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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Aug 09. 2021

호모 미그란스 <노매드랜드>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입니다! 2021년 4월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코로나19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큰 관심을 받으며 진행되었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를 통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차이나는무비 플러스>가 다룰 오늘의 영화는 아쉽게도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다룰 영화는 2020년 제 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시작으로 20201년 제 93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Chloe Zhao) 감독의 <노매드랜드>입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포스터(출처: 네이버 영화)


영원한 작별은 없어요
낯선 길 위에서 만난 기적같은 위로.


 영화를 연출한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계 감독으로 현재는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2014년 <내 형제들이 가르쳐준 노래>를 시작으로 <로데오 카우보이>(2017) 그리고 2020년 <노매드랜드>를 연출했는데 세 영화 모두 미국 중서부를 배경으로 이민자를 포함해 경제적, 사회적 약자와 같은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 생활의 경험 때문인지 미국 사회를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이 아닌 또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앞선 두 영화가 호평을 얻으며 서서히 주목 받게 된 감독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여성 감독으로는 최초로 감독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죠. 


 그런데 최근 언론에서 조명하는 부분은 감독의 영화보다는 감독의 개인적인 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감독이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인터뷰를 한 것으로 인해 영화가 검열을 받고 있는 일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죠.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중국 역시 클로이 자오 감독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골든글로브상 감독상을 수상하자 ‘중국의 자랑’이라며 대서특필하였습니다. 그런데 감독이 2013년 미국 영화잡지필름 ‘메이커(Filmmaker)’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10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곳은 거짓말이 어디에서나 있던 곳이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논란이 되자 <노매드랜드>는 중국 내에서 개봉이 취소되고, 검색엔진에서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죠. 이러한 상황 속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받자 언론은 국내에서는 <미나리>에 열광하고 윤여정 배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노매드랜드>를 검열하고 숨기려한다는 내용에만 지나칠만큼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 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당연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말하는 것이지 정치로 말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죠. 그렇기에 감독 입장에서도 그러한 관심은 달갑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좋은 영화이기에 최근에는 조금 나아졌지만 영화 외적인 부분에만 집중되었던 당시의 모습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노매드랜드>는 2011년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 시에 위치한 U.S석고 공장이 폐업하면서 공장에 수입을 의존하던 도시 전체가 경제적으로 붕괴한 후 그곳에 살던 여성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이 이전의 삶을 뒤로하고 홀로 밴을 운전하며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2017년에 출간된 논픽션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노마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만든 것이죠. 실제 캠퍼(capmer)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원작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영화 속 주인공 ‘펀’의 존재입니다. 영화의 제작자인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감독의 제안으로 ‘펀’이라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죠.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인물을 통해 영화는 다큐멘터리인 듯 하면서도 영화인 듯한 독특한 장르로 구성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거나 역동적으로 화면이 움직이는 구성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풍경과 등장 인물들 간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대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풍경과 대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이 매력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펀을 제외한 주요 등장인물들인 린다 메이, 밥 웰스, 샬린 스완키 등의 인물들은 실제 캠퍼이기도 합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소개한 뒤 그들과의 실제 인터뷰와 대화를 영화로 편집한 것이죠.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며 그들의 사고 방식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차이나는무비 플러스>의 킬러 콘텐츠!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 말그대로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영화 속에서 살리고 싶은 캐릭터와 이야기, 장면들(TO BE)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NOT TO BE)은 다시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영화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해 색다르게 상상해보는 ‘리(Re)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멤버들은 <노매드랜드>에서 어떤 인물과 장면에 주목했을까요?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잠도 많은 '꿈꾸미'는 영화가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해 펀이 밴에서 내려 들판에서 볼일을 보는 장면을 주목하고 싶은 장면, TO BE로 선정했습니다. 영화에서 펀은 집을 떠나 노매드(nomad) 생활을 시작하면서 또다른 노매드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죠. 그런데 그들은 모두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를 잃은 뒤 집을 떠나 길을 나서게 된 사람들입니다. 펀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뒤 집을 떠나 유랑 생활을 시작한 것이었죠. 이렇게 그들은 누구나 언젠가 겪게 될 상실에 대한 아픔을 서로 보듬어주며 생활을 이어갑니다. 영화는 상실의 경험으로 길을 나선 이들을 비추며 관객들에게 여러가지 질문들을 던집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집의 의미이죠. 그들에게 있어 집은 누군가와 함께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군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사라진 이후에는 그와 함께 했던 집을 떠날 수 밖에 없던 것이죠. 영화는 결국 ‘살 곳’, 즉 거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할 사람과 그 사람과 함께했던 집이 사라진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인 <무의지지>(無依之地) 역시 ‘의지할 곳 없는 땅’이라는 뜻으로 영화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집을 잃어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영화 속 집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꿈꾸미는 집을 인간 신체의 확장으로 보았습니다. 하나의 개체로서 인간의 몸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간들이 모인 집합으로서의 몸이 확장된 것을 집으로 생각한 것이죠. 정주해 있는 땅 위에 고정된 집에서는 혼자 살아갈 수가 없었기에 영화 속 인물들은 이동하는 집을 만들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이동하는 집들을 만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을 확장시키는 과정을 선택한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펀이 벤에서 나와 드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볼 일을 보는 것 또한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화장실의 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콘크리트나 나무로 고정되어 있는 땅 위에 놓인 집의 개념을 되묻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건축의 개념으로서의 집이 아닌 새로운 모습의 집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네모난 벽을 넘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자신의 집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생각하며 다시 조명해본 장면이었습니다.


