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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Sep 30. 2021

덩그러니

[페르귄트모음곡}중<Solveig'sSong> byGrieg

https://www.youtube.com/watch?v=VO28hcugBaU








  혼자 광막한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생각보다는 괜찮습니다.

 보호막이 없는 오롯한 혼자이기 때문에 더 탁 트인 느낌이라고 할까요. 

 바람이 냉기를 머금기 시작하는 계절, 폐로 흘러 들어오는 공기는 거침없이 상쾌할 뿐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런 기분 느낀 적 있나요?

 상실의 쓰림과 극복의 안도감의 반복으로 도무지 중심이 잡히지 않던 시간을 걷던 중 맞닥뜨린.

 문득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한 단계 위로 올라선 감정 말입니다. 


 진중한 음악에 도취되거나 풍경의 일부가 된 듯 멍하니 제자리에 박혀 있을 때 그런 순간은 찾아오곤 하죠.

 그 사람과 헤어진 건 단 한 번뿐인데 왜 데자뷔처럼 이런 느낌은 수시로 찾아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혼밥과 혼술, 혼행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진 세상이라 퍽이나 다행인 것을.

 외로움과 고독이란 단어에는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차이가 있다네요. 

 외로움은 그야말로 외로움 그 자체. 어찌 됐건 외로운 상태라면

 고독이란 선택이 가능한 단어.

 홀로 됨을 수동적으로 견디는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 온몸을 부딪혀 받아들인 상태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고독은 거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니체는 고독을 끌어모아 사상을 정립했고

 고흐는 고독을 붓 삼아 빛을 색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니 이제는 혼자인 나는 고독의 길로 가야 하는 게 마땅하겠지요?

 외로움에만 머물다 하수구로 빠져버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독의 앞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마치 뒷바퀴를 이끌 수밖에 없는 앞바퀴처럼요.

 니체도 고흐도 평온한 어느 오후 

 난 고독을 택해 전진하고야 말겠어! 하며

 단숨에 고독해졌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게 고독은, 고독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고독하지 않은 개념인 것입니다.

 모든 고독은 

 찢길 듯한 외로움 뒤에 등장할 수 있는, 혹은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는 하위의 감정인 것입니다.


 외로움이 고독으로 변했다면.

 당신이나 나는 그 사람을 극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협곡과 빙하의 모습에서 터질 듯한 벅참으로 압도된다면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고독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당신도 나도

 이제는 도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외로움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완벽한 고독의 경지로 넘어가는 것은.

 당신과 내가 손을 잡고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나아갔다면.

 그것은 모순이겠지요.

 말장난이 돼 버릴 겁니다.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할 고독이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끊으세요. 공감이란 건 포기하시란 말입니다.


 당분간 머물러야 할 곳은.

 결국 외로움이라는 우물 속.  


 


 이젠 너에게 하는 말이야. 

 잘 있지?

 

 차디찬 북국으로 가고 싶어.

 따뜻하다 추워지기를 거듭하는 그런 사이클은 싫어.

 일 년 내내 뼛속이 아리는 뭉근한 추위를 걸치고 싶어.

 얼음과 눈으로 덮여 삭막한 풍경이면 좋겠어.

 오로라 같은 건 없어도 돼. 감동적인 경치를 원하는 게 아냐. 

 나를 짓누르는 무게감 있는 얼음과 눈과 추위면 되는 거야.


 넌 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나른함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럴 거야 아마.


 때론 그래.

 너와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가능했을 거야.

 전쟁에 끌려나가 전사하지도

 사랑 따윈 존재할 수 없을 배고픔 속에 삶을 이어가지도 않았으니.

 평화롭게 널 만나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 왜 고마운 일이 아니었겠냐구.


 그래서 감사하다가도 말이야.

 이내 화가 치밀어올라.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들이 빛나는 강의 물줄기처럼 우리 앞을 흘렀고 또 흘러가고 있는데

 전사할 위험도 기아에 허덕일 걱정도 없는데

 이 아름다운 시대에


 왜 죽을 정도로 더 널 위하지 못했는지.

 가로막을 것이 뭐가 있기에 겁을 집어먹고 이렇게 먼발치에서 그리워만 하고  있는지 말야.

 그런 못남과 게으름은 언젠가 대가를 치르는 법.

 난 평생

 고독의 단계로 올라가지는 못할 것 같아.

 미련한 외로움으로 징징거리며 살아가겠지.

 이런 바보 같은 내가 사람들에게 고독하라고 권유하고 있는 꼴이라니.


 우습다.


 안 되겠어, 난.

 고독으로 경지를 뛰어넘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큰 산이 될 사람은

 너야.

 그 높은 산의 꼭대기에서

 나를 마음껏 비웃어줬으면 좋겠어.

 그 비웃음은 눈이 되고 얼음이 되고 추위가 되어

 나를 빙하 속 저 아득한 곳으로 가라앉힐 수 있는 무기가 될 거니까.

 

 자학 아니야.

 그렇게 죽어가야만 살 것 같아.

 살고 싶다.


 북국은 아니지만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어.

 녹색은 갈색이 되고

 곧 은색으로 변해 가겠지?

 

 다행이다.

 혹독함이 다가오고 있어서.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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