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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Oct 09. 2021

One summer night

[러브 어페어] OST 중 <Love Affair>by엔니오 모리꼬네

https://www.youtube.com/watch?v=3kPWQJKNBhQ







  기쁘고 슬픈 느낌도, 세상에 대한 판단과 생각도 결국은 나라는 존재가 전제였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비록 몸이라는 좁은 공간 속에 갇혀 있는 신세지만

 무언가를 바라보고 만져보고 읽어볼 수 있는 주체는 이 몸뚱아리를 조종하는 나일 테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가 우주야.

 내가 없으면 우주는 소멸해 버리는 거지. 

 내가 없는데 우주를 알아줄 존재가 어디 있겠어.

 우주도 내가 필요해. 절대적으로. 

 한없이 팽창하는 무한한 시공간이라 해서 위축될 필요가 없어.

 내가 없다면 광대함을 느껴줄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리게 되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나를 뺀 세상은 허깨비일지도. 


 나만 존재한다는 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게 함정이야.

 옆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저 남자에겐

 나 역시 허깨비일 뿐이지. 그가 없으면 그에게 나는 없으니.

 곧 우리 각자는 각자의 우주.


 그래서 결심했었어.

 오로지 내 기준.

 내가 우주다. 

 내가 느끼는 것만이 의미를 가진 것이고, 내 안에 머물며 느끼고 있는 존재만이 실존이다. 

 개.똥.철.학.


 널 사랑하게 된 후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어.

 같은 종류의 어리석음을 간파한 선인들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지.

 그런 말이 있더라구.


 사랑은 자신 이외에 다른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렵사리 깨닫는 것이다.


 다가갈 수 없어 보이는 선인들의 비범한 경지라 할지라도

 한없는 사랑에 빠지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는 듯 만만해 보이기도 해. 건방지게도.


 이런 거지.

 사랑하기 그지없는 널 바라보고 있으면

 난 그저 네 눈앞에 얼쩡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수컷 생명체 중 하나.

 그런 느낌.


 정말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배려하고 있는 존재는 오직 너뿐이고.

 나는 너의 우주 속을 운 좋게 침범해 들어온 귀찮은 침입자 같다는 얘기야.  


 자신 이외에 다른 것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걸 넘어서

 네가 내 우주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걸 실감해야 그게 사랑이라고 봐 나는.

 내 안의 나는 더 이상 관심 없어.

 네가 바라보는 내가 중요할 뿐이지.

 네 머릿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네가 보는 세상과 우주가 궁금해.

 지금껏 내가 보아왔던 것들은 미련 없이 떨구어 버려도 상관없어.

 네가 되어 너를 뺀 나머지는 스쳐 지나가는 그 무엇들로 치부하고 싶어 진다는 거야.

 사랑은 그러니

 존재의 의미를 바꾸어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녔음이 틀림없겠다.


 기꺼이 너에게

 내 존재를 던져 넣겠어.

 중요한 건 너야.

 네 안에 녹아들어서 완전히 분해되고 싶어 미치겠어.

 물속에 물감이 번지듯 물질이 자연스럽게 섞여가는 게 엔트로피의 법칙이라면서.

 나 역시 법칙에 따를 수밖에. 

 네 안에서

 너의 일부분으로 거듭나고 싶어.

 아니. 거듭나는 게 아니지.

 그저 네 안에 남김없이 스며들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함. 곧 우주인 것은.

 미치도록 사랑하는

 너뿐이야.




 튜브를 금세 부풀어 오르게 하는 공기주입기로 심장에 바람을 불어넣은 듯.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처럼 날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한없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듯.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어.

 너를 떠올리면 온통 핑크빛이고

 다가오는 너의 뒤에는 아우라 가득한 천상의 무지개가 따라다니네. 


 관자놀이를 타고 들어와 손끝까지 전해진 거짓말 탐지기의 짜릿한 전류

 - 너를 처음 만난 순간


 순간적으로 포화된 폐 속의 공기가 갈비뼈 사이사이를 통해 새어나가는 진동의 흐름

 - 너와의 키스 5초 전


 너의 동맥에서 비롯돼 내 속을 돌아 다시 너에게 들어가는 따뜻한 액체의 벅찬 순환

 - 손을 잡고 마주 보는 너와 나의 모든 시간


 손끝에서. 심장의 고동에서 살아있음을 찬양하라고

 하늘은 너를 보내준 것이었구나.

 내가 이 별에 떨어진 이유.

 너였어.


 다재다능한 내 모습들을 잃어버린 건 널 만나고 난 후 발견한 유일한 단점.

 널 찾지 못했던 나는

 능수능란의 가면으로 덧씌워진 세속의 페르소나.

 간혹 순수한 척 세상을 향해 내보이는 가식의 페르소나.

 남을 밟고 살아남기 위한 각오의 페르소나.


 널 만나게 된 나에겐

 오직 보물상자를 연 기쁨으로 가득한 사랑꾼의 페르소나

 단 하나의 모습.

 그게 다니까.

 

 별이 빛나고 있어.

 수억 년 전 출발한 별빛을 바라보는 우리 둘이니까.

 저 별은 사실

 수억 년 전부터 우리를 축복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겠지.


 언제든 어디서든

 찾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우리는.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할 거야. 이 한없이 고마운 인연을.

 감동만 하다 보면

 정작 너와 함께 할 모든 것들에 집중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자기야.

 어지럽다.

 피가 모자라나 봐.

 손 잡아줘.

 너에게서 나온 사랑의 혈액이

 내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순도 유지할 수 없는 존재의 보잘것없음. 

 네가 없다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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