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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Sep 25. 2021

독(毒)

[만추]OST중<Kiss>by조성우

https://www.youtube.com/watch?v=cNE-sDikA6o








  꿈을 꾸었어.

 한동안 꿈을 꾸지 않았는데 생생하네 오늘은.

 아, 그게 아니지.

 꿈은 꾸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못 할 뿐이라면서. 

 그러니 꿈을 꾸었다고 말을 하기보다는 간밤에 꾼 꿈이 오늘은 기억이 난다고 하는 게 맞는 거겠지? 


 그래.

 예상했겠지만 네가 나오는 꿈이었어.

 슬퍼서 흐느꼈던 것도

 그리워 눈물이 흘러내린 것도 아닌

 생각해보면 퍽

 재미있는 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습지 않아?

 등을 돌리고 서로 반대편을 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심장마비로 쓰러졌는데 아직 구급차도 오지 않은 상황인데 말이야.

 벌써 멀리 갔을지도 모르지만 얘기해 볼게.


 뭐가 그리 재미있었냐구?

 20년도 더 지난 옛날로 돌아간 꿈이었어. 꿈에선 너무나 흔한 일이지, 과거의 나로 돌아간 에피소드.

 마치 아침드라마 속 얽힌 가족관계처럼. 

 꿈속 우리는 반가워할 겨를조차 없었어. 위기를 수습해야 했거든.

 앳된 너였지만 난 한눈에 널 알아봤고

 너 역시 길가에 서 있던 내 쪽으로 서슴없이 다가왔어. 

 꿈이니까 당연하지 않겠냐고?


 아니.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간으로 거슬러가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그게 더 당연한 거 아닐까.

 어쨌든.


 반가워할 여유도 없었다고 했지? 

 너와 나는 손을 잡고 바로 쭈그려 앉았어, 길가에. 

 그래도 큼지막한 나무들이 제법 심어진, 한적한 주택가의 길이었으니 대화를 나누기엔 나쁘지 않았어. 

 아니, 대화를 나눴다기보다는 작전을 짰다는 편이 낫겠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지도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지.


 "너도 알지? 내가 말하려는 거?"


 "응"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네가 어찌나 귀엽던지.

 귀여워 쓰다듬어 주고 싶은 거 참으면서 나는 말했어. 

 꿈이라는 걸 눈치챘던 건 아니었는데도 서두르게 되더라고.


 "우리가 헤어졌던 날 똑똑히 기억할 거야. 세상을 잃어버렸던 그날."


 "응, 알아. 죽을 것 같았어."


 "나도 그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어. 다행히 우리 과거로 돌아왔네."


 "어쩌면 좋지?"


 "우리 헤어진 이유 똑똑히 기억하고 있잖아. 아예 그 죽일 놈 고개조차 들지 못하도록 지금부터 내 곁에 딱 붙어 있으면 되는 거야, 알았지?"


 "응, 알았어. 어린 나이부터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좋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그러려고 우리 과거로 돌아간 거잖아. 당연하지. 죽을 때까지 붙어 있을 거야."


 너와 내가 함께 지낼 기간이 20년 더 늘어났다는 게 얼마나 기쁘던지.

 난 하늘을 날 듯했어. 꿈이었으니 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안심이 되고 나니 네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되더라.


 사랑스러웠어, 똑같이.


 꿈은 꿈일 뿐이라는 건 더할 수 없는 고통이었어. 차라리 꾸지 말 것을.

 아니, 기억하지 말 것을.


 젠장.




 둘이 하나가 되어 바라봤던 바다를.

 꿰매지도 못한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다시 반쪽이 되어버린 하나가 바라보고 있어.

 네가 낀 팔짱으로 항상 내 오른쪽은 따뜻했어.

 언젠가부터 몸의 반쪽이 마비가 되어버린 것 같아. 계절에 상관없이 동상이 걸린 듯.


 어쩌지 이제?


 이기적인 사람이 될게. 넌 모르겠고, 나 어쩌면 좋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너와의 모든 순간들이 적혈구가 되어 몸속을 순환하고 있어. 

 심장이 펌프질을 할 때마다 너의 모든 것이 날 흐르고 있단 말이지. 

 지우려 발버둥 쳐도 내 뜻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야.

 너라고 해서 심장이 뛰고 피가 도는 것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겠냐고.

 이젠 내 안을 도는 검은색 피로부터 저주라는 영양을 공급받으며

 썩어가면 될 일이지.

 어려울 건 없겠다.

 알아서 심장은 뛰고

 피는 돌아줄 테니까. 


 창 밖 소나무가 바다를 가리고 있어.

 그래도 소나무들은

 사이사이 바다를 엿볼 수 있는 틈이라도 주고 있네. 이런 고마울 데가.

 우리의 모든 시간.

 빽빽한 숲과도 같을 거야. 너무도 울창해 그 너머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밀림.


 다 불타 버렸네, 이제.

 불조심하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어쩔 수 없는 건가. 

 천년이 걸려도 좋으니 씨라도 뿌려놓으면 되지 않을까.

 부질없는 짓일까?


 이젠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던 너의 향기를 맡지 못하게 되었어.

 모든 체취는 입술로 모아졌지.

 키스를 한다는 것은

 너라는 한 사람을 내 몸속에 기억시키는 숭고한 작업.


 이제 발그스름한 너의 입술은 

 블랙홀보다 더 철저한 검은색으로 변했고

 한 입술에 담겼던 너의 체취는

 해독제 없는 죽음의 독이 되어 내장을 가시처럼 후벼 파고 있어. 


 하긴.

 절대자가 사라진 세상에서

 해독제라는 게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꿈을 꾸지 않아도 좋으니.

 망각이란 달콤함을 선물 받을 순 없는 건지.

 내 마지막 바람.


 검은색 키스 한 번으로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었으면.


 오직 망각.


 한 번의 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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