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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Aug 02. 2022

인생의 첫 자유, 삶

물고기가 육지에서 숨 쉬는 법


육지로 나온 물고기

어릴 때부터 쉴 틈 없이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홀로 나를 키우시는 몸이 약한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일 학년 때부터 잡화점,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어머니에게 지원을 받지 않은 나는 바로  대학교 진학이 아닌 취업으로 뛰어들었다. 대학교를 갈 형편이 되지 않아 취업으로 뛰어든 것에 큰 후회를 가지진 않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유난히 멘탈이 약했던 내가 19살의 나이로 취업 실습을 나가 현장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일 8시까지 출근해 빠르면 17시, 늦으면 새벽 2시까지 일하는 환경은 낯설고 고통스러웠다. 어머니는 금방 그만두려던 내게 사회란 원래 다 그런 것이라며 타이르며 1년만 다녀보라 권했다.


나는 여기서 쉽게 포기하면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며 주 6일, 새벽 2시까지 최소 일주일에 3일은 야근을 하는 환경에 차근차근 적응해 나갔다. 물론 내가 잘해서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미숙한 나를 잘 받아준 사수와 부서 직원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연장수당도 챙겨주지 않은 회사에서 수습 금액까지 차감되며 버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니는 동안 사장의 학력 차별과 성희롱은 더욱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내가 설 자리가 없고 부족한 것은 오직 내 탓인가 사회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수많은 어른들이 그랬듯 현실을 수긍하고 타협하기 시작했다. 타협하는 과정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유연하게 살아가며 많은 것을 받아들이려면 타협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 3년, 첫 회사에서 3년, 현재 회사에서 4년 총 10년 동안 '고졸'이라는 타이틀로 살아온 내게 꼭 불행만 있던 건 아니었다

좋은 친구와 동료, 행운이 다를 때도 있었다. 지친 일상에 숨 쉴 원동력이 된 나의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나는 주 6일 동안 최저시급으로 연장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했던 날들 속에서 내 명의로 된 집, 차,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돈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물질이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가장 잘 보이는 결과물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 정말 우습게도, 항상 직진만 향하던 내가 샛길로 빠져 이리저리 헤매 보기로 정했다. 나 답지 않은 일이었다. 회사 동료 중 한 명은 내게 쉴 수 있겠냐며, 금방 다시 일을 하고 싶어질 거라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때껏 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이 굴었다. 가난한 시절이 끔찍한 탓도 있었고 천성이 걱정이 많은 탓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 내 마음속 어디선가 아우성친다.

할 수 없이 나는 나 자신과 아주 다른, 이면과 마주했다. "대체 왜 갑자기 쉬고 싶은데!" 묻자 이면은 그럴듯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다른 직종으로 공부하기 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가 이직하니 마침 좋은 기회다. 좀 더 큰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 쉴 틈 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이면은 참 철없는 소리를 해댄다. 하지만 솔깃하기도 했다. 평소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행동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잠시 타협을 내려놓고 한 번도 향해본 적 없던 자유라는 길을 택해  물속으로 뛰어든다.


아주 어릴 적 가졌었던 나의 자유, 고향. 수면 아래로.


퇴사 후 가장 먼저 하기로 한 수영은 몸을 꽉 조이는 어색한 수영복, 길이 조절을 하지 못해 눈가를 압박해 멍들게 만드는 수경, 머리카락을 가리는 수모를 착용하는 일이었다. 하얀 천장 아래로 드리워진 수면의 그림자는 아름답다. 물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외모나 체형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들은 헤엄치는 법을 잊은 물고기일 뿐이다. 나란히 레일을 따라 움직이며 물거품을 만들어 내는 비늘 없는 물고기들은 한 없이 가볍게 유영하며 자유롭게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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