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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Oct 11. 2021

잡아주세요

<나무> by 카더가든

https://www.youtube.com/watch?v=cHkDZ1ekB9U






   

  풋풋함이라는 건 

 풋사과 풋사랑처럼 

 이른 무엇, 덜 익은 어떤 것. 그래서 매력 있지만 아직은 모자란 존재를 표현하는 단어일까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라는 증거가 너무도 명백한 걸요.

 여기 있잖아요.

 우리 둘.

 

 우리가 한 곳을 보며 발맞춰 나간지가 언젠데.

 감히 우리를 풋사랑이라 말할 사람, 있을 턱이 없죠.

 그런데도 풋풋하답니다. 자화자찬이 아니에요.

 우릴 보고 다들 그러거든요. 풋풋하다고. 보기 좋다고.


 아, 우리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구요?

 하하

 맘대로 생각하세요.

 우린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그날에도

 풋풋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나 가끔은 일부러 낯설어지고 싶을 때도 있는 게 사실이랍니다.

 진짜 풋사랑일 때로 시간을 거슬러 가 보면 어떨까요.

 권태기가 왔냐구요?

 전혀요.

 Never!

 여행을 가고 싶다는 느낌이라면 이해하시겠어요?

 우리 둘이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지금까지 해 온 사랑 짓들을 똑같이 하게 될지 

 시작부터 하나하나 몸속으로 흡수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재미없을 것 같네요.

 나는 나고 너는 너고 우리는 우린데.

 달라질 게 있을 리 만무하겠죠.

 그저 서로에게 빠져들어 새들이 지저귀듯이 

 달맞이꽃이 벌어지듯이 파도가 밀려오듯이

 한결같은 사랑을 지금과 1도 다르지 않게 할 게 뻔하니까요.


 그냥 안 하렵니다. 돌아가는 거.

 100퍼 확실한 우리의 사랑 확인하는 것보다는

 앞으로의 사랑놀음에 심취하는 게 훨씬 흥미진진할 것 같아요.

 이렇게 사랑하는 당신에게

 어떻게 넘치는 사랑을 쏟아부을지

 음흉하게 계획을 짜는 게 더 나을 듯합니다.


 또 바빠질 것 같네요, 지금 이 순간부터.

 어쩌면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평생 머리를 굴려가며 서로의 미소를 끌어내는 작업의 연속.

 그 기쁜 노동에 기꺼이 이 한 몸 바치려 합니다.

 

 한시도 쉴 이유가 없습니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늘 쓰던 글이나 말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느낌, 그래서 그 단어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조차 신기해지는 순간.

 잊지 않으세요?

 알미전 낯설게 다가왔지만 신기하게 푹 빠졌던 단어. 

 이 말 저 말에 어찌나 많이 쓰이던지, 반찬으로 치면 김치. 한약재로 치면 감초.


 짓다


 당신이 고개를 흔들며 환한 웃음을 지을 때

 얼마나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당신은 모르시겠죠.

 어찌하면 그 얼굴을 원 없이 볼 수 있을지

 나는 한동안 한숨만 지을 뿐이었답니다.

 용기가 없어 집에 틀어박혀 있던 모든 시간에

 서툰 고백의 시를 지어 보았답니다.

 그렇게 세상은 당신과 나를 영원히 구분 지을 줄만 알았어요.

 무리 지어 나는 새들을 올려다보며

 아련한 하루를 매듭짓곤 했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당신이 와 주었습니다. 감히 나에게.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요.

 날 부르며 미소 짓는 당신의 모습이

 내 미래를 결정지었어요.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절대 눈물짓게 하지 않겠다고. 한숨짓게 하지 않겠다고.

 당신을 외롭게 만드는 죄는 결코 짓지 않겠다고.

 이제 옆에는 오직 나뿐입니다.

 아프면 약을 짓고

 때가 되면 밥을 지어줄 거예요.

 그래서 당신과 내가 한순간도 분리될 수 없는

 '우리'라는 이름을 짓기에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겠어요.


 사랑의 노래를 짓고 싶은 날들입니다. 진정.


 그대는 춤을 추는 나무 같고

 그 안에 투박한 음악은 나라고 합니다.

 춤을 추는 나무.

 그게 당신이라면 너무 예쁠 거예요. 틀림없어요. 선이 얼마나 고울까.


 가사와 상관없이 나에게는 말이죠.

 당신은 나무로 된 악기

 나는 당신을 의지하며 그 안에서 진동하는 

 도레미파솔라시도 혹은 궁상각치우.

 세마치 중모리 자진모리.

 그러니 당신은

 바이올린, 기타 혹은 장구, 북의 몸통.

 나는 거기에 매달려 있는 팽팽한 줄이나 가죽.

 조화를 만들어내야 아름다운 음이 탄생할지라도

 결국 나는 당신에게 매달리며 살아가는 존재.

 당신이 나를 느슨히 놓아버리면 삶의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체.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보잘것없는 줄이 연결돼 미안할 따름이에요.

 

 날 놓지 마세요 그러니. 부탁입니다.

 우리 평생 히트곡을 제조하려면 쿵짝을 맞춰야겠죠.

 당신이라는 몸통에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기생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지금처럼만 날 잡아주세요.


 언젠가 당신에게 매달린 끈과 가죽이 뻗어나가

 당신이라는 몸통을 안전하게 감쌀 수 있도록

 아름다운 음악조차 소음으로 들릴 그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옆에 있겠습니다.


 풋풋함의 유효기간이란 없으니까요.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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