자막달린 중국 영화는 필요 없는 자영업은 펀의 한 마디 대사를 TO BE로 선정했습니다. 펀이 마트에서 지인 브랜디를 만났을 때 그녀의 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죠. “아니, 집이 없는 건 아니야. 거주할 곳이 없는 것과 집이 없는 건 다르잖아. 난 괜찮아, 걱정마(No I’m not.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Not the same thing right? Don’t worry about me. I’m Okay.)”입니다. 집이 없는게 사실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펀의 답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이혜미 기자가 쓴 『착취도시, 서울』을 보면 서울 동자동, 창신동, 사근동에 있는 쪽방촌의 이야기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거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대도시 서울 빈곤 문제를 읽고 있다면 오늘날 서울의 풍경이 영화 속 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영화의 원작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노마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에서는 Homeless와 Houseless에 대한 문제 의식이 더 컸다고 하니 이 장면을 통해 오늘날 부의 창출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책사는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펀이 자신이 살아온 곳으로부터 떠나는 장면 TO BE살리고 싶은 장면으로 선정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서 모두 펀은 남편과 함께 살아온 집을 떠나지만 두 장면에서 느껴지는 펀의 감성은 사뭇 다릅니다. 도입부에서 펀이 집을 떠나는 것은 남편을 잃은 슬픔과 현실적인 조건과 같은 그녀 외부의 이유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영화 마지막에 다시 집을 나설 때는 다시금 꿈과 희망을 되찾은 뒤 독립적인 주체로서 길을 나서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이런 변화는 펀의 노매드 생활에서 조금씩 드러납니다. 아마존 물류 센터에서 일을 시작하며 또다른 노매드인 린다를 만나고 또 그녀를 통해 밥 웰스를 알게 되고, 그가 있는 남쪽에서 데이브를 비롯한 또다른 노매드들을 만나면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자세를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이죠. 그렇기에 함께 정착해서 살자는 언니의 제안에도, 데이브의 제안에도 펀은 다시 길을 떠나 창고에 있는 마지막 물건들까지 전부 처분한 채 다시 아마존 물류센터 에서 일을 하고, 다시 밥 웰스와 노매드들 곁으로 향한 것이죠. 이제는 삶이 되어버린 여행을 통해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자신이 살던 집을 둘러본 후 다시 네바다의 사막을 달리는 펀의 모습을 통해 당당하고 빛나는 노매드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지갑은 텅 비었지만 지식은 충만한 '신여성'도 주인공 펀의 한 장면을 TO BE, 살리고 싶은 장면으로 골랐습니다. 펀이 소중하게 여기던 접시를 밥 웰스가 있는 캠핑장에서 만난 또다른 노매드 데이비드(데이비드 스트라탄 분)가 실수로 깨버린 장면입니다. 자신을 많이 아껴주셨던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접시였기에 펀은 그 접시가 깨진 순간 데이비드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내는 등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깨진 조각들을 모아 원래 모습대로 다시 붙여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이제까지 살아오며 자신의 옆에 있어준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오며 산산조각난 펀의 마음 역시 함께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다시 단단히 온전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펀이 스스로에게 ‘그래도 괜찮아, 아직 끝난 게 아니야’라고 속삭이며 다독이는 것처럼 말이죠. 결국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볼 수도 있겠죠. 접시로 나타나는 아버지와의 관계, 소중한 기억들처럼 언제나 자신 곁에 있어야 하는 것들이 함께 있는 곳이 결국 자신의 집이라고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기억되는 한 살아있는 거다(What’s remembered, lives)’라는 대사처럼 상실로 인한 아픔을 스스로 추모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통해 치유하는듯 깨진 조각들을 모으던 펀의 모습이 오늘의 마지막 TO BE 장면입니다.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

