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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Jul 23. 2020

대만의 공포게임 영화 <반교>

팟캐스트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입니다! 

오늘은 영화 존 슈 감독의 <반교 : 디텐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국내에서 정식 개봉되지 않아 못보신 분들이 많을 것 같지만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0초만에 전석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영화랍니다. 우선 감독에 대해서 잠시 소개하자면, 본명은 쉬한창(徐漢強)으로 미디어, 언론, 영상영화 쪽으로 유명한 대만 세신(世新)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2015년부터 단편 영화를 찍었습니다.  <반교 : 디텐션>은 그의 첫번째 장편 데뷔작이죠. 그렇지만 2019년 대만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상인 ‘금마장’에서 최우수 각본상과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고, 흥행실적 역시 좋았습니다.


영화 <반교> 포스터


하지만 <반교>라는 제목으로는 어떤 영화일지 감이 잘 안오죠? 바로 중국어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돌아올 반(返)에, 학교 교(校)를 붙인 ‘반교(返校, fǎnxiào)는 ‘학교로 돌아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 제목은 ‘detention’은 ‘구금하다’라는 뜻과 ‘벌을 주기 위해 학생을 집으로 보내지 않고 학교에 남아있게 하다’라는 구체적인 상황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반교’라는 의미처럼 긴 잠에서 깨어난 두 학생이 학교를 나가려고 하는데 나가지고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와 ‘detention’의 의미처럼 그 곳에 남아 벌을 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중년이 된 한 학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도 하죠. 그렇다면 왜 나가지 못했으며, 왜 벌을 받았을까요? 이것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대만 계엄시기’라는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성홍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 (사진 출처 : theglolbalinsight)


영화 초반부에 국기게양식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빨간 바탕에 파란 하늘색을 바탕으로 하얀색 해가 그려져 있는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파란색 부분은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로 국민당의 당기(黨旗)입니다. 국기에 한 정당의 당기가 들어있는 것이죠.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의 역사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중국에서 신해혁명을 성공시킨 쑨원은 삼민주의(三民主義), 즉 민족, 민권, 민생을 주창하기도 하였지만, 중화민국 건국 초기에는 국민당의 일당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론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민당의 당기가 중화민국의 국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죠.

다시 국기를 잘 보면 지금의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는 붉은 배경에 노란 별이 그려져 있죠. 노란 별은 중국 공산당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빨간 색은 혁명을 상징하는 색이자 동시에 붉은 태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중국과 대만의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붉은 태양(紅日)과 하얀 태양(白日)입니다. 태양의 색을 묻는다면 중국 대륙 사람들은 언제나 붉은색이라고 답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하얀색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태양의 색에 대한 관념이 정치적 이유로 달라지게 된 것이죠. 심지어 중국 대륙에서는 하얀 태양을 일컫는 ‘백일(白日)’라는 표현을 절대 쓰지 않고, 대만 역시 붉은 태양을 의미하는 ‘홍일(紅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붉은색과 파란색 역시 중국과 대만의 역사적 관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붉은색은 공산당을 파란색은 국민당을 상징하기 때문이죠. 여기서 영화 속 학교 이름의 의미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학교의 이름은 ‘취화(翠華) 고급중학교’ 입니다. 고급중학교는 한국의 고등학교를 의미하고, 취화에서 ‘취’는 ‘비취색’의 ‘취’, ‘화’는 ‘중화(中華)’에서의 ‘화’입니다. 결국 학교의 이름인 ‘취화’는 대륙의 붉은 중국에 대비되는 ‘파란 중국’을 의미하는 매우 정치적인 표현이기도 한 것이죠. 이와 함께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국기 게양식 장면에서도 역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정치적 의미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만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처럼 중국과 복잡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일까요? 우선 원주민들이 대대로 계속해서 살아오던 대만 땅에 중국 대륙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 첫 공식적인 시기는 명나라 때입니다. 명나라가 청에 패망하자 정성공(鄭成功)이라는 인물이 명나라 유민들을 데리고 대만에 내려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대륙 사람들이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 대만은 지리적으로 보면 동남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어야 하고, 원주민들의 언어 역시 동남아 언어와 유사점이 많은데, 이때부터 중국과 관계가 시작된 것이죠. 


