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맥 바넷)
골동품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심사숙고를 거쳐 주인들의 손에 가게 되었을지, 짐작해 보았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었을 물건들. 각자의 위치에서 생을 살다, 시간을 훌쩍 건너뛴 지금, 또 누군가의 사색을 위해, 추억 공유를 위해, 사진의 피사체가 되기 위해 이렇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순간 의미 있었을 물건들을 소중히 담고 싶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주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복다복하게 담았습니다.
습관적으로 자주,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긁어댑니다.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충분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한탄을 해대느라 아깝게 힘을 소모합니다. 단순히 퍼 올렸으면 다시 고스란히 주워 담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과거를 이리조리 들쑤시고 헤집어 놓고선, 마구잡이로 기억 저편 속에 욱여넣었습니다. 제자리가 아닌 곳으로. '후회'라는 단어로 종종 다가오던 그 행위는 때론 현재와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방탕한 행위'에 지나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미화된 과거를 동경하는 습관인 건지, 현재에 집중을 못하고 있는 건지, 이 모두에 해당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맥 바넷의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라는 그림책입니다. 원작의 문장 그대로 직역한 듯한 직관적이고 표면적인 제목 때문에 더욱 호기심이 갔던 책입니다. 제목에 딱 부합하는 표지 그림까지.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제목과 그림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행간의 의미를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는 '사명'을 위해 샘과 데이브는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삽화 외에 여백이 더 크게 보입니다. 넓은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까, 두 주인공의 속마음을 독자들이 말풍선을 그려가며 마음껏 상상해 보라는 배려였을까.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줄 땐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 무엇인지 저도 알고 싶은 조급함에 책장을 서둘러 넘겼지만, 저 혼자서 다시 읽게 되었을 때는 가만히 여백을 응시해 보았습니다.
꽤나 깊이 판 듯합니다. 샘과 데이브는 조금만 더 파면 찾을 수 있는 다이아몬드를 바로 엉덩이 아래에 두고, 지쳐버렸습니다. 정작 샘과 데이브에겐 보이지 않고, 독자들의 눈에만 보입니다. 아이들은 다급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기 있는데!!!" 라며 다이아몬드를 가리킵니다.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한가득 실은 목소리가 샘과 데이브에게 들리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도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은 '다이아몬드, 보석'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는지, 아니면 우산이나 물통, 로션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더라도 "여기 있는데!"라고 외쳤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아래로 파도 그 무언가가 나오지 않자, 노선을 달리하여 파 내려간 주인공들. 앞선 장면에서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냅니다. 운명의 장난인 건지, 아슬아슬하고 얄궂게 보석을 피해 땅을 판 주인공들. 독자들은 애가 탑니다. '제삼자'의 생각과 시선이 당사자들에게는 가닿지 않는 지금, 발만 동동 굴려봅니다.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땅을 열심히 판 둘은 눈만 새하얗게 보입니다. 그 와중에 강아지는 뼈다귀 냄새를 맡은 건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발 밑의 뼈다귀에게 시선이 향해 있습니다. 그러다 깜빡 졸게 된 둘은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집니다. 강아지가 뼈다귀를 찾기 위해 판 구멍으로 추정된 곳으로 진짜 빠져버린 걸까요, 꿈을 꾸는 걸까요, 열심히 '멋진 것'을 찾다가 지쳐버린 마음이 표현된 장면이었을까요.
이윽고, 그 둘과 강아지는 어딘가에 털썩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말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앞서 '보석'이 나왔던 데다가, 고정관념 때문인지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계속해서 찾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질 무언가일 거라는 추측과 함께. 하지만 그림 속에선 발견되지 않는 '멋진 것'의 존재에 함께 책을 읽던 아이들도 휘둥그레 해집니다. "뭐가 어마어마하게 멋진 거라는 거지?" 의문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개운해진 얼굴로 유히 귀가하는 샘과 데이브. 한 편에 만족스럽게 뼈다귀를 물고 열매를 바라보는 강아지의 모습에도 눈길이 갑니다. 직설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 무엇인지 질문만 던진 채,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들이 사명을 다해 찾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면에서 문득 느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행위를 질책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현재를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것. 과거의 회귀로 몸과 마음이 복잡해질 때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샘과 데이브를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물밀듯이 밀려오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부드럽게 행복하고 좋았던 감정들도 있지만 그 와중에 까칠한 모래알이나 깨진 조개조각처럼 까끌거리는 것들. '후회'라고 이름 붙여 부르는 감정들입니다.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걸. 이렇게 했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달라졌을까.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과거를 불러다가 붙잡고 하소연을 합니다. 질척이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아보지만 까끌거리던 감정은 더욱 큰 상처만 남길 뿐, 후회는 또 다른 후회를 낳고 맙니다.
샘과 데이브 이야기를 보며, 후회하지 않는 현명함이 주는 홀가분함이 얼마나 개운한 것인지 느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애쓰며 읽었는데, 제 방식대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경우에 따라서 후회가 주는 밑거름을 잘 소화해야 할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후회와 자책으로 현재를 낭비해 버리는 누군가에게, 가끔씩은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괴롭힘으로부터 당차게 자유로워지는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후회를 더 파내려 애쓰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여백을 바라보는 연습을. 그리고 조용히 말해봅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