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tal Eclipse Oct 06. 2020

16 꼬닥꼬닥 다시 걷는 바닷길
-제주올레 3-B코스

모든 곳의 어떤 것들







 10월이 됐습니다. 

 인생 전체가 열두 달이라고 한다면 저는 아직 열 번째 달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사고 없이 장수하게 된다면 7월 말, 평균수명을 누린다면 8월 중순쯤을 지나고 있지 않을까요? 모든 1년과 10년이라는 단위에 똑같은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남은 생을 감사하게 여기며 알차게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달력은 매 달의 농도가 같을 수 없습니다. 전체 열두 달 중 1월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훌쩍 지나게 버리게 되고요, 대략 3월까지는 좌충우돌하며 반성하고 재도전해야 할 노도(怒涛)의 시기이겠습니다. 반대로 11월 중순쯤부터는 정신과 육체의 기운이 떨어지면서 무엇에 집중해 또렷한 삶을 유지하기에 쉽지 않은 인생의 말기가 되겠지요. 인생의 10월은 그래서, 한 사람의 내공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유, 무형의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을 가장 확실한 계절이라 믿게 됩니다. 1월부터 9월까지 쌓아 온 지식과 지혜, 기쁘고 아팠던 경험이 노련함이란 무기와 버무려져 수확의 계절을 증명하는, 황금빛으로 눈부신 기간이 아닐까요.  

 1년 중 열 번째인 현실의 10월도 축복을 받은 시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직은 한낮에 더운 9월과, 본격적으로 스산해지는 11월 사이에서 추수의 기쁨과 부드러운 가을의 공기를 온몸으로 흡수할 수 있는 날들의 집합이지요. 매년 10월이 되면 마음도 따라서 부드러워집니다. 오름에 앉아 억새의 군무를 감상하는 계절이고요, 날씨의 스트레스가 없어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순도 100퍼센트로 떠올릴 수 있는 추억 재생산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1월에서 2,3,4,.... 12월까지, 숫자를 앞에 붙여 한 달씩을 표현하니 어려울 게 없습니다. 앞의 숫자만으로 대략적인 그 달의 날씨와 심지어 동, 식물의 활동성까지 알 수 있으니까요. January, February..로 표기되는 달력을 보아도 어렵지 않게 해당 월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쓰고 말했던 것들에게서 갑자기 낯설고 이상한 느낌을 받을 때가 간혹 있는데요, 오늘은 달력 이야기를 하려니 서양식으로 표기된 각 달의 명칭에서 이런 궁금증이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유럽 언어의 시조인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나타내는 mono(1)-di(2)-tres/tri(3)-tetra(4)-penta(5)-sex/hexa(6)-septem/hepta(7)-octo/octa(8)-novem/nona/ennea(9)-decem/deca(10)라는 숫자 관련 접두어는, 그리스나 라틴계열 언어를 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해당되는 숫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한국어를 말하고 한글을 쓰는 우리도 '트라이 포드'니 '테트라 포드'라는 명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고, '옥토퍼스'가 다리 여덟 개 달린 연체동물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달력에서 찬찬히 각 달의 명칭을 곱씹어보면 어찌 이상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요. 1월 January부터 8월 August까지는 로마의 신들이나 황제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리고 그의 조카의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렇다 치는데 9월부터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달들의 연속입니다. September는 '7'을 뜻하는 'septem'이란 접두사가 있으니 7월이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10월인 October는 마땅히 8월에 갖다 붙여야 할 이름인 거죠. 문어가 '옥토'퍼스니까요. 마찬가지로 November는 9월, December는 12월이 아닌 '10월'이 되었어야 합니다. 부드러운 사색의 계절이자 풍성한 수확의 계절인 10월이 그 명칭부터 원리에서 어긋나 있으니 어찌 찝찝하지 않겠습니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당연히 '로마'력(曆)을 사용하던 로마에서,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으로 역법 체계를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0개의 달로 구성된 하나의 묶음이 12개의 달로 더 세분화되면서 2개의 달이 추가되었고, 새롭게 만들어진 두 개의 달을 먼저 첫 번째, 두 번째 순서로 배치해 원래의 1월은 3월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어지는 달들도 두 계단씩 뒤로 미뤄지는 바람에, Septmber인 7월은 9월이, October였던 8월은 10월이 된 것이라고 하죠. 한 사람의 결정이 후대의 전 세계인들로 하여금 원 뜻과는 상관없는 명칭을 쓰게 만들고 있으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대단한 인물이었음이 확실합니다.    


