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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에서 다시 보헤미아로

체코의 정신, 비셰흐라드 묘지 ③

by Total Eclipse






비셰흐라드 묘지를 십여 분 이상 배회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글자가 있다. 'Rodina'라는 단어가 여러 묘비의 상단에 새겨져 있거나 쓰여있다. 체코어에 문외한인 나는 그것이 베트남 국민 열 명 중 네 명이 갖고 있다는 '응우옌'이란 흔한 성(姓)과 같이 체코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명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묘비의 최상단이나 가장 왼쪽에서 시작하는 단어인 걸로 보아 성이 아닌 이름이겠거니 싶었던 거다. 참고로 2025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기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남아, 여아의 이름은 각각 도윤이와 서아라고 한다. 철수와 영희는 지금 시대에 차라리 세련된 이름일지도 모른다.

Rodina는 '가족'이란 뜻의 체코어였다. 아하, 이 아름다운 언덕 위의 국립묘지는 누군가의 가족들의 영면까지 허락하고 있었구나. 비셰흐라드에 함께 누워있는 일가는 평화로운 내세에 얼마나 가없이 녹아들었을까. 이곳에 묻힌 축복된 가족들이여, 주위의 외로운 영혼들도 더불어 품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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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253153706.jpg Holych 가족과 Kadlcova 가족의 묘석과 묘비


체코의 두 번째 국민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의 묘지로 걸어가며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를 듣는다. 넓지 않은 비셰흐라드 묘지 내에서도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묘지는 지척이다. 우리나라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2악장을 들으려면 한참 멀었고, 영화 <죠스>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4악장이 나오려면 공원묘지를 수 십 바퀴는 돌아야 할 듯하다.

의아한 것은 묘 형식의 차이다. 사방이 뚫려 하늘로 곧게 솟은 스메타나의 묫자리와는 달리 드보르자크의 안식처는 지붕이 덮인 기다란 회랑과 벽감의 사이에 마련되었다. 스메타나의 얼굴은 비석의 표면에 2차원적으로 달라붙은 형식이나, 드보르자크는 자신의 묘비 위에서 추모객들을 당당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입체적으로 맞이하고 있다. 드보르자크가 국립극단 오케스트라 연주자였던 시절, 이미 체코의 유명인사가 된 스메타나가 극단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면서 걸출한 두 국대 작곡가는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는데, 이 정도면 사후에도 이웃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형식이 다른 묘지처럼 두 사람의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구별해 감상해 보라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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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8_103421.jpg 드보르자크가 안치된 회랑 내부


드보르자크 역시 소도시 출신이다. 넬라호제베스(Nelahozeves)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버지 프란치셰크의 장남으로 태어나 거처를 옮겨가며 음악적 재능을 연마했다. 그러고 보니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의 집안을 합치면 으리으리한 비어가든이 탄생할 뻔했다. 맥주를 사랑해 마지않았던 스메타나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던데 반해, 지극히 가정적이었던 드보르자크의 복부는 전형적인 비어밸리의 곡선이었다고 한다. 술보다는 고기가 내장지방에 더 영향을 끼친 것이었을까. 양조장 아들과 정육점 아들은 그렇게 거장이 되어 갔다.

술과 안주의 상보 관계만큼이나 두 사람의 조국 사랑은 반대 방향에서 비롯되었다. 체코 내에 머물며 넘치는 조국애를 밖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인물이 스메타나였다면, 영국과 미국에서 활약하면서도 고국을 그리며 음악으로 향수를 달래던 쪽은 드보르자크였다. 그의 대표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는 미국 체류시절 흑인 영가 등 이질적 장르의 음악들이 효과적으로 조합된 작품이지만, 악장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보헤미아의 정서가 곡의 분위기를 잡아끌며 고국에 대한 뭉근한 사랑을 토해내고 있다. 두 거장의 나라사랑은 체코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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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셰흐라드 묘지의 회랑 벽면에 서 있는 비석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다. 체코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사들의 쉼터겠지만 동방의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저 조각 작품들이 늘어선 공간과도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죽음 전에 본인의 무덤을 디자인해 놓은 인물들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묘지는 후손을 비롯한 타인이 장식한 결과물이다. 망자의 삶을 대표하는 의미가 비석에 글로 새겨지고, 조각으로 이미지가 그려진다. 동시대의 주변 세상이 죽음을 맞은 누군가에게, 그의 살아온 궤적에 맞춰 흔적을 남겨주는 것이다. 거기엔 망자의 삶이 농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프라하의 이 언덕에 잠들어 있는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어도, 죽어서도 타자와 경계를 두고 서 있는 비석 위 작품들은 그들의 삶이 어떤 향기를 지니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묘지 탐방은 망자들의 미술관이다.

나의 걸음과 함께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이 회랑을 따라 흐른다. 묵직한 향수(鄕愁)가 묘지에 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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