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실제 주인공, 송가황조의 세 자매 이야기
안녕하세요! 중국영화와 더불어 중국의 숨겨진 매력을 전해드리는 팟캐스트 <차이나는 무비>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1997년에 국내에서 개봉되었던 <송가황조>입니다. 감독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홍콩 출신의 메이블 청(Mabel Cheung)입니다. 이름을 한자로 살펴보면 장완정(张婉婷)이죠. 홍콩을 대표하는 여성감독으로 손꼽히는 메이블 청 감독은 <송가황조>를 통해 홍콩 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위의 영화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 <송가황조>의 영문 제목은 ‘The Soong SISTERS’ 입니다. 영화는 포스터에 보이는 宋(sòng) 씨 세 자매, 쑹아이링(宋霭龄, 송애령), 쑹칭링(宋庆龄, 송경령), 쑹메이링(宋美龄, 송미령)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이 세 자매의 이름이 친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쑨원(孫文, 손문), 장제스(蔣介石, 장개석),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 같은 이름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모르실지라도 들어보신 적은 있으실 거예요. 사실 이 세 자매는 이 세 인물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중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매우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한 가정에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던 자매가 모두 나오게 된 것일까요? 이 점을 알기 위해서는 영화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영화는아무래도 인물 중심으로 흘러가다보니 배경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 소개해드리는 영화의 배경을 알고 영화를 보신다면 좀 더 재밌는 영화 관람이 될 것입니다
영화는 1911년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이었던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진 뒤 격변의 시기를 맞은 중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신해혁명 이후에는 당시 임시대총통 자리에 있었던 쑨원을 몰아내고 이후 스스로를 황제라고 위안스카이가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때 쑨원을 중심으로 했던 혁명의 물결은 반제(反帝)·반봉건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1919년 5·4운동으로 이어지죠.
대학생들과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시작했던 5·4운동은 이후 중국 전역의 노동자 계층에게도 퍼지면서 확산됩니다. 이때 중국의 전반적인 체계와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움직임도 생기면서 신문화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5·4운동을 중국 현대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죠. 반제(反帝)·반봉건을 버리고 과학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신해혁명이 일어난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전국적인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러시아의 10월 혁명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의 바람이 중국에 불게 된 것도 이때입니다.
배경 설명이 조금 길었지만, 이러한 배경을 알고 보면 영화 속 장면들을 조금 더 풍부하게 즐기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런데 <차이나는 무비>를 계속 듣고, 보시는 분이라면 이런 설명을 한번 보신 적 있으시지 않나요? 바로 얼마전 다루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역시 같은 배경 속에서 진행되었죠. <마지막 황제>가 격변의 시기에 마지막 황제로서 푸이의 삶을 다루었다면, <송가황조>는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는 “옛날 중국에 세 자매가 있었다. 한 명은 돈을 사랑했고, 한 명은 권력을 사랑했으며, 한 명은 조국을 사랑했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합니다. 세 자매는 일찍 개화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인물이자 혁명지도자 쑨원의 혁명을 도운 아버지를 따라 새로운 중국 건설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때 첫째는 당시 중국의 최대 부호였던 쿵상시(孔祥熙, 공상희)와 결혼하고, 둘째는 쑨원, 셋째는 장제스와 결혼하여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영화는 이들의 역사를 시간적으로 따라가면서 진행됩니다.
차이나는 한 장면
<차이나는 무비> 멤버 ‘신여성’은 장면은 영화가 너무 시간적인 역사 나열에 치중한 것 같다는 아쉬움에서 차이나는 한 장면을 뽑았습니다. 우선은 첫째 쑹아이링의 재력이 돋보이는(?)장면입니다. 영화 후반 장제스가 탄 비행기가 남경공항으로 돌아오는데 활주로가 너무 어두워 착륙하지 못하자 첫째 쑹아이링이 시내에 있는 자동차를 전부 불러 활주로를 환하게 비추는 장면이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쑹아이링의 모습이나 장제스가 갑자기 기도를 하며 읆은 내용이 실제 역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장제스는 왜 시안(西安)에 있었는지 등이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에서 차이나는 한 장면을 뽑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세 자매를 신여성이라 부르는 것처럼 정말 신여성이라면 과거의 적폐와는 조금 더 주체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그것과 손을 잡는 모습이 영화에서는 맥락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꿈꾸미’는 중국어와 관련된 차이나는 한 장면을 꼽았습니다. 쑨원이 죽기 전 침대에 누워서 “손중산 만세~”(孙中山 万岁~, sūnzhōngshān wànsuì~)라고 외치는 민중들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쑨원은 만세를 외치는 민중들을 보며 황제가 없어진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만세를 부르냐며 한탄하죠. 이 장면에서 ‘만세’라는 표현에 대해 알고 있어야 쑨원의 대사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만세’는 예전에는 백성들이 황제를 칭하는 말로 황제가 오래오래 잘되기를 기원하는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 역사를 보면,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시기에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기에 우리 역사 속에서도 3·1만세 운동 같은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막달린 중국영화가 필요없는 ‘자영업’도 중국 문화와 관련된 장면을 차이나는 한 장면으로 뽑았습니다. 영화 초반 5·4운동이 일어나면서 세 자매의 아버지가 자매의 인형을 모두 버리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5·4운동 당시 실제로 민중 사이에서 퍼졌던 행동입니다. 서양 물건들을 쓰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피아노를 불태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보면 둘째 딸 쑹칭링이 가장 먼저 선뜻 인형을 내놓고, 나중에 뒷따른 첫째 딸 쑹아이링은 옷자락에 하나를 숨기고 하나만 던집니다. 역사를 미리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본다면 이 장면은 실리를 추구하는 쑹아이링의 모습이 복선처럼 드러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죠.
<송가황조>는 자신의 신념과 입장 때문에 결국 가족들과도 떨어지게 되었던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 여성 캐릭터를 다룬 영화가 많지 않다보니 <송가황조>가 더욱 주목받을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사는 <송가황조>의 세 자매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이 당시의 한 여성의 삶은 다룬 영화가 개봉된 적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으로 끌려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다룬 2016년 개봉작 <덕혜옹주>를 떠올렸습니다.
물론 신여성이었던 <송가황조>의 세 자매와 모든 것을 강제받았던 덕혜옹주의 삶은 매우 달랐지만, 근대 여성의 삶을 다룬 콘텐츠가 앞으로 더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잠깐 소개해드렸습니다.
오늘의 중국어 한마디
오늘의 중국어 한마디는 마지막 장면에서 하인이 위독한 상태의 둘째 쏭칭링에게 쑨원 선생님이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중국의 역사가 달라졌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쑹칭링이 그에게 답한 대사입니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历史没有如果”
历史 lìshǐ 没有 méiyǒu 如果 rúguǒ
그럼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再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