 무조건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October'입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걸어보자고 다짐을 합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다음날 새벽에 출근한다는 핑계로 퇴근 후 집콕을 하고 금요일에 그리운 벗들을 만납니다. 당번이 아닌 주말 중 하루는 숙취해소에, 마지막 일요일은 소파와 한 몸이 되는 일주일의 루틴을 벗어나야겠습니다. 평소 걷는 것은 자신 있었으나 작정하고 올레길을 걸어보자 결심하니, 갑자기 무리하는 건 아닌지 약해빠진 걱정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한적한 야외라 안심이 되어도 혹시 모를 코로나19의 매개체가 되는 민폐를 끼치면 안 되겠기에 그중 유명 관광지를 지나지 않는 올레코스를 택합니다. 사실은 3년 전 한 번 완주했던 코스입니다. 그때야 올레축제가 열렸던 코스여서 많은 올레꾼들과 함께 했지만 여간해선 줄지어 가는 올레꾼들을 자주 볼 수는 없는 길, 제주올레 3-B 코스입니다. 


  제주올레 3코스의 출발점, 온평포구


 올레 3코스는 A와 B, 두 개의 노선이 있습니다. A코스는 통오름, 김영갑 갤러리 등을 경유할 수 있는 길이고 B코스는 바다를 바짝 옆에 두고 표선해수욕장까지 내달리는 해변 코스입니다. 3년 전 기억도 되살릴 겸 B코스를 선택하고 긴 숨을 들이마시며 2만 보(步)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약간은 더운 듯하나 괴롭지는 않을 정도의 날씨입니다. 무엇보다 하늘과 바다의 색이 제대로입니다. 그러면 된 거죠.


 제주 동쪽 성산읍 온평리는 제2공항의 예정지로 발표된 이후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동네가 돼 버린 곳입니다. '이것저것 다 고려해 보니 새 공항은 필요하고, 여러 평가를 거쳐 장소도 나라가 합리적으로 결정했으니 그에 따르라' 하는 주장에, 의견은 찬, 반으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지역주민이 상처를 받았고, 격돌하는 주제와 논리도 이젠 지겨울 따름입니다. 다만 그렇습니다. 한때 연(年) 천 5백만 명이 들어와 심한 몸살을 앓았던 제주에 4천,5천만이 들어오는 상황을 감안해 새 공항을 짓겠다는 것이 무척 걱정스러운 것이죠, 공항만 늘어나면 되는 일일까요? 그 천문학적 숫자를 수용해야 하니 숙박시설과 도로, 환경처리시설도 그에 맞춰 건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저는 환경단체의 회원도 아닙니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끔찍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주민들은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을지, 관광객들은 그런 곳에 과연 오고 싶을지 의문인 것입니다.

 또 하나의 생각은 강정마을의 사례와 맥을 같이 합니다.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서 폭증하는 관광객에 대한 적절한 대책과 정당하고 객관적인 조사로 나온 국가의 2공항 건설 예정지 결정이었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따라야 했을 테지요. 그러나 제2공항의 추진과정 역시 강정 해군기지의 그것과 별반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대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들을 투명하게 밝히면 될 일인데 그 기본적인 궁금증도 풀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어찌 뭉쓰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무려 '나라'의 결정이니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런 시대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건지 허탈함을 숨길 수 없습니다. 투명함과 정정당당함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설 자리는 어디인지요.


 그야말로 바다를 두르고 있는 온평 환해장성(環海長城)


