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정신, 비셰흐라드 묘지 ④
한여름의 초록은 지나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법이다. 풍성하게 키워낸 잎새들은 저마다 과도한 광택을 자랑하며, 멀리서 바라보는 공원이나 정원의 나무들은 호수의 윤슬에 비견할 만한 윤기를 발산하고 있다. 코발트빛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있으니 색의 조화는 청량하기까지 하다. 덥고 지친 하루였지만 초록의 충전을 받아 내일은 더 힘이 날 듯하다. 세상엔 먹는 비타민 말고 보는 비타민도 있는 것이다.
한 뙤기의 정원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 여름 초록은 공포스러운 법이다. 온난화로 폭염경보가 일상화된 요즘, 다 제쳐두고 바깥에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싹하다. 오싹하면 소름이 돋아야 자연스러운데 땀구멍이 개방되다니. 인체의 신비다. 정돈된 초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한 말의 땀을 하늘에 바쳐야 한다. 꽃과 나무를 둘러싼 잡초들의 키는 어제보다 족히 10센티미터는 자란 것 같다. 온전히 수직으로 크는 것들은 그나마 봐줄 만하지, 울타리에 줄기를 감아 수직과 수평으로 한없이 뻗어나가는 덩굴 잡초는 수 천 개의 촉수가 달린 괴물과도 같다. 태양의 심술이 벌써 보름째라니. 초록색을 보기만 해도 체온이 급상승할 것만 같다.
정원 가꾸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꾸는 자의 성실함과 정원의 아름다움은 정비례할 뿐이다. 제주 애월에 살던 시절, 로망이었던 정원을 소유했던 나는 초록의 아름다움이란 것이 얼마나 혹독한 노동과 희생을 먹이로 삼는 결과물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름다운 정원 가꾸기', '우리 정원에 어울리는 100가지 꽃과 나무들'. 가슴 콩닥거리며 사 모은 가드닝 책들엔 온통 미소만 가득했고 고통은 없었다. 하긴 "한여름 나무에 맵시혹나방이 창궐했어도 열사병 걸릴 수 있으니 그냥 놔두세요." 이런 문장이 있는 책은 존재하기 힘들다. 그렇다 해도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의 고충도 솔직히 경고하는 가드닝 안내자는 없을까?
있었다. 그것도 무려 1929년에 발간된 책의 저자인 이 사람. 카렐 차페크(Karel Čapek, 1890~1938)다.
체코는 예술의 에너지가 응축된 곳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세계에 충격을 준 음악가와 미술가, 그리고 작가들이 봇물 터지듯 배출된 믿기 어려운 대가들의 산실이다. 그중에서도 체코 문학의 휘황찬란함엔 누구라도 눈이 부시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위용을 보라. 얀 네루다(1834~1891), 알로이스 이라셰크(1851~1930), 야로슬라프 하셰크(1883~1923), 프란츠 카프카(1883~1924), 보후밀 흐라발(1914~1997), 밀란 쿤데라(1929~2023). 폭염보다도 숨이 턱턱 막힐 가공할 라인업이다. 이런 게 드림팀이라는 거다. 심지어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 마사리크(1850~1937)와 벨벳혁명의 주인공이자 민주화의 리더였던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은 탁월한 작가이기도 했다. 체코의 공기 속엔 영감의 입자라도 둥둥 떠다니는 것일까. 시대를 주름잡았던 이들 중 비셰흐라드 국립묘지에는 얀 네루다와 카렐 차페크가 안장돼 있다. 물 흐르듯 써 내려간 문장들이 지금보다 몇 곱절은 더 인정받아야 마땅할 카렐 차페크. 그의 묘지 앞에 선다.
알고 있듯, '로봇(Robot)'이란 단어를 희곡 작품에 처음 사용해 전 세계로 퍼뜨린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선 카프카나 얀 네루다에 밀리는 이름값이지만, 체코 내에선 국민작가 반열에 한참 전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Zahradnikuv rok)>이라는 얇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나는 그의 승낙 여부와 관계없이 제자를 자청하기로 했다. 물론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이겠지. 1929년의 글들은 정보와 위트를, 통찰과 창의를 담뿍 머금고 있었고, 무리를 하지 않아도 유려하게 술술 뽑아져 나오는 문장의 힘은 번역된 한글에서도 숨겨질 수 없었다. 이 가드닝 에세이는 1월에서 12월까지 정원가가 해야 할 일들을 구분해 놓은 형식이지만, 이어지는 각 달의 글은 단속적이지 않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서문 격인 책 앞머리에 이미 노출되어 있다.
