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구시가지 감상법
여행의 문을 열어젖히는 감각은 후각이라고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나아가는 걸음에 눈동자가 좌우로 바삐 진자운동을 하면서 신기할 것도 없는 타국 공항의 광고판을 탐색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강력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낯선 향기, 혹은 이국적인 냄새다. 냄새는 감지되는 동시에 뇌 속 해마와 편도체에 순간적으로 저장되면서 기억과 감정을 깨우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 우리는 전 여친이나 남친이 쓰던 로션이나 향수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도심에 발을 딛고 트렁크를 굴리기 시작하는 순간, 감각의 중심은 촉각의 차지가 된다. 대륙 중에는 유럽이, 유럽 내에서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특히 그렇다. 중세와 근대에 박힌 수많은 돌들이 아직도 도시의 하중을 지탱하고 있는데, 관광객의 손을 타 반질반질해진 조각상처럼 거의 모든 돌바닥이 반짝거린다. 맑은 날에는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고 비가 내리면 빗물이 코팅돼 반짝이며, 밤에면 프라하 특유의 노란 조명을 받아 반짝거린다. 고색이 창연하고 낭만이 낭자한 시각 효과도 이처럼 충만하기 짝이 없지만, 무엇보다 발바닥을 통해 노골적으로 느껴지거나 트렁크 바퀴를 타고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특유의 양감(量感)과 진동이 프라하 돌바닥의 존재 목적이다. 프라하는 걸어야 알 수 있는 도시다. 발이 아프다거나 트렁크를 끄는 소리가 거슬린다고 불평하면 안 될 일이다. 세월이 굳어진 돌 위의 도시, 프라하에서라면 그래야 한다.
길거리 음식을 사 먹기 위해 여전히 지폐가 필요하지만, 이제는 외국 여행길에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대부분의 결제가 가능한 시대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는 소문보다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가슴 시린 경험담이 심금을 울린다. 다른 걸 다 포기해도 이래저래 스마트폰만큼은 내 생명같이 지켜내야 할 보물이 되었다. 혹시라도 잃어버리는 참사가 일어난다면? 예약도 못하고, 결재도 못하고, 무엇보다 여행을 간증할 사진도 찍을 수 없다. 이 전지전능한 발명품을 어디까지 더 의존하게 될지 머릿속이 서늘해지는 시대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로마의 트레비 분수는 고전이고, 관광객들이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 장소는 이런 곳이다. 특정한 건물이나 단순한 경치를 조망하는 곳보다는 사람이나 사물이 퍼포먼스를 하는 공간. 그러니까 매 시간 정각이 되면 해골과 수탉, 예수의 열두 제자가 현란한 율동을 보여주는 프라하 천문시계탑 앞 구시가 광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프라하 시 당국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치안이 크게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정각을 앞두고 골목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넋 놓고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공간이다. 소매치기 입장에서는 목표물의 주의가 이만큼 분산되는 기회도 없을 것이다. 알아서 조심들 합시다!
걱정을 덜 수 있는 팁 하나! 어차피 유럽 갔으니 낮맥주 한 잔 정도는 기본이란 걸 동의한다면, 시계의 퍼포먼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뒤로 살짝 비켜서 늘어선 노상 카페로 들어가자. 맥주와 안주의 가격은 다른 곳에 비해 살짝 비쌀 수 있으나 귀족처럼 앉아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시계탑의 쇼를 감상할 수 있다. 맥주와 감튀를 점심 한 끼로 여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런치 쇼란 이런 것이다.
정각이 되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줄을 당기고, 인형들이 고개를 까딱거린다. 시계 윗부분의 두 창문이 열리면서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자들이 퇴장한 후에는 새벽과 삶을 상징하는 황금수탉이 울면서 퍼포먼스는 끝이 나는데, 이 과정이 너무도 짧다. 허탈하다. 길게는 20분 전부터 집결해 있던 패키지 관광객들의 탄식이 구시가 광장을 메우는 순간이다. 어쩔 수 있나. 화려한 시절은 금방 지나가 버리는 것. 죽음과 삶이 교차하며 반복하는 세상사는 찰나를 반복하며 누적된 결과물이다.
천문시계탑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정리해 드린다.