 3-B코스의 시작은 환해장성의 안내판과 함께 합니다. 삼별초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처음 성이 지어졌다고 하는데요, 야트막한 부분은 여느 제주의 집을 둘러싼 담장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저 그 담이 바닷가에 있을 뿐이죠. 그러나 이 정도의 높이라 해도 몸을 웅크리며 적을 교란시키는 것은 가능할 듯싶었습니다. 제주도내 여러 곳에 환해장성이 있지만 이곳 온평리의 장성은 아래 계단 부분을 그나마 다듬어 놓고 그 위에 담을 쌓은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단순 관광객을 넘어 한 단계 깊이 제주의 속살을 느끼고자 하는 분들은 제주의 무덤을 둘러싼 '산담', 목마장 주위에 쌓았던 '잣성',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설치한 '원담' 등 제주 '돌과 담'의 역사를 들여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적이 드문 제주의 바닷가는 금세 사람을 무장해제시킵니다. 파도의 움직임과 제주 동쪽 바다 특유의 코발트빛은 나그네의 가볍지만은 않은 생각들을 정리해 줍니다.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검은빛의 해변 끝에 악센트가 되어 있는 등대들은 잃어버리기 쉬운 원근감을 첨가합니다. 적어도 이 코스의 올레길에선 시선이 바다 쪽으로 고정되는 까닭에 두 다리의 피로함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듯합니다. 예상대로 해안도로에 걷는 사람은 나 혼자 뿐입니다. 마스크도 쓰고 있으니 이만하면 양심 있는 올레꾼이 아닐까요.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을 하나의 사진처럼 이미지의 프레임에 담아 마음속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그 프레임 안의 광경을 '자연'이라고 부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칭송합니다. 마치 산이나 바다의 한 부분을 뚝 떼내어 '자연'이라 설정해 놓고, 나 자신은 그 자연과 따로 존재하며 프레임 밖에서 그 자연을 평가하는 독립된 주체로 여기는 것이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객관적인 양 자연을 객체화시켜 평가하는 글과 말을 보고 들으면 이상하게 몸이 배배 꼬이고 불편합니다. 누군가 조물주가 되어 창조한 세상에 하나하나 스스로 점수를 매기는 느낌이랄까요. '세상'이라고 존재하는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아무것도 따로 구별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도 자연이고 내가 보는 것들도 다 자연이지요, 내 살갗 표면과 공기가 접촉하는 경계 역시 자연의 한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 몸과 공기, 바다와 돌, 모든 것이 그저 물감 풀어지듯 한데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을 자꾸 나누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면 저는 그 습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봅니다. 참 까다로운 녀석일뿐더러 아무래도 배배 꼬인 건 제 속이 아닐까 합니다. 자연이 아름답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말꼬리 잡고 늘어지다뇨. 이런 인간 꽈배기가 없습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2017년 제주올레걷기축제 개막일 3-B코스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함께


 파업이 장기화할 때면 서울에서 각 총국의 노조 집행부가 모일 일이 잦습니다.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하니 긴밀히 논의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파업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러움의 시선을 독차지하곤 했습니다. 제주는 어찌 그리 파업 프로그램이 다양할 수 있느냐 하는 거죠. 제주도는 그 안에서 누가 노동조합을 이끌던 프로그램이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올레 걷기를 예로 들면 일단은 노조의 재정에 거의 부담이 가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온 국민들에게 파업의 취지를 알릴 수 있을뿐더러 조합원들의 건강까지 증진시킬 수 있으니 일석삼조인 셈입니다. 게다가 올레길과 같은 파업 맞춤형 공간이 한 두 곳이 아니니, 파업 프로그램의 한 축인 도보 선전전을 계획한다면 갈 곳이 넘치는 곳이 제주도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덕분에 타 지역 지도부들 앞에서 어깨가 으쓱 올라간 기억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파업이 길어지는 것은 누구도 원하는 일이 아닐 거라는 건 확실합니다. 


 '꼬닥 꼬닥'걷는다는 제주올레 이사장님의 표현이 썩 맘에 듭니다. 호기롭게 첫 발을 내디디고 진격의 올레꾼 모드를 유지하다가 중반을 지나 골반이 뻐근함을 느낄 때쯤, 자가 운송수단인 두 다리를 내려다보며 한 발자국에 "꼬닥!", 다른 발을 내디디며 또 "꼬닥!" 소리를 내 봅니다. 야무진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며 한 입 한 입 천천히 씹듯, 걸음마다 나아가는 내 몸이 신기하고 고맙기도 해서 걸음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꼬닥!"소리와 함께.    




 제 철이 아니라 뜸하게 보입니다만 한치의 형님 뻘인 준치를 말리는 모습은 제주 동쪽 해안도로 특유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다만 그저 덩치 큰 한치를 준치라 하는지, 준치라는 다른 종이 뚜렷이 구별되어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맛있으면 되는 거겠죠. 좀체 변하지 않는 풍경에 몸이 지루해질 때쯤 동네 견공들을 마주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추파를 던진 겁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두 녀석 중 가까이 있던 친구에게 인사 좀 나누자는 신호를 보냈더니 슬쩍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고 스킨십을 허합니다. 녀석의 애교가 더 과해지기 전에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저 멀리 보이시는지요? 해변에 이미 내려가 있는 견공의 눈초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이런 싸한 느낌은 멀리서도 포착할 수 있는 법입니다. 남편이라도 되는지요. 난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남자일 뿐이다 하며 미련을 갖지 않고 놓아줍니다.    