대만의 위치 (사진 출처 : 구글 지도)


이 이후로는 네덜란드, 스페인 등 서양 열강들의 각축의 장이 되는 역사를 거쳐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대만은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됩니다. 이후 1945년에 대만 역시 해방되었지만 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할 것을 염두에 둔 국민당은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켜 패배 이후를 대비하게 됩니다. 1949년 결국 패하게 된 국민당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때부터 대만에 계엄령이 내려지게 됩니다. 이 계엄령은 1987년 7월에 해제될 때까지 38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아주 긴 기간 동안 계엄의 일상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이 시기 장제스(蔣介石) 정부가 대만을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부흥시키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지만 독재 정권의 경제부흥 모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민주화, 인권과 개인의 자유의 측면에서는 상당한 통제가 있었습니다. 정권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이들은 가차없이 숙청당하기도 하였죠.

 

대표적으로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 미려도사건)이 있습니다. 1979년 12월에 세계인권선언의 날과 잡지 "메이리다오(美麗島)"의 창간일을 기념해 가오숑(高雄)에서 열린 시위가 정권가 충돌하게 된 사건이죠. 이 시위를 주도했던 변호사, 잡지 창간인, 비판적 지식인들은 경찰에 붙잡혀 투옥, 감금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대만 사회의 큰 분수령이 되었고, 이때 참여했던 이들이 이후에 결성한 정당이 현재 집권당인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 이하 민진당)입니다. 지난 총통이었던 천수이벤(陳水扁)을 비롯해 민진당에서 활약한 여러 인사들 모두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혹했던 38년간의 계엄령 통치 기간을 대만 백색테러 시대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프랑스 혁명 직후 1795년 혁명파에 대한 왕당파의 보복에 기원을 두는데, 당시 프랑스 왕권의 표장이 흰 백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권력자나 지배계급 혹은 극우 집단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대파를 암살, 파괴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이죠. 테러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이 시기는 대만 역시에서 긴 터널 같은 암흑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영화는 대만 현대사의 비극적인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독특하게 게임을 오리지널 콘텐츠로 하고 있습니다.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된 지 30주년인 2017년 1월 13일에 먼저 출시가 된 게임이 2019년에 영화로 제작된 케이스이죠. 대만 전역에서 굉장한 화제가 되었기 때문에 출시와 함께 영화화가 결정되었고 이제 곧 TV 드라마로도 제작된다고 합니다.


게임 <반교 : 디텐션> (사진출처 : 네이버 게임즈)


결국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들며 대만의 아픈 역사가 다루어지는 것인데, 호러와 스릴러라는 장르와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도 합니다. 물론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처럼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콘텐츠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그 역사를 대단히 진지한 자세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와 같은 모습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작품들이 많죠.

또한 게임에 대한 시각 역시 매니아 그룹에게만 통용되는 것, 심지어는 여전히 가벼운 놀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금 더 독특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 공익 실현을 목표로 하거나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인디 게임들도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반교 : 디텐션>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출발한 게임으로 개발자들 역시 잊혀져 가는 역사를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게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로 창작했을 때 어떤 식의 또다른 효과가 있는지 이 게임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역사를 다루게 되었을 때는 과거를 회상하듯이 ‘이미 지나간’ 과거를 보는 것처럼 감상하게 되는데 게임의 경우 본인이 게임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 사건을 현재화 할 수 있게 되죠. 이런 특징은 단순한 체험의 의미를 넘어 그 역사를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를 가져오는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현실에서 소재를 사용했지만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 게임을 통해 그것을 다루기 때문에 그 사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합하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죠. <반교 : 디텐션>의 경우 보다 스릴러, 호러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뒤섞여져 역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은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 스팀 통해 다운 받아 플레이할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킬러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죽이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혹은 더욱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을 이야기 하는 코너입니다. 대만의 계엄 시기 학교에서 불온서적으로 분류된 금서들을 비밀결사 독서모임을 통해 읽고 공유했던 2명의 교사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반교 : 디텐션>에서는 어떤 ‘투비’와 ‘낫투비’가 있을까요?


