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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y Jul 08. 2022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가 제일 어려운 법



작년에 이맘때쯤 저장해둔 나의 글을 열어보니 '올해는 비가 너무 안와 걱정이었다.'라고 시작하는 글이 보인다. 매일 같이 비 소식이 들리는 요즘, 날씨 참 웃긴다하며 다시 열어보았다. 작년 여름에는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글을 열어보니 딱 첫 문장이 이렇게 쓰여있다. 


"올해는 비가 너무 안와 걱정이었다. 오랜만에 내린 비가 반갑지만 갑자기 내린 비는 너무 강해서 약한 잎들이나 막 새롭게 잎을 낸  어린 식물들이 다칠까 걱정이 된다." 


아 나는 작년 여름에도 식물들을 걱정했구나. 그리고 그 밑에는 씨앗부터 키운 싱싱한 바질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있다.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약한 새잎들 조차 시원한 비를 맞고는 더 싱싱하게, 더 강하게 자라 있었다." 


강한 비 이후 더욱더 싱싱해진 나의 바질



새 잎은 연하고 연하다. 실수로 살짝만 힘을 주어 만 저도 잎이 찢어지거나 상처가 날 만큼. 진한 초록색의 잎과는 다르게 연하고 연한 갓 세상에 핀 연두색의 어린잎이다. 


그런 어린잎들도 참다 참다 터진 강한 장맛비를 버틴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가 바닥에 닿고 다시 높게 뛰어오를 만큼 강한 장맛비를 버틴다. 물론 너무 강한 비에 잎이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잎들도 있다. 물론 상처는 입었지만, 다행히도 죽진 않더라. 그리고 그런 상처 잎은 잎들은 더 힘차게 새로운 잎을 올린다. 


요즘 들어 매일 내리다 싶은 강한 장맛비를 보면서, 비도 참 적당히 내리면 안 되나 싶다. 적당히 필요한 때에, 식물이 다치지 않을 만큼, 더운 날씨에도 목이 마르지 않을 만큼 내려주면 안 되나 싶다. 그럼 식물도 나도 안심할 텐데. 찢어질까 부러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비가 참 적당히 와주면 좋을 텐데 싶다. 식물과 비의 관계처럼, 사람들의 관계도, 주어지는 힘듦도, 괴로운 것들도, 행복한 것들도 참 적당하면 좋겠다. 


누군가를 너무 많이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싶고, 누군가를 너무 많이 증오하지 않고 싶다.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미워하고 싶다. 나의 감정 때문에 새로 나온 여린 잎처럼 찢어질까 부러질까 걱정하고 싶지 않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고통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련들도 참 적당히 왔으면 좋겠는데, 장맛비처럼 한 번에 몰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된단다. 그러다 행복이 찾아오면, 크게 다가온 행복이 떠날까 봐 적당히 행복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고 싶다. 다칠까 상처받을까, 부러지면 다시 살아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장마가 끝난 후 더욱더 생생하게 자라는 나의 식물들을 보며 또 반성한다. 찢어지면 다시 새잎을 올리고, 부러지면 다른 곳에서 새 가지를 두 배로 내어 자란다. 적당히 사랑할 수 없다면, 찢어질 듯이 사랑하자. 부러질듯 괴롭다면 부러지자. 여린 잎으로 강한 빗줄기를 맞이하는 식물들 처럼, 찢어지고 부서지더라도 다시 새 잎을 올리자. 그럼 나는 나의 바질처럼 더 크고 푸르게 자라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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