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쿠사의 우리 집, 뜻밖의 스카이트리

by 초율

편의점에서 대충 허기를 채우고 나니 비로소 차가운 도쿄의 바람을 뚫고 걸을 힘이 생겼다.

다시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쥐고 아사쿠사의 골목 안으로 스며들었다.

걷다 보니 화면으로만 보던 풍경들이 하나둘 실제가 되어 나타났다.

구글 지도에서 수십 번도 더 들여다봤던 건물들과 표지판들.

"어, 저 건물 아까 지도에서 봤는데!" 하며 반가워하거나, "저기도 예약하려고 했던 숙소야!" 라며 아는 체를 할 때마다 낯선 길은 조금씩 우리 동네처럼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먹으니 살짝 여유가 생긴 덕분일까. 아까는 보이지 않던 길가의 작은 가게들이나 아사쿠사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공을 들인 건 단연 숙소였다.

물론 후기가 쏟아지는 화려한 호텔들도 많았지만, 나의 기준은 명확했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두 딸과 우리 부부, 네 식구가 복작거리지 않을 만큼의 면적과 간단한 아침 정도는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호텔의 정형화된 컨디션보다는 가족이 편안하게 둘러앉을 수 있는 레지던스형 숙소를 찾아 헤맸다.


아사쿠사에서 조금만 걸어가 도착한 우리의 숙소는 한 층에 딱 한 객실만 있는 작은 빌딩이었다.

프라이빗한 구조 덕분인지 문을 열기도 전부터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친절한 데스크의 인사는 여행 중 포근하게 쉴 수 있는 '우리 집'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을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을 여니, 이게 웬걸.


"와, 진짜 넓다!"


넓고 쾌적한 실내를 보자마자 넷이서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숙소는 좁다는 편견을 깨 주는 공간.

더블 침대 하나와 한쪽엔 다다미방이 따로 있어, 푹신한 침구에 몸을 던지니 여행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숙소 선택까지 '럭키'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이들은 벌써 제 자리를 찾느라 분주했고, 캐리어를 내려놓는 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렸다.

하지만 진짜 선물은 따로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니 눈앞에 펼쳐진 뜻밖의 풍경.

거대한 스카이트리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선명하게 서 있었다.

반절짜리 스카이트리였지만 예상치 못한 뷰를 덤으로 얻은 기분.

이 숙소의 또 다른 매력은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단 1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벌써 흥분 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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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대충 풀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쪽으로 천천히 걸으며 동네를 살폈다.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탐색하는 것은 우리 가족만의 오랜 여행 스타일이다.

식당과 교통수단의 위치, 편의점과 마트가 어디 있는지 미리 살펴두면 내일의 계획을 세우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아사쿠사 주변 상가들은 구경거리로 가득했다.

가고 싶은 곳들을 미리 스캔하는 아이들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우연히 관광객 하나 없는 조용한 라멘집에 들어갔다.

도쿄 도착을 기념하는 첫 공식 식사였다.

뜨끈한 라멘과 시원한 생맥주 한 잔.

나루와 바다는 음료수로 잔을 부딪쳤다.

무사히 도착했음을 감사하며 한 입 크게 들이켰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 우리들만의 금지어를 하나씩 정하며 장난스럽게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늘 꼼꼼하게 주의를 주던 아빠가 그만 양념통을 엎어버렸다.

그 찰나의 실수가 시작이 되어 아이들은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사고를 치니 그게 그렇게 재밌었나 보다.

오랜만에 숨쉬기 힘들 만큼 웃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남편의 얼굴에서도 비로소 긴장이 풀린 게 보였다.

아빠의 작은 실수에 아이들도 무장해제 되며,

우리의 여행이 비로소 가볍고 경쾌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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