22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식과 호기심이 충만한 신여성은 비밀 독서회를 운영한 선생님 장밍후이(張明暉, 푸멍보 분)을 살리고 싶은 캐릭터로 뽑았습니다. 장밍후이 선생님은 영화 속에서 마치 백석 시인을 연상하게 만드는 모던한 스타일로 그려졌죠. 비 맞은 제자의 옷을 말려주고, 자신의 마음을 하얀 사슴 목걸이에 담기도 한, 여리지만 자유를 갈망했던 청년이자 선생님입니다. 권력 간의 갈등이 격화된 상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꼭 알아야 할 지식과 마음을 전하기 위해 비밀 독서회를 운영하기도 하였죠. 그러나 그러던 중 독서회가 적발되어 고문을 받고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신여성이 장 선생님을 꼭 살리고 싶은 이유는 죽음을 당하기 전 옥중에서 만난 제자 웨이충팅(魏仲廷, 쩡징화 분)에게 건넨 대사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야만성과 악마같은 본성이 있지만 동시에 신성함도 가지고 있어. 우리에게는 이기심도 있지만 동시에 이타심도 가지고 있지”


 일본의 문예평론가 구리야가와 하쿠손(厨川白村)의 <고민의 상징> 속 문장을 인용한 이 대사는 인간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제자만큼은 살아남아서 학교에서 자신들이 겪은 일을 반드시 기억하고 알리라는 장 선생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구리야가와 하쿠손(厨川白村)의 <고민의 상징> (사진 출처 : 바이두백과)


영화 속에서는 루쉰(鲁迅)의 번역본을 통해 비밀 독서회 학생들이 함께 읽은 것으로 나옵니다. 장 선생님은 웨이충팅에게 이 구절이 나온 책을 구해 또다른 제자 팡레이신(方芮欣, 왕징 분)에게 전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웨이충팅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약속을 지키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늘 누군가는 꼭 살아남아 이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던 장 선생님의 말 속 ‘기억’이라는 단어가 큰 울림을 주죠. 그리고 그 당부가 살아남은 이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 같아 장 선생님의 모습이 마음 속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조미료를 채워줄 여자, 책을 사랑하는 여자 책사는 장후이밍 선생과 함께 독서회를 운영한 또다른 선생님, 인쯔이한(殷翠涵, 초이제완 분) 선생님을 TO BE로 뽑았습니다. 독서회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팡레이신(方芮欣, 왕징)이 인 선생님과 장 선생님의 관계를 오해하게 되면서 인 선생님을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게 되죠. 그러나 오해하게 된 그 모습은 인 선생님은 사실 동료로서 장 선생님에게 진심을 담은 조언을 하는 상황이었죠. 팡레이신이 오해를 하면서 영화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는데, 사실 이 오해는 팡레이신 개인의 실수라기 보다는 대만 사회를 비추는 상징적인 의미로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인 선생님에 대한 오해와 팡레이신의 질투심은 “그 여자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는 대사와 함께 절정에 이릅니다. 사실 이 대사는 그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매일 같이 무언가에 홀린 양 기도문을 외우던 어머니는 후에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빌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이야기에 팡레이신은 큰 충격을 받게 되죠. 그랬던 그녀에게 장 선생님은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준 존재였죠. 그렇기 때문에 장 선생님과 가까이 있는 인 선생님을 오해하고 싫어하게 된 것이죠.


이 오해가 상징적이라는 점은 팡레이신의 부모님 사이의 관계, 그리고 아버지와 경찰의 관계를 권력의 체계로 읽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항상 흉터가 있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무시하기 일쑤였죠. 가족 내에서 권력은 아버지에게 있었던 것이고 어머니는 그 권력에 복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권력에는 늘 체계가 있어 더 큰 권력이 있기 나름입니다. 아버지는 보다 큰 권력, 경찰에게 연행되죠.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더 큰 권력에게 아버지를 밀고한 것입니다. 딸 역시 자신의 오해와 복수를 위해 더 큰 권력을 이용하여 인 선생님을 위험하게 한 것이죠. 밀고자의 모습은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는 것으로 둘 모두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문제 해결 방법은 결국 같은 밀고의 방법이었죠.

 그런데 사실 ‘밀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그 사회에 수많은 권력 관계가 부당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불합리함을 고발했을 때 개인에게 돌아올 피해가 예상될 때 결국 우리는 그것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밀고는 밀고자가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모녀의 밀고는 대만 계엄 시기에 개인이 겪은 공포와 문제 해결에 있어 더 큰 권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암울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희생당한 인 선생님을 그녀가 영화 속에서 학생들에게 읽어준 시를 다시 읊어보며 TO BE로 살려보겠습니다.


