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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Oct 04. 2021

연풍연가

[연풍연가] OST 중 <LoveWIind> by 주영훈

https://www.youtube.com/watch?v=LQi1pBkyfVs







  

  당신이 제주를 닮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도 같습니다.

 제주를 닮았다는 게 도대체 뭔지 깨닫는 게 먼저겠지요.

 아직은 겉핥기 수준이라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난 꼭 전문가가 될 거예요.

 제주를 닮은 당신이 왜 제주를 닮은 것인지 알아낼 자신이 있다는 소립니다.


 물론 그 시작은 이미지일 거예요.

 그런데 그 이미지의 깊이는 상당하답니다.

 제주의 이미지니까 그렇습니다.


 제주의 숨 막히는 바다는 까마안 현무암들의 도움으로 환상을 더하고 있어요. 

 더없이 투명한 제주의 하늘은 황금빛 오름의 능선 위에서 세상을 굽어봅니다. 


 가까이 있는 당신은 제주의 쪽빛 바다랍니다.

 당신이 활짝 웃는 모습을 목격한 나는

 그 바닷속에 빠지고 말았어요. 순식간에.

 당신은 바다인지 블랙홀인지.

 쪽빛이었단 말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주위는.


 멀리서 보았던 당신은 제주의 아프도록 아름다운 하늘이었답니다.

 회색빛 일상 속에서 당신을 찾아낸 나는

 그 하늘 위로 둥실 날아올랐어요. 파르라니.

 당신은 하늘인지 꿈속인지.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으로의 비행은.


 곳곳에 묻혀 있는 미어진 슬픔. 풍경에서 드러나지 않는 통곡의 사연을 안고 있는 이 섬처럼.

 당신의 심장도 쓰라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진득이 배어버린 이 땅의 상흔처럼

 당신의 내면은 행복보단 상처였군요. 


 그래서 제주는 당신입니다.


 내가 할 일은

 까만 돌이라도 되어 당신이란 바다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키 낮은 오름이 되어 당신이란 하늘을 부드럽게 떠받치는 것.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니, 충분하다는 말은 건방지군요.

 까만 돌이 되는 일, 키 낮은 오름이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소원입니다.

 

 이제야 당신에게 다가가는 나는.

 벅찰 뿐입니다.

 과연 나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때론 제주의 바람처럼 무자비한 바람이 우리를 때릴지도 모릅니다.

 그때 굳건히 버티고 있는 돌담 속 하나의 돌처럼.

 황금빛 억새를 끝끝내 부여잡고 있는 아담한 오름처럼.

 

 당신 속에서 나 요망지게 자리 잡고 있을게요.

 파도처럼 나에게 부서지며 쉴 수 있기를.

 비처럼 나에게 쏟아지며 견딜 수 있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과.    


 


 그런 말이 있습니다.

 노력해서 기억할 수는 있어도 노력해서 추억할 수는 없다고 하지요.

 볼펜이 없어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려 애쓸 수는 있어도

 추억은 당장 집중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을,

 저절로 배어 나와 서서히 온몸을 적시는 게 추억일 겁니다.


 그런데 제주를 닮은 당신.

 당신과 함께 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난 이미 추억으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과 나란히 앉아 바라보는 이 광경을

 난 벌써  추억 보관함에 담아버렸습니다.


 잠을 설쳐 큰일입니다.

 오늘 깍지 끼고 잡았던 손이 정말 당신의 손이었는지 의심스러워

 내 손을 들여다봅니다. 흔적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르니까요. 

 당신이 어떻게 내 곁에 가까이 있게 됐는지 그동안의 과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있어서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진 느낌이에요.

 그래서 당신을 마주친 첫날로 돌아가 

 하루씩 하루씩 되짚어봅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것도 매일 밤.

 우리 만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허투루 잊혀질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것.

 타임랩스 영화처럼 미련하게 반복 또 반복입니다.

 기분 좋은 분석이 아닐 수 없잖아요.

 그래서 잠을 설치게 되었습니다.

 걱정 말아요.

 이렇게 설치는 잠은 건강에 아무런 지장 없으니.

 몽글몽글 피어나는 심장의 간지러움이 잠을 설친 이유라면

 죽을 때까지도 대환영입니다.


 제주를 닮은 당신.

 바다와 하늘 같은 감동도 주시되

 당신 안에 덩어리 져 가라앉은 아픔도 조금씩 쪼개어

 내 앞에 던져주시길 간절하게 원합니다.


 평생 내 잠을 설치게 할 사람이라면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 않겠어요?

 재촉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당신이 

 제주를 닮은 당신이 

 바다이자 하늘인 당신이

 바위에 기대고 오름에 기대듯

 언제든 나에게 기대시면 될 일.  


 그렇게 나도


 당신과 어우러져


 제주의 풍경이 되겠습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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