 중요한 회의가 있었는지 교육이 있었던 날이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아도, 그 장면은 생생히 기억 속에 있습니다. PD 선배님이었습니다. 탁자의 빈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놓인 수 십 명 분의 인쇄물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배열한 뒤 스테이플러로 찍어내고 계셨습니다.


 "도와드릴까요?" 

 

 마땅히 해야 할 질문이었습니다. 


 선배님은 이러시더군요.


 "아냐, 크아 ~~ 난 이런 일이 너무 행복해, 단순작업이 적성에 딱이라니까!"   

  

 반 농담이 섞인 대답이었기에 웃음으로 반응했지만, 머리 아픈 일들의 한가운데에서는 스테이플러로 종이를 찍어대는 지극히 단순한 작업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되돌아보니 그건 제 적성이었습니다. 똑같은 업무라도 명민하게 지름길을 파악해내지 못하고 무조건 순서대로 하나씩, 한 장씩, 한 명씩... 

 접수한 응시인원을 차례로 정리한다거나 서류 수 백장을 복사해서 순서에 따라 가지런히 분류하는 일은 희한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가 "어려울 거야..." 하면 필요 이상으로 겁을 집어 먹지만, "지겨울 텐데?" 하면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떠맡습니다. 오히려 100분의 1, 50분의 1, 20분의 1로 서서히 남은 작업량이 줄어드는 것이 확실히 눈에 보이니 시간이 갈수록 성취감으로 고무되었던 것이죠. 그러니 '희한하게도'가 아니라 '당연하게도'가 맞는 수식어겠습니다. 200만 년 전에 도구를 사용했다는 호모 하빌리스 조차 가능했을지 모를 단순작업에 희열을 느끼는 부류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부류에 그 선배님과 저는 확실히 속해 있을 테고요. 부끄럽지 않습니다, 절대.

 따지고 보면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야말로 올레길 걷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인간상이 아닐까 합니다. 꼬닥꼬닥 걷는 한 걸음마다 70센티미터씩 목표에 가까워지고, 70센티미터 전방의 경치를 보장받을 수 있으니 어찌 도중에 멈출 수 있을까요. 걷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겠습니다. 성취감 고양과 동시에 생계 해결이라는 엄청난 혜택이 있을 테니까요.


  

  신풍-신천 바다목장


 처음 이 올레길을 걸었을 때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르면 느닷없이 광활한 풀밭이 펼쳐집니다. 진청색 바다와 연두의 풀밭이 어우러져 약간의 비현실감마저 자아냅니다. 바다목장이라고 해서 어패류를 양식하는 '바닷속' 목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뜻 그대로의 목장인데, 그저 바닷가에 있는 목장일 뿐입니다. 초지의 경계가 현무암 직전까지 형성되어 있어 현무암 절벽 바로 뒤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아도 엉덩이가 푹신합니다. 저 멀리 소들이 보이는군요, 제주에서도 유난히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는 걸 이 녀석들은 알고 있을까요?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병을 옮긴다는 진드기가 두려워 풀밭에서 '뛰논다'는 표현에 주저하게 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뛰고, 구르고,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보고 싶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다는 걸, 애써 차분한 척 걸어가며 떠올립니다.


 3-B코스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멀리 표선 해수욕장의 드넓은 백사장이 보이니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 거리야 가뿐하지 하고 내뱉었어도 혹시나 도중에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됐던 것이 사실인데요,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아직 이 정도 거리는 가볍게 완주해야죠, 암요. 

 거만한 걸음걸이로 백사장을 향해 성큼성큼 보폭을 넓힙니다. 오히려 다리에 힘이 붙습니다. 올레길 도보 중에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있는 건지요. 아, '워커스 하이(walkers' high)'라고 해야 맞겠군요.  


  표선 해수욕장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 백사장이 더 광막해졌습니다. 바다는 모래사장 수 백 미터를 걸어야 그 끄트머리가 보일 뿐입니다. 올레길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관광객들이 여기 다 있었군요. 백사장과 해변공원에는 가족단위로 오신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방역수칙 잘 지켜주시겠지요? 

 백사장을 지나 코스의 종착점에 도착합니다. 3년 전, 깃발을 들고 단체로 목적지에 골인했을 때의 감동은 없을지라도 걷다 보니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비교적 한산한 코스는 또 어디 있을지, 다음에 도전할 올레길을 탐색해 볼 요량으로 휴대전화 검색을 하니 시계방향으로 제주 한 바퀴를 둘러싼 전체 올레코스가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왜 올레길은 시계방향으로 만들어졌을까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테고, 그 이유를 아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모르겠습니다.  