"누가 가드닝을 목가적이고 명상적인 일이라고 했나. 마음을 바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가드닝 역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열정 그 자체다."
그래서 정원가란 꽃이 아닌 땅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정원가는 죽어서 나비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한 마리 지렁이로 환생해야 한다는 카렐의 신조다. 가드닝을 주제로 쓰려면 이 정도 수준은 돼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스마트폰에 카렐 차페크를 입력하면 맨 아래에는 그의 이름을 딴 유기농 차의 가격비교 항목이 나온다. 뭔가 아는 업체의 상호명이다. 인정한다.
체코 국민의 입장에서 카렐 차페크의 마지막 순간이 비참하지 않았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세계 2차 대전 발발 이전, 발흥하는 나치를 강력히 규탄했던 그는 반(反) 파시즘 투사로 체코와 체코의 문학을 지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연히 게슈타포의 제거 대상에 올랐지만, 독일이 프라하를 침공하기 직전인 1938년 12월 폐렴으로 생을 마치게 되었다. 만약 그가 투쟁적 삶을 더 이어갔다면 이 언덕 위 묘지가 이토록 평화롭게 보였을까. 인간의 삶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지만, 후대에 그를 추모하는 입장에서는 카렐이 나치의 압제에 스러지지 않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리라.
카렐 차페크는 희곡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에서, 342살의 나이에 영생불사의 약물 복용을 중단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은 주인공 마크로풀로스의 결단을 묘사한다. 아직 쓸 것들이 많았던 카렐 자신에게 약물이 있었다면 언제까지 복용하게 되었을까. 잘 가꾼 화단을 가리키며 이랬을지도 모른다.
"저 안의 녀석들처럼 자연스럽게 있다 가는 거지 뭐."
안쓰러운 것은 카렐의 형 요제프 차페크다. <정원가의 열두 달>을 비롯해 동생이 출간한 책 속의 많은 삽화를 그린 화가였던 그의 최후는 달랐다. 동생의 사후 1년 뒤, 요제프는 반 파시즘 활동으로 나치에 체포되어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끌려가 생을 마감했다. 형제의 우애가 작품 속에서 녹아 나왔기에 더 안쓰러운 것이다. 반전과 재치가 넘치는 동생의 문장은, 형의 따스한 삽화와 만나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다. 요제프 차페크의 각이 무딘 그림을 보고 누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터져 나오는 정원의 소박함은 보물 같은 형제의 힘이다. 지금 그들은 하늘정원을 정성스레 가꾸고 있겠지.
다시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쿠키의 포장지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알폰스 무하. 1893년, 민족부흥운동에 큰 기여를 한 체코의 위인들을 한 자리에 모셔둔 '슬라빈'이란 형식의 공동 무덤에 그가 속해 있다. 스메타나의 비석 건너편에 높이 돋아있는 형태라 비셰흐라드 묘지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추모 공간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우주의 사멸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갔던 대가들의 죽음이라면 그들과 같이 사라졌던 우주는 얼마나 신비로웠을 것인가. 멀리 떨어진 동유럽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인물들의 보금자리는 그래서 슬픔보다는 광휘의 기운이 넘실대는 듯하다. 솟아있는 비셰흐라드 국립묘지는 프라하를 상징하고, 체코민족을 대표하며, 나아가 슬라브의 자존심이다. 유럽의 장삼이사들이 묻힌 공간을 탐방하기 전, 거물들의 아우라를 목격한 셈이다. 프라하는 우여곡절이 거듭제곱된, 굴곡진 희생으로 세워진 도시였다. 무게감이 부담스러워 어깨에 힘을 빼고 다음 여정을 떠나야겠다. 그런데 렌터카의 시동을 켜는 순간부터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