“이파리가 사랑을 품으면 꽃으로 변한다 꽃은 존경을 받아 열매를 맺는다 땅속에 뿌리는 열매를 맺게 한 것에 어떤 답례도 원하지 않는다”


- 영화 속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의 시 中에서 -


꿈을 이루기 위해서 꿈을 꾸고 있는 꿈꾸미는 NOT TO BE를 골랐는데요, 바로 바이궈팡(白國峰, 주훙장 분) 교관입니다. 당시 대만 학교에는 항상 교관이 있었죠. 우리나라 70~80년대에도 비슷하게 수업 과목으로 교련 과목이 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교관 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들 존재 자체가 매우 큰 권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 보다 높은 권력의 층위에 있는 교관들은 학교를 장악하고 심지어는 선생님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이죠. 그런데 사실 교관도 권력의 피라미드 속에서 중간에 위치한 하수인이자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권력의 최고 정점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착각한 그 권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나 비판적 성찰없이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강행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말 그대로 악마적인 일들을 수행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의 하수인들이 각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도 많은 이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를 생각하며 바이궈팡 교관을 NOT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자막달린 중국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NOT TO BE와 TO BE를 동시에 골랐습니다. 바로 두 주인공 웨이충팅과 팡웨이신의 관계입니다. 우선 웨이충팅은 팡레이신을 짝사랑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비밀독서회의 책을 건네주었습니다. 팡레이신은 또 웨이충팅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 책을 얻어낸 것이죠. 한 사람은 유출하지 말아야 할 기밀 문서를 유출한 것이고 또 한 사람은 누군가의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NOT TO BE로 생각했지만, 영화 후반부에 이들의 관계를 다시 TO BE, 살리고 싶은 장면이 등장합니다. 팡레이신이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며 목숨을 걸고 웨이충팅을 학교 밖으로 탈출시키는 장면입니다. 이로써 웨이충팅은 살아남은 이로 남게 되죠. 이때 팡레이신은 ‘넌 살아 남아서 이걸 기억해줘야 해. 네가 살아만 있다면 희망은 있어’라는 장 선생님이 자신에게 해준 말을 이번에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웨이충팅에게 전해줍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런 대사로 보아 웨이충팅은 분명히 대만의 아픈 역사를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분명히 했을 것이라 믿으며 두 사람의 관계를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영화 <반교> 속 팡레이신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장 선생님의 말을 웨이충팅에게 전하는 팡레이신처럼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역사라는 것이 영원히 반복되기에 언제나 기억하고 현재화 시킬 필요가 있으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더욱 풍요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반교 : 디텐션>에는 어떤 드레싱을 곁들이면 좋을까요?


꿈꾸미가 가져온 드레싱은 또다른 대만 영화, 웨이더셩 감독의 <시디크발레(Seediq Bale)> 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대만 영화하면 <말할 수 없는 비밀>부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부터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많은 인기를 끌었죠. 그런데 이 외에도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의 <비정성시(悲情城市)>나 에드워드 양(Edward Yan)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같이 대만 역사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두 영화 모두 대만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는데, <시디크발레>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가 대만을 식민지 점령하던 시기 일제의 침략에 저항해서 끝까지 결사항전하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디크발레’라는 말은 원주민들의 용어로 우리나라에서는 <워리어스 레인보우: 항전의 시작>이라는 영어 제목을 그대로 옮겨서 개봉했습니다. 전투 장면이 많기 때문에 조금 자극적인 제목으로 번역이 되긴 하였지만 대만의 원주민들이 어떻게 일제라는 권력에 의하여 처참하게 타자화되고 희생당했는지를 볼 수 있는 영화라서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책사는 책을 사랑하는 만큼 책 한권을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히구치 이치요의 단편소설 『키 재기』 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장 선생님이 특히  좋아하는 꽃이 있죠. 바로 수선화입니다. 수선화 보다 이쁜 꽃도 많은데 왜 수선화를 좋아하냐는 팡레이신의 질문에 수선화는 평범해 보여도 자기만의 세계에서 타인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니 싫을게 뭐가 있겠냐고 대답하기도 했죠. 바로 이 수선화와 관련된 소설이 『키 재기』 입니다. 작가는 25살에 폐결핵으로 삶을 마쳤지만 사후에 문학성을 인정받아 일본 여성 최초로 일본의 지폐에 초상으로 등장한 인물입니다. 