 

 보통 지인들이 제주를 찾아 함께 바닷가를 드라이브하게 되면 저는 반시계 방향으로 일주를 합니다. 여행 일정이 넉넉할 때 하루는 차의 오른쪽에 바다를 끼고 제주시내에서 애월, 한경, 안덕이 있는 서쪽 지역을 달리고, 다음 날은 서귀포에서 출발해 제주 동부를, 역시 오른쪽에 바다를 낀 채 위로 올라가곤 합니다. 차와 사람이 공히 우측통행인 우리나라 통행 방침을 고려할 때 차나 사람이 진행하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만 살짝 돌리면 코발트빛의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반대편 차선이 나와 바다 사이에 놓이지 않으니 제주의 풍광을 즉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죠,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니겠습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를 대자면, 저는 아재 모드로 소파에 누워서 TV를 볼 때 왼쪽에 머리를 두고 누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TV를 시청합니다. 목이 오랜 시간 왼쪽으로 돌아가 있으니 한쪽만 뻐근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제주의 해안도로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이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이죠. 경치 감상에도 유리하고 경추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좋지 아니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올레길은 저의 바람과는 다르게 '시계'방향으로 조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반대방향으로 걸으면 될 거 아니냐고요? 물론 그러면 됩니다. 단지 올레길 '정'주행이 아니라 '역'주행인 셈이니 기분이 썩 개운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무언가 떠오릅니다. 주위 환경이나 스토리가 있는 보행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서 결정된 올레의 방향이겠습니다만 '안전'이라는 요소를 감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3-B 코스 중에 왕복 2차선 이상의 찻길은 별로 없었지만, 바닷가와 바싹 붙어 걷다 보니 바로 옆의 차선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들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평소 어둑한 출근길 운전을 할 때도 뒷모습을 보이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더 아찔할 때가 많은데요, 차라리 마주오는 차를 보며 산책을 하는 게 훨씬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만약 올레 코스가 반시계 방향으로 되어 있었다면 달려오는 차들을 감지하기 어려운 구간이 많지 않았을까요. 진정 이런 부분까지 반영한 코스 구성이었다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도 모자람이 없겠습니다. 


 


  표선 해수욕장 산책로 주위에는 인상적인 수형의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잎은 뾰족한데 나무 자체의 모습은 그동안 익숙했던 침엽수가 아닙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나무들입니다. 

 음... 그렇습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아 상대적으로 짜리 몽땅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림 속에서 진한 여운을 남겼던 바로 그 나무들과 너무도 닮은 모습입니다.


  반 고흐, 사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Cypresses and Two Women), 1890


 밀밭의 전설이 탄생한 고흐의 생 레미 요양원 시절의 그림입니다. 정신적인 아픔으로 치료를 받던 시기,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그의 캔버스 속으로 들어와 있는데요, 가슴 벅차게 재현했던 노란 물결의 밀밭과 함께 기괴하리만치 뻗어 올라가는 사이프러스는 고흐의 마음속에 인성(人性)이 부여된 특별한 캐릭터로 자리 잡았을 것 같습니다. 프로방스의 전원에 우뚝 서 있는 사이프러스도 매력적이지만 표선의 거칠 것 없는 백사장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향나무'도 전체 풍경의 조연으로 손색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화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투영하거나, 빛만을 포착해 인상주의적으로 표현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대상을 해체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어떤 화풍을 택하던 그리고 싶어 미칠 하늘과 땅이 있는 곳이 제주니까요. 올레를 걷다가 무심히 자리 잡고 능숙한 붓질로 제주의 환상을 그려낼 수 있다면 상상 이상으로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 능력을 갖지 못했으니 한 글자 한 글자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일 테지만, 이번엔 표현력과 문장력에 한계가 있음에 한숨이 내쉬어집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모든 감정과 인상들을 날것과 가깝게 표현할 날이 있겠지요. 때로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공간을 찾는 일도 표현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구석구석 걸으며 맥박이 빨라질 황홀함을 경험할 수 있는 제주는, 그래서 예술을 품은 섬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이 섬에서는 그려 보시고, 들어 보시고, 써 보시길 권합니다. 잠시 왔다 가시더라도요. 

 

 제주 동남쪽의 거침없음은 여전했습니다. 완주하길 잘했습니다. 


 오늘 밤은 잠이 잘 올 듯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제주 동물보호센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