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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Oct 11. 2021

엘비라 마로니에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by Mozart

https://www.youtube.com/watch?v=328DHBaJCGY






  사뿐사뿐

  찰랑찰랑

  하늘하늘


 경쾌하고도 가벼운 의태어. 글로 보는 것만으로도 산뜻한 기분이 드는 걸.

 아, 의태어 얘길 하니 그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말해줄게.


 초등학교 5학년 때야. 정확히 기억해.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 갔지.

 흔히 말하는 앞짱구 있지? 옆으로가 아닌 앞뒤로 긴 머리. 

 공부 잘하는 머리형이 그렇다고 했어.

 그 녀석도 꽤 똑똑했던 걸로 기억해. 

 친구 집에 들어가려고 막 초인종을 누르려하는데

 친구의 동생이 대문을 벌컥 열고 잔뜩 심술 난 표정으로 걸어 나가지 뭐야.

 뭐가 배알이 꼴리는 일이 있었나 봐. 형한테 화가 났는지, 엄마에게 혼이 났는지.

 그 순간 친구의 동생이 걸어가며 뱉은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뭐라고 했는지 알아? 


 "투덜투덜, 투덜투덜...."


 "응?"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어. "어, 이게 맞나?..."


 투덜투덜이란 말은 그야말로 의태어잖아. 사물이나 사람의 모양이나 태도, 행동 등을 묘사한 단어.

 의태어를 입으로 소리 내 말해도 되기는 하는 건가? 그래도 맞는 거였나? 내가 몰랐던 건가?

 하하하...


 형 못지않게 똑똑했던 저학년 동생은 워낙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탓에

 당시 유행했던 명랑만화 속 주인공이 뿔났음을 표현했던 의태어를 입으로 정성스레 내뱉은 것이었어. 

 만화가 곧 현실. 무조건 쓰고 봤던 거지.

 얼마나 진심으로 성질이 났으면 투덜투덜이라고 '말'까지 했을까.


 그게 이해가 되었던 건 초등학교 5학년 꼬마가 한참 세월을 먹어버린 후 어느 날이었어.

 널 처음 마주치고

 두 번을 마주치고

 별 것 아닌 인사말이었지만 내겐 꿈같던 대화가 오고 가고.


 내 입으로 말해버렸지 뭐야.


 콩닥콩닥

 두근두근


 다행히 주위에 옛날의 나 같은 목격자는 없었어. 있었다면 얼마나 이상한 눈초리를 쏘아댔을까?

 아니.

 그랬어도 저어언혀 상관없었을 거야.

 의성어인 듯 톡톡 터뜨린 

 콩닥콩닥

 두근두근


 비교도 되지 않게 커다란 울림으로 진행되기 전

 횡격막이 부르르 떨리는 이 콩 볶는 듯한 진동의 연속.


 세상에 태어나

 당신 덕분에 처음 알게 됐지 뭐야. 


 고마워 미스 찰랑찰랑.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사람으로 치자면 말야.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나쁜 뜻은 아냐.

 본인의 재능과 얽히고설키는 운명이 겹쳐 다사다난하고 우여곡절도 겪을 대로 겪은

 그런 인물이었을 거야.

 생의 마지막에 돌아보면

 영광도 생각나고 구설수도 떠오르고 사랑과 이별과 수없는 극한 감정이 북받쳐 오를 거란 말이지.

 사람이었다면.


 이 곡을 <엘비라 마디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요즘으로 말하면 엘비라 마디간 OST 중 최고 히트곡이었던 거지.

 저 멀리 스웨덴의 귀족 출신 육군 장교와 서커스단 소녀의 사랑.

 장교가 유부남이었으니 '불륜'이란 껍질을 쓰고 전해져 온 실화. 그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1967년작이라니 꽤 오래된 영화다. 그렇지?  

 사후 176년이 지나 나온 영화에 힘입어 그의 협주곡까지 공전의 히트를 했으니. 

 모차르트는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별칭마저 붙은 이 영화에 감사했을까?

 아니면 그 유별난 성질머리를 자랑하며

 "감히 내 위대한 곡을 불륜 영화에 이용했겠다." 버럭 소리쳤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곡의 제목이 입에 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알지?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주며 아침햇살 눈부시게 나를 깨워줄 

 바로 그 곡이니까.


 맞아.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야.

 대중가요라 해서 모차르트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지는 않아.

 그야말로 사골 히트곡 아니겠어? 경쾌함과 그리움이 조화롭게 묻어나는 대한민국의 명곡 중 하나니까

 그가 살아있었어도 저작권료를 대폭 할인해 줬을지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일방적 <엘비라 마디간>의 우세는 아니니 

 모차르트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게 사실이잖아. 

 꽤나 흐뭇해했을 거야. 


 그런데 모차르트는 이 곡을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썼다면서.

 결혼과 직업문제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아버지와의 갈등을 없애고자

 아버지를 모시고 이 곡의 초연을 헌사한 거지.

 21번 협주곡에는 그 역시 궁정 관현악단의 작곡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의 피아노 소나타 선율이

 오마주로 담겨 있었으니 왜 감동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모차르트에게 이 곡은 가족의 불화를 극복시켜 준 '화목의 노래'였을 지도.


 이런

 너로 인한 떨림을 충분히 체득하려 듣고 있는 음악인데

 정말 음악 이야기만 떠들어댔네.

 미안.


 당신에게 하고픈 말은


 앞으로 한 몸처럼 관통하게 될

 설렘과 행복, 아픔과 오해, 사랑의 오르내림, 수많을 동반의 기승전결.

 두려워하지 않고 겪어내겠다는 얘기야.


 이 협주곡의 핵심인 2악장 안에도 부침과 굴곡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날들도 셀 수없는 감정들이 변검을 하며 모습을 바꾸겠지만.

 결국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처럼.

 너와 나라는 한 덩어리 역시 

 언젠가는 흐뭇하게 하늘 위로 구름이 되어 올라갈 거라 믿어.

 우리 앞에 놓일 어떤 감정이든 소중히 천천히 음미하자.

 사랑도 슬픔도, 치솟고 가라앉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나 먼저 약속할 테니.


 그러고 보면.

 마로니에의 노래와 모차르트의 아버지 사랑보다는

 <엘비라 마디간> 배경음악으로의 협주곡 21번이 훨씬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뿜어내는 듯하네.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라고 모차르트가 비난을 하다가도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이 오묘한 감정을 담은 영화 속의 협주곡 분위기에

 나중엔 고맙다 할지도 모르겠어.


 눈을 감고 들어 보자 다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은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 번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그렇게 들어야 할 듯해.

 

 준비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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