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 뮤지엄, 그리고 프라하
대표하는 색이 있다면 그 도시는 최소한의 아이덴티티를 보유한 것이다. 강력한 이미지로 세계인들의 뇌리에 박히도록 하는 것이 국제도시의 임무라 한다면, 이미지 구성의 최강자인 시각효과를 고양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필수적인 방법은 도시의 대표 빛깔을 만들어내는 것이겠다. 국가나 자치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색감이 만들어지는 도시가 있는 반면, 오랜 세월 그냥 그렇게 살아왔더니 둘러싼 빛깔이 그렇게 고착화되어 버린 곳도 있을 것이다.
드론샷으로 내려다본 프라하는 붉은색이다. 중세부터 하나씩 세워진 건축물의 지붕이 붉기 때문이다. 체스키크룸로프 등 많은 체코의 도시들이 주로 그렇다. 같은 색으로 통일해야 하는 조치를 물론 내렸을 것이다. 공중에서 바라보는 그 색은 선명한 빨간색이라기보다는 숨이 죽은, 낮게 깔린 붉은 점토의 색이다. 체코를 찬미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이 붉은색의 고색창연함에 숨이 멎는다. TV 화면 속 알알이 박힌 붉은색 지붕의 조합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도시를 사랑할 준비를 마친 거나 다름없다.
걸으며 보는 프라하는 어떨까. 붉은 지붕은 일부만 볼 수 있기에 건물의 입면이 심상 속 색을 결정한다. 관광객들의 목적지인 구시가지는 연한 갈색부터 세월이 달라붙은 진한 고동색의 스펙트럼이다. 아무튼 갈색 톤이다.
프라하는 단순하지 않다. 신시가지나 말라스트라나 남쪽 구역은 베이지를 베이스로 한 파스텔 톤이 주를 이룬다. 물을 많이 머금은 수채화의 색깔이다. 지붕색도 붉은 결이 물결치고 있으니 도시 안 거리 풍경도 딱 떨어지는 단색의 이미지겠지. 프라하는 다채로웠고 선입견은 박살 났다. 박살 난 선입견 뒤로 반짝하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아. 이 화가의 색감이 그래서 그랬구나.
이름을 부를 때 어감은 상당한 역할을 한다. 성명학(姓名學)을 깊게 파고들지 못하더라도, 어느 누군가를 부를 때 내 입술과 구강으로 감지되는 공기의 변화는 기분을 좌우한다. '알폰스 무하'라는 화가는 그래서 호명을 할 때부터 날아갈 듯하다. Alphonse Mucha는 한글이 아니지만 '무하!' 하고 허공에 음파를 쏘는 발화자의 입 모양은 국적을 불문하고 밝고 가볍고 깨끗하다. 무하의 그림은 그 자신 이름의 감성이다.
그의 그림은 곧 프라하의 풍경이다. 늘어선 프라하의 건물에 무하의 그림을 걸어두면 배경이 보호색이 되어 묻혀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오해는 금물이다. 그의 파스텔 톤은 흐리멍덩한 빛이 아니다. 그림 속 묘한 대비로 모든 색이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반짝이는 매력인 것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화를 이뤄낸 '프라하의 봄'을 예고한 듯, 부드럽지만 강한 체코 민족의 컬러인 것이다. 프라하에 왔으니 무하의 신비함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거대한 미술관의 압박이 없다. 무하답다. 무대 포스터, 광고 전단, 쿠키 상자 등을 막론하고 전 세계로 번진 그의 그림은 중압감이나 장벽이 있었다면 애초 만들어지지 않았을 결과물이다. 넓지 않은 전시 공간이지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알폰스 무하의 그림을 실물로 영접할 수 있다. 무하의 팬들은 쿨해야 제맛이다. 그림과 그림 사이를 사뿐하게 뛰어넘는 관람객들은 국립미술관의 그들과는 달라야 제격이다. 산업디자인과 순수미술의 두 영역을 조합한 선구자는 그렇게 낮은 문턱 뒤로 먼 곳에서 온 이방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알폰스 무하는 무대 장식 화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빈으로 달려가 첫 직장인이 되었다. 연극 포스터나 상업광고 미술가로서의 성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연계 경험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방랑벽이 있는 무하는 미쿨로프(Mikulov)란 도시를 여행하던 중 돈이 떨어져 마을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머물게 되었다. 이 지역의 대지주 쿠엔 벨라시 백작은 그림 솜씨가 뛰어나다는 한 여행자의 소문을 들었고, 자신의 성에 프레스코화를 그려줄 것을 무하에게 부탁하게 되면서 전설은 시작된다. 무하의 실력을 알아본 백작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기로 약속을 했고, 무하는 뮌헨의 아카데미로 미술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좋은 의미의 뒷배는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는 원동력인 것. 19세기 말미, 예술가들에게는 꿈의 공간이었던 국제도시 파리는 무하를 유혹하기에도 충분했겠지. 파리의 '아카데미 줄리앙'으로 소속을 옮긴 무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 - 12살 위의 절친 폴 고갱도 그들 중 하나였다 - 과 교류하며 그만의 화풍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통 이런 부사절이 나타나면 운명의 순간이 도래했다는 뜻이다. 운명의 순간은 대타의 순간에 찾아왔다. 파리의 한 인쇄소에서 교정 일을 하고 있던 친구 카다르가 크리스마스 휴가를 가게 됐다며 무하에게 대신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꿀 알바라 여기며 신나게 교정 작업을 하고 있던 무하의 귀에 인쇄소 사장님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미치겠네. 이런 기회가 없는데..."
