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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Jul 16. 2019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중국의 <마지막 황제>

팟캐스트 <차이나는 무비> 한중일 횡단토크쇼! 

 안녕하세요! 중국영화와 더불어 중국의 숨겨진 매력을 전해드리는 팟캐스트 <차이나는 무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1987년에 제작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사실 외국 감독이 중국, 특히 중국 역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매우 드문 케이스이죠. <마지막 황제>도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성립된 이후 최초로 외국자본과 협력하여 공동제작한 작품입니다. 또한 중국 당국이 자금성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것을 허락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런 독특함 때문인지 이 영화는 198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의 상을 휩쓸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 황제>는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황제이기도 한 ‘푸이’(溥仪)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제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아시나요? 황제라는 표현은 잘 알고 계신 진시황 때부터 쓰였다고 합니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 중국 전설상의 여덟 왕을 가리키는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황’과 ‘제’를 따와서 황제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합니다.  



 이 시기가 기원전 3세기이니 결국 2000년 동안 이어져온 최고 통치자의 칭호, 황제라는 말이 푸이에서 끝이나는 것이죠.


 

 영화는 1908년 3살이었던 푸이가 자식이 없는 광서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시점부터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 휘말려서 개인으로 돌아와서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 시기에 중국에는 너무도 많은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푸이가 태어나기도 이전 청나라는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몰락, 외부적으로는 유럽 강국의 압박 등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어린 푸이가 황제가 되자 국민들의 고통은 점점 더 커져나갔고, 이후 중국 전역에서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했죠.




  전국적인 봉기는 1912년 신해혁명으로 이어집니다.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인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들어서게 되죠. 즉위 3년 만에 푸위는 황제 칭호와 사유 재산만 인정받은 채 퇴위당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보면 어린 푸이가 자금성 내에서 외국인 교사에게 교육받고 테니스를 치는 장면도 나오죠.

 그런데 이 시기에 중국 전역에서는 크고 작은 군벌 세력들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1917년 장쉰(张勋)이 이끈 복벽운동으로 다시 황제가 된 푸이를 자금성 밖으로 내몰은 펑위샹(馮玉祥) 역시 군벌 세력 중 하나이죠. 결국 1924년에 쫓겨난 푸위는 톈진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일본 공사관의 정치적 비호를 받으며 생활하게 됩니다. 중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본에게 이용당하기 시작한 것이죠.



 1931년 일본은 만주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킵니다. 이로써 만주땅은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되고 이듬해 곧바로 만주국이 세워집니다. 이때 만주국의 왕으로 푸이를 내세움으로써 푸이는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죠. 그런데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1945년에 일본이 패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푸이는 전범국의 괴뢰정부 수장이었기 때문에 소련에 의해 하바롭스크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이후 푸이는 10년동안 수용생활을 한 뒤, 모범수로 출소하여 일반 시민 신분으로 다양한 일을 하며 여생을 보냅니다.


 

 영화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황제로 또 전범 수용자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일반 시민으로 살게 된 푸이의 삶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무삭제판의 시간은 3시간 38분이나 될 만큼 긴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명장면이라 부를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이 있습니다. <차이나는 무비> 멤버들이 모두 감탄했던 한 장면은 바로 영화 마지막에 푸이가 자금성으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차이나는 한 장면




 일반 시민 신분이 된 푸이는 한때 자신의 집였던 자금성을 보기 위해 입장권을 삽니다. 역사적인 판단은 제쳐두고 너무도 비극적이었던 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만감이 교차했을 푸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죠.


 

 이 마지막 장면은 영화에서 정말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의 거대한 주인공을 영화로 접하게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존경심이나 동정심을 떠나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공간과 그 속에 담긴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받은 귀뚜라미 장난감 통을 다시 만지는 푸이의 표정에서 영화 속에서만 흘러가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죠.


 

 파란만장한 삶을 산 푸이의 삶을 다룬 콘텐츠들은 <마지막 황제>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유명한 작품들을 소개해 드리면 2015년에 중국에서 방영한 ‘말대황제전기’(末代皇帝传奇)라는 드라마가 있고, 푸이의 두번째 아내인 ‘원슈’(文绣)에 초점을 맞춘 ‘말대황비’(末代皇妃)가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말대’(末代)라는 표현이 쓰이죠. 이 표현이 오늘의 중국어 한마디 입니다.


 

오늘의 중국어 한마디

 사실 <마지막 황제>는 영화가 영어 대사로 진행되기 때문에 중국어가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대’(末代)라는 표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화 <마지막 황제>의 중국어 제목 역시 ‘말대황제’(末代皇帝)이기 때문입니다.


 

 말대황제, 末代mòdài 皇帝huángdì


 

 末代 mòdài 는 ‘왕조의 마지막 대’를 의미합니다.


 

 동의어로는 末世mòshì가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再见�~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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