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덜 잃어낸 하루의 이름

그림책 '꼬마 오리가 찾아 떠난 특별한 행운'(제마 메리노)

by 초연이

무수히 흐드러진 꽃밭 사이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유심히,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무언가 발견되지 않을까, 뜻밖의 보물이 눈에 띄어 횡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보았습니다. 목적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냥 하염없이 찾았습니다. 수동적으로, 네 잎클로버가 내 눈을 사로잡아주지 않을까 바라면서. 그러다 눈이 아려왔습니다. 끔뻑끔뻑, 눈을 감았다 뜨며 뻑뻑해진 눈알을 굴려 보았습니다.


잠시 뒤로 물러섰습니다. 건조해진 눈이 이제 괜찮아졌다 싶었을 때 눈에 힘주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꽃밭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에 하늘하늘 흩날리는 하얀 꽃잎들이 보였습니다. 한없이 가녀려서 톡 부러질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강단 있게 꼿꼿한 줄기들이 보였습니다. 꽃 여러 송이가 마치 커다란 꽃 한 송이처럼 보였습니다. 지나쳐버릴 뻔한 커다란 꽃 한 송이가 안겨주던 그날의 공기와 햇살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공기와 햇살을, 인생에서 필요할 때 두고두고 무제한으로 꺼내보게 되었습니다.






제마 메리노의 '꼬마 오리가 찾아 떠난 특별한 행운'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손에서 갓 놓친 듯한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고, 꼬마 오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풍선을 쫓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엉이와 여우와 나무가 보입니다. 그리고 작은 생쥐가 꼿꼿이, 꿋꿋하게 자신의 몸에 걸맞은 풍선을 꼭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그림입니다.



자주 불행한 꼬마 오리가 있습니다. 자주 실수하고, 자주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들은 어쩌다가 한 번쯤 생길만한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생깁니다. 유독 나에게 꽂히는 작은 가시가, 우주만큼 크고 아프게 느껴질 때, 불평이 쏟아지고 온몸을 장악해 갑니다. 지금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어 불평하고,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만들어내서 불평을 쏘아 보내보던 어리석은 저의 모습과 같아 보였습니다.



꼬마 오리 청둥이는, '행운'을 찾아 떠납니다. 행운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어디까지를, 얼마만큼을 행운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지 기준도 없는데 무작정 시선을 땅에 박고 걸어갑니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행운을 찾아 나서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루가 흘러갑니다.



행운을 찾아 나서겠다고 능동적으로 결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코앞의 행복을 몰라본 채, 흘러가버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행운을 놓친 채, 하염없이 행운을 기다려본 적이 많았습니다. '제발!'이라는 가슴속의 외침이 어딘가 닿기를 그저 바라기만 하면서, 그러다 어딘가 가 닿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새롭게 만들어낸 걱정과 함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뿜어냈습니다.



그러다 해답이 될만한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 다다르면 당장 '행운'이라고 여길만한 것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망망대해에서 발견한 지푸라기를 잡기만 하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푸라기를 덥석 잡고 나니 그다음 또 숙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다음 숙제를 위해, 감사하게 살아낸 오늘 하루의 가치는 그냥 그렇게 또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거란다.
그럼 원하는 행운을 찾게 될 거야.


이 단순하고도 명확한 진리가 얼마나 힘 있고, 살아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지나가고야 말았습니다.



끝없는 기다림과 발걸음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았습니다. 비로소, 마침내. 무언가를 잃을 뻔하거나 잃어 보았을 때, 하지만 다행히 잃지 않았거나 잃었다는 상실감을 견뎌냈을 때. 아무것도 잃지 않고, 아니 조금이라도 덜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아침이 되어 새로운 날을 맞이하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청둥이. 행운에 대한 경로와 해답을 얻기 위해 만났던 부엉이가 대단한 묘책을 제시해 준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을 '운 좋게' 받아들이기까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깨달았습니다.



애써 찾아 헤매지 않아도 늘 곁에 있는 것. 있고 없고는 생각하기 나름인 것. 행운.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드문드문 가지지 못한 것들이 떠올라 조금은 불안함이 올라옵니다. 물질적인 것을 떠나 내면의 서툼이 줄곧 느껴지곤 해서요. 나의 내면은 왜 좀 더 성숙함으로 채워지지 못했을까, 본질을 잃고 자꾸만 변두리를 헤매고 있을까 자책하느라 또 행운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운을 놓쳐버리고 말았던 과거와 행운을 놓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상실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 보려고 노력해 봅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는데,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려고 합니다.






가져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기쁨일지도 모르면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은 늘 있습니다. 참 서툰 행동임을 알면서도 늘 구덩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잠깐잠깐 고개를 내밀고 틈새를 찾아보며 공기를 들이마시기도 하죠. 잠깐이라도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남아있는 '틈'이 있다는 뜻일 거예요. 우리는 자주 행운을 특별한 사건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눈이 아리도록 바닥만 훑고, 놓친 풍선을 탓합니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새로운 눈이 생긴다.' 잃을 뻔했던 것을 지켜낸 하루, 잃어버린 뒤에도 다시 걸어본 하루, 아무 일 없던 듯 지나가지만 사실 가장 많은 것을 지킨 하루, 이런 날들이야 말로 '운 좋게' 주어진 날일 거예요. 그러니 내일도 또 풍선을 놓칠까 두려워하기보다, 내 손에 남아있는 끝을 먼저 바라보려 합니다. 끈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아직 계속 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오늘 덜 잃어낸 것들의 이름을 조용히 되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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