"뭣 땜에 그러세요?"
"사라 베르나르 알지? 최고로 잘 나가는 미녀 연극배우. <지스몽다>라는 연극이 곧 상연된다면서 홍보 포스터를 급하게 좀 만들어 달라고 하네. 근데 포스터 그릴 사람을 지금 어디서 구하냐고. 아, 이것만 잘 만들면 대박인데 말이야. 혹시 잘 아는 화가 있어?"
이후의 일은 상상에 맡깁니다. 네. 상상하신 그런 스토리가 맞습니다.
사라 베르나르를 그려 넣은 무하의 연극 포스터는 초대박을 쳤고, 알폰스 무하라는 이름은 전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국민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무하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자신의 모든 연극 포스터를 그에게 일임했으며, 무하는 연극 포스터뿐 아니라 향수, 과자, 자전거 등 광고 포스터와 순수 미술 연작 포스터를 그리며 미국에까지 진출해 '글로벌 무하 스타일'을 정립하게 된다. 무하의 뒷배는 탈 유럽급이었다.
승승장구를 거듭한 무하는 조국 체코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면서 <슬라브 서사시>라는 회화 대작을 말년에 완성하게 되는데, 스무 편에 달하는 각 작품에는 슬라브 민족과 체코의 결정적 역사를 그려 넣었다. 멜랑콜리한 고국사랑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발흥하는 게르만주의가 자신의 조국을 위협하자, 슬라브의 민족성에 자신감을 고취해 위기를 넘어보려는 애국적 시도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의 혁명을 일으킨 이 현대적 인물은 그렇게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프라하의 빛을 여전히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색을 부르는 방식이 대륙에 따라 다르다는 건 참 흥미진진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파랑 계열의 색은 이런 것들이겠다. '파랗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퍼렇다. 푸르죽죽하다. 푸르무레하다. 푸르뎅뎅하다.' 영어로 표현된 푸른색의 아류들은 '코발트 블루. 사파이어 블루. 인디언 블루. 딥 블루. 페일 블루. 스카이 블루. 다크 블루. 네이비 블루. 미드나이트 블루.' 역시 닫히지 않는 블루의 나열이다. 우리의 푸른색 계열은 어간이 살아있고 어미에 진하거나 연한 느낌을 담아, 시적인 동시에 음가(音價)로 색을 구분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발음으로 짐작해야 할 색의 상태라서 한국인이 아니면 구분하기 어려운 느낌의 단어들이다. 영어의 여러 블루들은 어떨까? 명확한 개별 단어들의 기계적 조합이다. 코발트와 블루가 합체했고, 스카이와 블루가 뭉쳤다. 색의 정체를 짐작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고, '딥 블루', '네이비 블루'는 더 쉽겠다. 한국어의 푸른색들이 소리로 구분된다면 서양의 블루들은 의미로 나누어진다. 예외는 있다. 'Bluish'. 영한사전을 검색하면 '푸르스름한'으로 나오니 영락없는 소리의 색깔이다. 그렇지만 우리말에 비해 다양성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알폰스 무하의 색은 소리로 발현되는 빛깔이란 느낌은 왜일까? 색의 농도나 채도와 관계없이 무하의 파스텔 톤은 딱딱 떨어지는 개별로서의 '라임 옐로'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청량감 있는 그의 이름처럼 무하의 노랑은 불러야 입혀지는 색깔이다. 분절되지 않는 그라데이션 내부의 노르스름하고 싯누레한 그의 색채는 또한 프라하를 부르는 빛깔이다.
무하는 프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