때는 1410년. 마르틴 루터로 이어지는 종교개혁의 본좌인 얀 후스의 시대에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 시민들로 가득했다. 시계가 완성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신기한 시계 이야기로 일상을 채웠고, 도시의 관심사는 온통 시청사 벽에 만들어질 시계탑뿐이었다. 기다리던 시계가 작동을 시작하는 날, 몰려든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문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황도 12궁이 그려진 작은 원판, 일출과 일몰시각을 알려주는 해와 달. 시계의 내부에서 갑작스레 등장하는 예수의 제자들이 높이 솟은 시계 속에서 한 치의 오차 없는 교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물론이고 프라하시의 권력자들조차 이 불가사의한 기계를 창조한 하누슈라는 시계 명인을 우러를 수밖에 없었다. 시계의 모든 작동법과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건 그 하나뿐이었으니까.
프라하시의 권력자들은 감탄과 동시에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누슈가 이런 시계를 다른 도시에 또 만들어버리면 어떡하지? 주목받는 건 프라하로 족한데 말이야."
어느 날 밤, 기계장치의 설계도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던 하누슈의 집에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하누슈를 붙잡고 재갈을 물린 뒤 그의 두 눈을 파내버렸다. 괴한들을 사주한 게 누구인지는 물론 뻔하다.
도시의 슈퍼히어로가 당한 처참한 테러에 이튿날 프라하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정작 피해자인 하누슈 명인은 범인 수색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칩거에 들어갔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는 제스처였다. 시민들의 뇌리에서 끔찍한 사건이 잊힐 무렵, 하누슈는 천문시계를 더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만들겠다며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수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제의 도움을 받아 시계탑 안에 들어간 그는 두 손으로 능숙하게 시계장치를 조작했고, 작업이 끝나자마자 시계의 현란한 움직임은 모두 멈춰버리고 말았다. 수리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도시의 가장 큰 자랑이었던 시계가 얼어붙자 충격에 빠졌고, 비명을 질러댔다. 아연실색하던 시의원들은 시계탑으로 다급히 올라갔는데 거기서 본 것은 목숨이 끊어진 하누슈의 모습이었다.
여기까지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체코의 작가 알로이스 이라세크(1851~1930)의 '구시가지 시계의 전설'의 내용이다. 실제 역사를 보면 시계공 미쿨라스가 천문학교수의 도움을 받아 1410년 시계를 제작했고, 하누슈라는 시계 명인은 1490년 황도 12궁 등이 포함된 천문시계의 하단 부분을 만들어 시계의 성능을 개선했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를 희생자로 둔갑시켰으니, 사실 반 허구 반의 서스펜스 복수극이다. 과도한 재능은 재앙을 불러오는 법이라는 씁쓸한 교훈과 함께, 나만 잘 나갈 거야 하는 이기심은 개인을 넘어 도시 전체의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알로이스 이라세크. 개별 국가의 이기심이 극에 달한 지금, 그의 경고는 유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구시가지 광장의 반대편에는 붉은 지붕의 골즈킨스키 궁전이 있다. 18세기 중반 골즈 백작의 저택이었던 이 건물은 한때 프라하의 잘 나가는 계층의 자제들이 다니던 왕립 김나지움(독일어권 유럽의 중등 교육기관)이기도 했다. 이곳을 졸업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마도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아닐까. 주입식 교육에 잔뜩 불만을 가지고 있던 카프카는 결코 이 김나지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대과 나라를 막론하고 주입식 교육은 피하지 못할 사회 문제인 것인가. 1948년, 스탈린주의자 고트발트가 공산 혁명을 일갈한 연설 장소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골즈킨스키 궁전은 이제 현대미술관으로 변신해 전 세계의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체류시간이 짧은 방문객들은 반드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시가지 광장. 카를교 쪽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사람들과 광장을 빠져나가는 한 묶음의 인파가 교차한다. 동유럽의 공기는 외지인들의 숨결과 섞여 오묘한 향기를 싣고 허공을 떠다닌다. 프라하의 우여곡절을 받아낸 돌바닥은 이방인과의 접촉을 통해 보헤미아의 웅숭깊은 감성을 끌어낸다. 이젠 추모의 공간으로 떠날 준비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