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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Nov 30. 2022

태어난 이유 - 2



아이는 할 수 없이 빠른 포기를 선포한다. 

다행히 태생이 그런 것인지, 본인의 포기에 대해 굉장히 관용적 태도로 굴어댔다.


‘어쩔 수 없잖아, 괜히 앞에서 얼쩡거렸다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한 대 더 얻어맞고 집안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들걸.’ 


근거 있는 이유를 서두에 달아두고 포기를 타협하는 자세는 어린아이의 실력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 포기가 다시 머리를 슬그머니 들이밀며 화목이 자신의 몫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은 어머니의 부재에 호출된 할머니의 발언 이후였다.     


“여자애가 그리 고집이 세고 말을 안 들으니 네 애비가 밖으로 나돌지. 네가 애교만 많아서봐라. 진작 네 어미랑 잘살고도 남았을 거다.”     


세상과 온 힘을 다해 싸워 오신 성정의 보유자답게, 매서운 얼굴을 한 할머니는 유독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어머니의 부재에 아이를 맡아 키우시게 된 것이 심적으로 부담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인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일같이 하교 후 뒷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도깨비 풀부터 진흙을 온몸에 묻혀 오는 것에 질려 화풀이로 내뱉은 발언이지 싶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못할 만큼 아둔했다. 역시 내가 은연중에 묻어둔 고민이 사실이었구나, 하며 방구석에서 몰래 처박혀 눈물로 지새웠다.


대단치도 않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가 가정을 망칠 수 있을 확률은 그리 높지도 않은데 말이다. 자의식 과잉인지, 자기연민인지 모를 무책임한 슬픔은 가슴에 겹겹이 쌓인다. 지속되는 날들 속 허망하게 흘려보내야만 했던 슬픔은 어린애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감정이었다.     




우린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를 고민한다.


그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공통이라서, 흔하디흔한 불행을 타고난 아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가정의 평화를 막기 위함이었다 한들, 지켜지지 못한 평화가 내 탓은 아니었다.

나는 멋진 파워레인저의 일원도 아니고 머리가 비상한 천재도 아니지 않은가. 태어나면서부터 목적을 부여받은 아이도 그저 평범하기에, 진부한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었다. 

    

누군가의 기대와는 다르게 자라간다고 하여도 나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기에 묵묵히 글을 쓰고 밥을 먹는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추워졌다.     


곧 입김이 나올 것이다. 장롱 깊이 넣어두었던 얇은 목도리를 곧 꺼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존재의 의의에 대해 생각을 마감 짓는다.


나는 그저 나일 뿐, 누군가의 필요로 인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할 수도 없다. 태어난 이유도 삶을 이어 나가는 이유도 뚜렷하다 하여 조금도 명쾌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삶이 아직도 사무치게 가슴의 구멍을 휘저을 때도 있지만 그저 조금은 빨리 뭉텅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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