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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카를교인가 카렐교인가

피할 수 없는 프라하의 보석

by Total Eclipse




맛있는 반찬은 아껴둔다. 밥 한 공기가 거의 바닥이 드러날 때쯤. 계란 프라이를 보통 그렇게 끼니의 후반부에 먹는다. 최고의 맛으로 향해 가는 식사가 즐거워진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뷔페에 가서 샐러드 류로 위장에 신호를 주고 나서 메인 요리를 갖고 온다고 하는데, 참을성 없는 나는 고기나 초밥을 첫 접시부터 가득 채운다. 두 번째 접시부터는 조금이라도 식욕이 떨어질 테니까. 한계효용 법칙의 충실한 추종자.

외국으로의 여행은 뷔페와도 같다. 처음을 꿀처럼 달콤하게 즐겨야 한다. 지구의 자전으로 우리나라에서 출발한 항공편은 대부분 우리의 시간대를 뒤따라오는 지역에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참을 날아갔는데도 한국의 시각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거나, 난다고 해도 당일 아침에 떠나면 당일 점심에 도착하는 식이다. 하루를 공짜로 얻는 거다. 맘먹고 떠난 귀하디 귀한 여행에서 하루가 덤으로 생긴 셈이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만큼의 손해는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여행지의 날짜에서 만 하루를 훌쩍 넘겨 귀국한다고 해도, 안도감과 피곤함의 앙상블로 그냥 자면서 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먼 곳으로의 여정일수록 도착 후 첫 접시는 진수성찬인 것이다. 시차적응은 사치다. 해가 떠 있으니 프라하를 단박에 맞닥뜨려야 한다.

말라스트라나 구역에서 카를교를 향해 가는 길

폐를 통해 동유럽의 산소가 채워지고 순환하면서 체취는 프라하의 공기 냄새와 섞인다. 이국의 공항에 착륙해 게이트를 빠져나가면서부터 우리는 낯선 냄새로 공간 이동을 실감한다. 후각과 공간감각은 그렇게 연결된다.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거리로 향하면서 그 낯설기 그지없는 냄새의 총합은 우리의 숨과 어우러진다. 생경한 도시의 냄새란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음식과 의복, 생활습관과 문화 등이 녹아있는 것이어서 후각의 예민함은 여행의 감수성과 비례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낯선 도시 특유의 냄새가 감지되지 않고 코가 둔감해졌다면, 이미 현지인처럼 배회해 보기의 준비가 모두 끝난 상태라 할 수 있다. 프라하의 공기 속 냄새 분자는 부드러운 듯 묵직한 요동을 치고 있었다. 강성한 제국들의 소유욕에 휘둘려 왔으나 고요한 강직함으로 끝내 홀로 선, 내공 가득한 도시의 아우라와 어울리는 것이다.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알려진 묘지도 찾는 여행자들은 많지만, 묘지가 주가 된 탐방자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우쭐함의 발로일지 몰라도, 남들 다 가거나,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랜드마크를 굳이 가야 하나 하는 삐딱함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관광지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럴 필요 없었다. 남들 다 가는 명소는 명소의 이유가 있었고 역사가 있었다. 게다가 처음 온 프라하 아닌가. 건방 떨지 말고, 눈앞에 보이는 도시 최고의 인싸 여행지에 올라타 보는 거다. 카를교다.

카를교를 오르는 계단
카를교

인터넷 TV를 서핑하다 보면 가끔 옛날 여행 프로그램이 보이는데, 프라하 편에서 자막처리된 이 다리는 '카렐교'다. 비교적 근래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꽃보다 할배 리턴즈(2018)> 에서도 할배들과 짐꾼 이서진 씨는 '카렐교'를 건넌 것으로 소개된다. 이상하게도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카렐교'는 '카를교'로 자막 안내가 되면서 '부분 개명'을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외국어 표기법상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지금도 포털에서 검색을 하면 '카를교'와'카렐교'가 섞여서 나오고, 심지어 꽤 많은 블로거들도 신경이 쓰였는지 '카렐교(카를교)' 하는 식으로 두 이름을 모두 제목에 넣더라. 그러니까 나만 이렇게 쓸데없어 보이는 고민을 하는 건 아니란 소리다. 다리에 오르는 상상을 할 때부터 중첩된 두 개의 이름은 운동화 속 자갈처럼 까끌거리고 신경 쓰였다. 쓸데없는 것에 필요 없는 집중을 하곤 하는 버릇이 이럴 때 도움이 될까.


1357년에 다리의 공사 명령을 내린 주인공은 체코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카렐 4세(Karel Ⅳ 1347~1378)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기도 했던 카렐 4세는 제국의 일부였던 체코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고, 프라하의 도시확장을 위한 건설사업에 매진했다. 카를교 동남쪽 지구는 노베 메스토, 즉 신시가지로 지금도 불리고 있는데 여행자들의 착각은 금물이다. 이 신시가지란 것이 동탄이나 송도 신도시 같은 현대적 개념이 아니라, 650년 전 카렐 4세 때 새롭게 조성했던 구역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시가지는 관광 스폿이 몰려있는 구시가지와 이질감 없이 연결돼 있어, 우리가 보기엔 구시가지나 신시가지나 별반 차이가 없다. 프라하 밖의 도시에도 카렐 4세의 흔적은 차고 넘친다. 온천도시로 뜨고 있는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를 비롯해 카를스베르크(Karlsberg) -덴마크의 맥주와 헷갈리지 말자. 그건 Carlsberg다. - , 카를스크로네(Karlskrone) 등이 있다. 도시나 건축물에 본인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을 즐겼던 카렐 4세는 블타바 강 최초 돌다리의 명칭에도 당연히 본인의 이름을 담아야 했을 것이다. 'Karluv most(카렐의 다리)', 그래서 붙여진 다리의 명칭이다. 아마도, 정말 아마도 'Karluv'라는 소유격 형용사는 [카'를'루프]로 발음을 하게 되니, 실제 현지 발음과 유사하게 표기하는 추세에 따라 '카렐' 보다는 점점 '카를'교로 부르고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아님 말고. 치열했던 고민의 결론은 이렇듯 시시하다. 죄송할 뿐이다. 이 세계 최고의 낭만적인 다리에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어쨌든 난 이 다리의 이름을 '카를교'로 부르기로 하겠다.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블타바강
어둠이 내리는 카를교

여름밤 공기에 수분이 더해지면서 카를교는 낭만투성이가 된다. 연인들의 애정행각은 진청색으로 짙어지는 하늘을 틈타 점점 과감해지다가, 다리의 조명이 환하게 비추면 다시 수위가 낮아진다. 프라하의 밤에서는 무엇이든 용서가 될 텐데, 과감함을 계속 유지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엿보고 싶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사랑의 속삭임은 프라하 다리 위 풍경의 일부로 박제된 지 오래니까. 없으면 섭섭하고 불완전하다. 이제 나의 비강과 폐는 프라하의 공기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내 숨이 곧 프라하의 냄새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꼴레뇨에 생맥주를 음미하러 가야겠다. 카를교를 건너고 난 뒤의 맥주는 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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