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자신의 젊은 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떤 이는 치기 어린 자신의 행동에 얼굴을 붉힐 것이고 어떤 이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나의 젊은 시절이었던 1980년대 무렵을 대표하던 작가인 이문열은 ‘젊은 날’을 ‘절망(絶望)’으로 규정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를 지배하는 것은 어두운 방 안에서의 번민과 고뇌 대신 울고 싶도록 철저한 외로움이었다’ -젊은 날의 초상 中-
그렇다면 나는 20대의 젊은 날을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 당시, 그저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젊음’은 이미 30년 전의 아주 오래전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 시절 내가 대학교 4학년이 되자 ‘노땅’ 취급을 받게 되었고 갓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의 푸릇푸릇한 모습을 보니 부러웠었다. 그게 바로 스물세 살 때였다. 스물세 살…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라는 어느 가요의 첫 소절이 유난히 가슴 깊이 맺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그 ‘젊은 날’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가능했다. 빛나는 미래에 대한 목마름은 나를 지치게 했고 작은 실패에도 전의를 상실해 버린 패잔병같이 고개를 숙이고 귀가하는 일도 잦았다. 실패한 첫사랑은 아직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랑이 성공해야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그럴듯한 일이 될 터인데 그러지 못하고 그 사랑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불확실했다. 뭐든 그랬다. 사랑도, 직업도, 인생도, 친구도… 그렇게 젊은 날은 ‘성공’과 ‘성취’의 기억보다는 ‘방황’, ‘회한’, ‘후회’, ‘절망’ 등의 단어들이 더 어울리는 시기였다. 그렇다! 나도 이문열 작가와 비슷하게 젊은 날을 다소 부정적인 용어들로 표현하게 되었다. 하지만 ‘방황’, ‘회한’, ‘후회’, ‘번민’, ‘고뇌’라는 말들이 그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通過儀禮)’일 수 있다. 그 용어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그것들은 여러 번 밟아 꼼꼼히 다진 흙뭉치처럼 훗날 내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은 어렴풋이 나지만 단 하나 뚜렷한 기억이 남아있다. 그 시절, 나는 너무나 순수했다는 것이다. 그 또한 젊은 날이 모두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젊은 날’이 아니라 ‘가장 순수했을 때’로 청춘의 그 시간을 표현하고 싶다. 이 글은 나의 젊은 시절을 연한 수채화처럼 그린 것이다. 오래되어서 흐릿한 수채화의 색 아래로 도화지의 연필 자국까지 보이듯이 기억나는 장면의 아래쪽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옛 시절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꼰대’라 했던가? 비아냥대는 말인 것은 알지만 어쩌겠는가?나도 ‘꼰대’일 수 밖에 없다. 그 누구라도 자신이 겪은 일을 말로 하거나 글로 쓰기 마련이다. 그렇다! 겪지도 않은 일을 어찌 말하거나 글로 남길 수 있으랴.
직장에서의 회식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있었다. 바로 상사와 마주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나 자신이 힘들게 고생하며 지금의 지위에 이르게 된 무용담을 듣는 일은 너무나 지루했다. 본인은 신이 나서 몇 시간이건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듣는 나는 정반대였다. 너무나 지루했다. 경청하는 척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의미 없는 감탄사를 무의미하게 내뱉으며 맞장구를 쳐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 그들은 그렇다. 특히 상급의 지위라도 얻게 되면 근거도 없는 자신감은 그야말로 최고치에 이른다. 나이가 들면 다 그럴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 글이 직장 상사의 그것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통하여 1989년 무렵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글의 독자인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나름의 합리화일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