일본 5000엔 (사진 출처 : www.mypivots.com/dictionary/definition/523/japanese-yen-jpy)


『키 재기』에서 키를 재는 것은 마음의 키를 재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곽의 기생이 될 신분의 미도리라는 아이와 스님의 자식인 노부유키 사이에 표현하지 못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단편 소설이죠. 소설 속에서 노부유키는 승려 학교로 유학을 가기 전날 미도라의 집 앞에 조화로 된 수선화를 두고 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자기 사랑, 자존심, 고결, 신비의 꽃말을 가진 수선화가 떠오르는 소설 『키 재기』를 영화 <반교 : 디텐션>의 장 선생님을 떠올리며 읽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신여성은 영화의 주제, 역사와 기억에 관한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라는 산문집입니다. 이 책에는 ‘윤리는 기억이다’라는 장이 있습니다. 이 장의 한 구절을 잠시 감상해볼게요.


 “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 시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음을,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을, 마음이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내내 기억하고 현재 순간에 용솟음쳐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예술은 말한다. 예술의 윤리는 규범을 만들고 권장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날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얻어낸 희망을 세세연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中 <윤리는 기억이다> -


 이 구절에는 모든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모든 예술의 존재 가치와 이유,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상업적이고 흥행 위주의 작품이 아니라 정말 좋은 작품을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들은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윤리가 규범이 아니라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해석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의미’에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장 선생님의 모습과 그의 말들이 이 구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영화 <반교 : 디텐션>은 대만 계임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가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영화이죠. 우리도 계엄이라는 슬픈 역사를 겪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최근에도 이와 관련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영업은 우리나라 계엄의 역사를 인문학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전남도청 사진


우선 대만이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계엄기를 겪었다면, 우리나라는 아주 많은 계엄령이 내려진 특징이 있습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가장 먼저 실시된 계엄은 제주 4·3 사건을 계기로 발생합니다. 1948년 제주도 전역 뿐만 아니라 제주 4·3 사건 진압을 거부한 국군 제14연대가 주둔한 여수·순천 일대에도 계엄령이 선포된 것입니다. 이후 1950년 7월 8일에는 6·25 전쟁으로 인한 전국 비상계엄이, 1960년에는 이승만 정부를 끌어내린 4·19 혁명을 계기한 비상계엄이 서울에 선포되었습니다. 이듬해 1961년에는 박정희가 5·16 군사 정변을 실시하면서 또다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하면서 계엄령이 또다시 선포되었고, 1979년에는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면서 부산과 마산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죠. 이 계엄령은 같은 해 박정희가 암살되면서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456일간 지속된 후 1981년 1월 24일이 되어서야 해제가 됩니다.


"계엄령을 해제하라" 라는 플랜카드가 걸린 전남도청 정문 (사진 출처 : 오픈아카이브)


 이뿐만 아니라 앞서 잠시 이야기 했듯이 불과 몇 년 전에도 박근혜 정부 탄핵 시위 당시 계엄령을 검토했다는 문건이 공개되면서 최근까지도 많은 분노와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만의 역사를 다룬 <반교 : 디텐션>에 우리의 역사를 드레싱으로 함께 살펴보면서 영화 속 명대사를 마지막으로 소개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차이나는 한마디

오늘의 차이나는 한마디는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팡레이신이 웨이충팅을 구하려는 장면에서 괴물 같은 교관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교관은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지난 일은 그냥 잊어버리라고 이야기하죠. 들을 필요도, 떠올릴 필요도 없다는 말과 함께 모든 고통은 과거에 내버려두고 잊어버리는 것이 더 쉽지 않냐고 묻기도 하죠. 여기서 팡레이신은 고민 끝에 더이상 잊지 않은 것이라 대답합니다. 바로 이 한마디 배워보면서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반교 : 디텐션> 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더이상 잊지 않을꺼야” “我再不要忘记了”


我 wǒ 再也 zàiyě 不要 búyào 忘记 wàngjì 了 le


그럼 다음에 또 좋은 영화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再见�~



ㅣ팟캐스트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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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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