고 둥글게 굴려보았겠구나 싶지요.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과 달리 귤이 매우 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여력만 되면 박스채 사다 먹을 수 있는 귤이건만, 이규보는 '차마, 단 하나라도 쉽게 쪼갤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먼 중국에서 고려로 이동해 온 수입 과일이었던 듯합니다.
귤 하나도 애틋하게,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아껴먹는 이규보의 모습을 보니, 이틀 만에 귤박스 하나를 통째로 먹어치웠던 사춘기 시절이 떠오릅니다. 나는 그리도 흔하게 먹었던 과일을 옛사람은 그리도 감사한 마음으로 조금씩 아껴 먹었으니,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감사할만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편, 배부른 채로 귤을 새로 까서는 못 먹겠다며 상온에 방치했다 속껍질이 말라가자 맛없다고 버렸던 지난 어느 날의 내 모습도 떠올라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이규보에 비해 저는 너무도 쉽사리, 함부로 껍질을 까서 감사할 줄 모르고 소비했던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시를 소개해주고 가족 모두 한바탕 서로서로 감사의 한마디를 내뱉느라 왁자했습니다. 귤 하나로, 우리 가족 모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졌습니다. 귤이 풍족한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시를 읽은 후 내 손 안의 귤을 보니 새삼 둥글둥글 사랑스럽습니다. 고려시대, 귤을 소중히 여기며 맛보았던 그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저도 조심스레 쪼갠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어봅니다. 이규보의 한시 덕분에 눈으로 보는 귤의 맛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만, 이규보가 맛보았던 진짜 귤 맛은 어땠을까요? 그 맛이 지금과 얼마나 같고 달랐을지 상상해 보며 귤을 먹는 지금 이 순간 잠시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