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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Oct 11. 2021

다시 가는 봄날

[봄날은간다]OST중<봄날은 간다> by 김윤아

https://www.youtube.com/watch?v=vf6TWmxJZxY







  인정할게 

 이 영화와 이 음악에 집착하는 이유.

 내가 그 자리에 있어 낯설지 않기 때문이야.

 알지? 돌려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그곳들에 내가 있다는 말이야.

 너도 알잖아. 동해와 가까운 그곳들. 기억하고 있잖아.


 그런데 있잖아. 시간이 흘렀어도 집착의 레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아.

 어떻게 그토록 있을 법한 거지?

 주인공들 사이 감정의 곡선이 너무도 그럴듯하게 그려지는 건 물론이야.

 하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멜로는 설득력이 없을 테니.

 어쩌면 그들의 대사까지도 현실과 판박이냐구.

 분명히 대본에 쓰인 문장을 외워서 뱉은 말들일 텐데

 내겐 생생하다 못해 펄떡거리는 활어의 신선함만 느껴질 뿐이야. 

 그래서 영화도 음악도

 죽는 날까지 내 가슴을 도려낼 것이 분명한 것을.


 조그만 화면으로 오랜만에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엿보게 되었어.

 갯바위에 붙어있는 홍합을 억지로 떼어내고 나면

 상처에 덮인 아물지 않은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고 나면 생기는

 누가 봐도 찡그릴 법한 

 누가 봐도 아파질 것만 같은 분리의 흔적들.

 달갑지 않은 흔적들이 덕지덕지 생겨버린 지금, 

 다시 보는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의미에서 쓰디쓸 뿐이네. 


 영화는 모든 것이 직접적이야. 한 가지만 빼고.

 제목.

 그렇게 덧없이 가는 것이 봄날이라잖아.

 물론 봄날이란 단어에는 많은 의미들이 비집고 들어가 있을 거야.

 전성기, 젊음, 평화, 그리고 너와 내가 영원히 사랑할 줄로만 알고 있었던 시간 등등.

 어떻게 보면 잔인해. 봄날이란 단어는 말야.

 왜 그런지 알겠어?

 이상하게도 '봄날'이란 말을 내뱉고 나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제 곧 사라져 갈 것'이라는 슬픔이 뒤따라오거든.

 그러니 봄날이란 단어는

 (곧 없어질) 봄날

 (신기루 같던) 봄날

 (덧없던 어느) 봄날

 이라는 숨은 수식어가 붙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굳이 앞에서만 꾸며줄 필요는 없어. 서술어를 더해 주어로 만들어버려도 될 거야. 그렇다면.

 봄날은(간다)

 는 얼마나 자연스런 단어의 조합이냐 그 말이야. 

 실제로 보지 않아도. 심지어 제목 중 '봄날'만 알고 있어도

 결말이 예상되는 영화란 소리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너무도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

 너와 나에게도 현실이 된 것이었는지.

 제발 이제는 

 너무도 진짜 같은 

 지나치게 그럴 법한

 영화는 없었으면 좋겠어.

 현실을 위로해 줘야 하는데 오히려 상처를 적나라하게 들춰내잖아. 

 괜히 봤어.

 이열치열도 이이제이도 헛소리.

 엇비슷한 종류의 슬픔으로 슬픔을 이겨내려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음을.


  

 

 사무치도록 그리워 으스러지도록.

 이 정도면 서로의 몸을 안아주는 걸 넘어서 서로의 세포를 격하게 애무하고 있는 게 아닐지.

 끝 모를 사랑이 느껴질 포옹에서 비극이 보이는 내가 이상한 건가. 

 영화의 결말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아닌 듯해.

 오직 완전무결하게 너를 안았던 기억을 백 퍼센트 내 몸에 입력하기 위해,

 혹시 모를 이별 후에 너를 떠올릴 순간으로

 바로 지금을 저장해 놓기 위해서 후회 없이 으스러지도록 안고 있는 것일지도. 


 모든 기운을 끌어모아 안았던 기억이 너를 추억하기에 유리한 지름길이었다면

 그건 걱정 없을 듯.

 얼마나 최선을 다해 포옹을 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널 추억하며 사는 게 남은 내 삶의 목적이 된다면 

 참 잘한 거네.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야. 


 죽을 것 같다.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건 나 혼자가 아닐까 싶어 더 견딜 수가 없어.

 너 힘들겠지만

 나처럼 죽을 만큼일까.

 어떤 감정들이건 확인이 가능했는데

 누가 어느 정도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어 답답해 미치겠어.

 도대체 너는 내 마음과 어느 정도 어긋나 있을지.

 물어볼 수도 없잖아. 


 영화 속 거리들 생각나지?

 영화를 보고 한 말들도 기억날 거야.


 싫어하는 말.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말.

 반어임에 틀림없어서 지독히도 혐오스러운데

 부정하지 못하겠어.


 아름다워서 슬프고 지나가기에 아름다운 것이 봄날이던가.

 그렇다면 내 곁을 떠나야

 넌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거였나.

 네 살에서 떨어져 나간 너

 그런 식으로 미화하면 되는 거였나.


 영화 속 상우는 바보였어.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바보야.


 "하긴 어떻게 사랑이 변하지 않겠어"라고 말했어야 하잖아.

 그토록 아프기 전에 말이야.


 난 그 정도 바보는 아닌데

 아픈 건 그 녀석이나 나나 똑같을 뿐이네.


 상우가 존경스러운 건

 사랑이 끝나고 굳세어진 심장.

 슬프지만 뒤돌아설 수 있었던 용기.


 난 그러지 못할 걸 알아, 뻔하지. 

 난 날 잘 알거든.  


 그럼 내가 상우보다 한 수 위 바보일지도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정해야겠다.


 오늘 인정해야 할 게 많은 하루네.

 

 음 


 무심히 가고 있어


 봄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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