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부사 유몽인의 지리산 유람③ - 뱀사골에서 영원령을 넘다
[지리산 영원사 법당. 지리산중북부능선 삼정산 자락 900여m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두류선림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이 건물은 스님들의 생활공간에 불상을 모신 인법당이다. 영원사에는 조선시대에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들의 자취가 서려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인 백초월선사, 불교사학자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포광 김영수의 출가지이기도 하다.]
“월락동을 거쳐 황혼동을 지났다. 고목이 하늘에 빽빽이 치솟아, 올려다봐도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밝은 대낮일지라도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월락동‧황혼동이라고 부른다. 와곡(臥谷)으로 돌아들자 수목이 울창하고 돌길이 험하여 더욱 걷기 힘들었다.”(「유두류산록」, 최석기 외 번역)
음력 4월 2일(양력 5월 13일) 아침, 지금의 와운마을 인근 어딘가로 추정되는 월락동‧황혼동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선 유몽인 일행은, 곳곳에 쓰러져 가파른 돌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고사목의 가지를 제거하거나 비켜가느라 엄청 힘든 산행을 하였다. 또 ‘수십 리에 걸쳐 굽이굽이 뻗은 시내’라는 표현으로 보아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날 유몽인 일행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정오 무렵에 갈월령을 넘었다고 하는데, 이 고개는 동선 상으로 보아 현재 전북 남원 산내면과 경남 함양 마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삼정산능선(중북부능선) 상의 영원령으로 추정된다. 약 5km 정도 됨직한 거리를 무려 대여섯 시간이나 걸려 올랐으니 그 고단했을 유람이 짐작된다.
갈월령을 넘어서서 유몽인 일행이 도착한 영원암은 깊은 산중에 있는 작은 암자이지만 우리나라 불교사에 있어 중요한 역사 공간이다. 유몽인은 이곳에 머물고 있던 ‘선수(善修)’라는 승려와의 만남을 전하고 있다. 법호가 부휴(浮休)로 부휴선수대사(1543∼1615)로 잘 알려진 이 고승은 벽송사를 창건한 벽송지엄대사의 법손으로 벽송대사의 법맥을 이은 부용영관의 제자이다. 부용영관은 두 명의 뛰어난 제자를 길러내는데, 바로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청허휴정과 부휴선수이다. 이 두 고승 역시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훗날 청허계와 부휴계라는 법맥을 이루게 되며, 이 두 문중에서 배출된 승려들에 의해 조선불교가 지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 청허휴정은 사명유정, 소요태능, 청매인오, 편양언기 등의 제자를 두었고, 부휴선수의 제자로는 임진왜란 후 화엄사, 쌍계사, 해인사를 비롯한 대가람의 중창불사를 주도한 벽암각성이 있다.
지리산에 머물고 있던 부휴선수는 1612년(광해군4) 미친 승려의 무고로 투옥되었다가 무죄로 판명되어 풀려나왔다고 하는데, 유몽인이 ‘이름난 승려 선수가 이 암자에 사는데, 제자들을 거느리고 불경을 연역하여 사방의 승려들이 많이 모여든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영원암에 주석하고 있을 때 끌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 부휴선수는 조계산 송광사에 머물다가 1614년 지리산 칠불암으로 옮긴 후, 이듬해 7월에 입적하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영원암에서 만난 지 1년 뒤인 1612년 4월 5일의 『조선왕조실록』 기사가 흥미롭다. ‘김직재 사건’과 연류되어 국문을 받고 있는 부휴선수와 남원부사에서 물러나 있다가 예조참판으로 제수되는 유몽인의 이름이 나란히 올려져있는 것이다.
현재 영원사에는 서산대사의 제자인 청매인오대사(1546~1621)의 승탑이 절 뒤편 언덕에 모셔져 있다. 청매인오가 1610년을 전후하여 영원암 인근에 도솔암을 새로 짓고 머물렀다는 사실은 당시 지리산을 유람한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서 확인된다. 법맥 상 숙질간이나 세속 나이 세 살 차이인 부휴와 청매 두 고승이 같은 산자락에 도반처럼 지내고 있었을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청매인오승탑]
영원암은 17~19세기에 들어서면 당시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화엄경 강학’의 공간으로 널리 알려지는데, 이곳에서 공부하고 강경을 하던 고승들의 흔적이 영원사 인근 곳곳에 남아있다. 상무주암 인근에 있는 회암정혜(1685~1741)와 영원사승탑군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설파상언(1707~1791)의 승탑이 그러한데, 이들은 조선후기 화엄학의 종장으로 알려진 고승들이다. 그런데 승탑 안내판의 ‘영각사를 창건한 설파상언’이라는 설명은 명백한 오류이다. 영각사는 남북국시대에 창건된 고찰이다.
[위 : 회암정혜 승탑. 아래 : 영원사승탑군. 중앙에 석종형이 설파상언의 승탑이다]
유몽인 일행은 ‘사자항을 돌아 장정동으로 내려가서, 가파른 돌길을 곧장 내려가 실덕리를 거쳐 군자사에 도착하였다’고 하였다. 최근 이 길을 답사한 사람들의 자료에 의하면 이 노정은 대체로 영원사도로-뇌전마을-실덕마을-내마·외마도로-군자마을을 잇는 동선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몽인 일행은 군자사에 도착하여 힘들었던 여정을 마치고 하룻밤을 머문다.[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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