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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al Eclipse Sep 08. 2021

너를 사랑해

[운빨로맨스]OST중<내게말해줘>  by 소유

https://www.youtube.com/watch?v=4LHyaKuGENQ








  여행 가고 싶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 굴뚝이야. 이왕이면 장거리가 좋겠어. 

 다시 그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예전엔 돈 없다, 시간 없다 그랬는데

 이제는 돈 부족하고 시간 빠듯해도 어떻게든 짐 쌀 것 같아.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됐는지.

 다시 세상의 문이 활짝 열리는 날, 

 꼭 데리고 갈 거야. 널.


 여행은 참 신기하지? 가까운 곳이든 멀리 있는 곳이든

 어디를 가고 무얼 먹고 어디서 잠을 잘지, 책을 펴 놓고 일정을 세울 때가 제일 좋아.

 설렘의 최고조야 어찌 보면, 그러니 여행의 진정한 시작은 내 방구석 아니겠냐구.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기복의 연속이야.

 예상보다도 훨씬 멋져 평생 기억 속에 남을 황홀한 순간이 있는 반면에

 분위기가 이게 아닌데... 하며 씁쓸히 돌아서게 되는 경우도 꽤 있곤 하지.

 뭐 그게 여행의 매력이기도 해. 생각처럼 뻔하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어.

 뻔하지도 않으면서 기복 없이 그저 좋기만 한 건 그래서 출발 전이라는 거야.

 어쩌면 우린 집으로 돌아와 다시 다른 출발을 상상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건지도.


 사랑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

 한 사람을 꾸준히 바라보며 키워온 사랑은, 결실을 맺기 전 짜릿한 설렘을 끝내 잊지 못할 거야.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사람과는 벌써 많은 것들을 함께 한 거나 다름없지.

 상상의 극장 속에서 그와 나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으니까.

 품 속에 간직해 왔던 사랑이 막상 현실이 돼 버리면 그때부턴 정신줄 놓지 말아야 해.

 물론 열에 아홉은 황홀함뿐일 거야. 꿈이 이루어졌으니.

 그렇지만 현실이 된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선 낯설고 아픈 일들을 겪어야 한다는 것쯤은 각오해야 할 거야.

 정점에만 머물러 있던 직선이 코사인 그래프처럼 요동칠 수도 있지.

 실현되지 않았지만 벅차게 황홀한 건 그래서 주고받는 사랑 전이라는 거야.

 그러나 여행이 그런 것처럼

 돌아와 다시 다른 사랑을 하게 위해 사랑을 시작하는 건 아냐. 

 여행과 사랑은 비슷하지만 유일한 차이는 바로 그게 아닐까? 

 여행과 사랑의 차이가 없어지면 

 그건 재앙이 될 거야. 


 정말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거 맞지?

 넌 어떨지 모르겠어.

 혹시 내가 너 좋아하는 거 티 났니? 그거 알아차리고 나서 내가 괜히 기특해 보였나?

 내가 사랑에 빠진 증상을 난 정확히 알고 있을 정도니까. 그래, 티 났겠다.

 뭐 그래서 나에게 마음을 열었어도 상관없어. 열었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게 아니면

 혹시 너도 나 좋아했니? 나도 널 좋아하는 거 눈치채고 당당하게 다가온 거야?

 만약 그랬다면 더한 영광은 없겠어. 자그마치 네가 날 좋아했다고?

 자세한 건 우리의 사랑이 살짝 익어갈 때쯤 물어볼게.

 지금 속내를 다 들켜버리면 매력 떨어질 거야.

 매력 떨어져서 네가 도망가면 어떡해.

 사랑의 시작엔 낯섦도 무기가 될 수 있으니 아직은 최소한의 낯섦은 안주머니에 넣고 있으려 해.


 넌 그랬구나.

 난 이랬어.

 깔깔대며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을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여행과는 다른 굴곡을 거쳐야 할지라도 당연히 너와의 사랑을 선택하겠어.

 너니까.

 오랫동안 마음속 이미 연인이었던 너니까 말야.

    

 아직은 창피하지만.


 사랑해.


 


 감전이 된 것처럼 짜릿한 기억들이 몇 있어.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기억.

 꼭 누가 봐도 확실하게 기뻐 죽겠는 순간들만은 아니야. 예를 들면 이런 거지.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동네 서점에 들어가 처음으로 새 책 냄새를 맡던 순간.

 고등학교 시절, 항공사 달력에서 가고 싶은 곳들 사진을 오려 창문 위에 일렬로 붙여 놓았던 순간. 

 정체를 몰라 구할 수 없었던 향수의 이름을 알아냈던 순간.

 

  시각과 후각이 버무려지면서 기억은 내가 돼 버렸어.


 다음 내가 할 말은 짐작하지?


 그래, 맞아.


 짜릿한 기억 속 대장으로 네가 등극했어. 축하해.

 잘 보이려고 뻔한 소리 하는 것 같아? 맘대로 생각해.

 정확하게 말하면 너와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이었어.

 

 그때의 공기는 유난히 뭉쳐있었는지 숨이 잠시 멎을 정도였다면 믿을까.

 오려낸 달력의 사진처럼 나에겐 정지화면으로 그 순간이 저장돼 있어.

 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봤고.

 난 바보처럼 꽁꽁 얼어버린 채 널 바라봤지.

 각도가 예술이었어.

 감전된 거야.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무자비하게 강력한 전압으로.  


 호감에서 사랑으로 바뀐 게 그 순간이었으니

 어찌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 아니었겠어.

 그림에 조금만 더 재주가 있다면 

 그때 내 눈에 비친 너를 수 백장 그려놓고 싶어.

 생생하거든. 또렷하거든. 

 내가 떠올리는 그대로 옮겨 그리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참 쉽죠 아저씨에게 조르고 싶은 지경이야. 이름이 밥 로스였나?


 이렇게 말하고 있네, 노래는.


 "왜 이제야 내게 왔을까.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와 줘서 고마울 뿐이야, 나는. 

 죽기 전에 네가 왔으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어.


 마땅히 두려운 것도 없고 주저함도 없어야 해.

 

 난 참 운이 좋은 녀석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난 거지?

 느슨하게 살아왔던 버릇이 자연스럽게 고쳐지겠다.

 이젠 하루 단위로 살 수 있겠어.

 일단 내일은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 들을 거야. 시간이 모자라면 하루 더 쓰지, 뭐.

 모레는 내가 모자란 게 뭔지 다 털어놓겠어. 널 사랑할 각오가 돼 있다면 다 알려야 해.

 그리고 하나씩 고쳐갈 것을 약속할게. 설마 내 단점 다 듣고 도망가는 건 아니겠지?

 사흘째는 너의 집 근처 공원을 손잡고 걸어가고 싶네. 손 잡아도 뿌리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그다음 날은 서점엘 갈 거야. 너도 책 냄새 좋아할 것 같아서.

 닷새째는... 아쉽지만 하루 휴가를 주겠어. 집에서 뒹굴뒹굴 쉬어도 좋아. 대신 전화는 해야지.


 이것들보다 더 앞선 다짐.

 

 네 맘대로야.


 네 맘대로 해. 너 하고 싶은 거 다 했거나 도저히 생각이 안 날 땐

 나에게 물어보라는 뜻이야.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건 오조 오천억 가지도 넘으니 아무 걱정 말고. 


 같은 곳 바라보며 사랑해 나가자.

 네가 고개를 돌리면 나도 그쪽을 쳐다볼 거야.


 짜릿한 순간 하나 추가!

 바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정말 아직은 창피하지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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