이번에는 <차이나는 무비 플러스>의 두번째 코너. 영화를 보고 떠오른 역사, 문학, 음악, 철학 등 인문학적 감성을 더하여 더욱 풍요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 ‘길 위의 인문학 드레싱’입니다. <노매드랜드>에는 어떤 드레싱을 곁들이면 좋을까요?


책사는 영화 <노매드랜드>의 원작인 논픽션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노마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첫번째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제시카 브루더가 잡지 <Harpers Bazaar>에 기고한 ‘The End of Retirement: When you can’t afford to stop working’이라는 글을 바탕으로 2017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논픽션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영화에도 등장한 린다 메이를 중심으로 벤이나 트레일러에 살며 고정된 주거지 없이 살아가는 노매드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화 역시 책을 기반으로 했기에 처음에는 린다 메이를 주인공으로 하려 했으나 클로이 자오 감독의 제안으로 펀이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고 제작자인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연기를 하게 된 것이죠. 이렇듯 영화는 펀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면, 책은 그들의 삶을 가감없이 다루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그런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학적 분석도 담겨있습니다. 특히 펀이 살았던 곳으로 나오는 네바다 주의 엠파이어 시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10년 넘게 US 석고 공장을 기반으로 일을 해온 사람들이 기업이 무너진 뒤 다른 곳으로 이주해 다른 일을 시작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죠. 그런데 책에 따르면 엠파이어 시 자체가 이전부터 고립된 도시였다고 합니다. 며칠만 일하면 월세를 구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도시 위에 공장이 있던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만 있다보니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일하기에 바빴고 이후에는 다른 곳으로 이주 자체가 힘든 사회적 격차가 생기게 된 것이죠. 영화를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영화 속 이야기를 또다른 울림으로 느낄 수 있는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노마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자영업도 책 한권을 드레싱으로 가져왔습니다. 《한겨레》 국제부 기자 조일준 기자가 쓴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 인구의 이주 역사와 국제 이주의 흐름』입니다. 책 제목에 있는 ‘호모 미그란스’라는 표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책입니다. 언젠가부터 ‘호모 000’이라는 표현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와 이슈들을 포착하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있어왔죠. ‘호모 미그란스(Homo Migrans)’는 인간을 뜻하는 ‘Homo’와 이주자, 이주하는 동물을 뜻하는 ‘Migrant’의 합성어로 제목 그대로 '이주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책은 우리 인류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주해왔다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도 끊임없이 이주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며 결국 ‘이주하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또 그곳에서 정착하고 하는 선택은 인간의 기본권과 같은 것이죠. 그런데 책의 문제 의식은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이 되고 여권과 비자가 만들어지면서 현대 사회는 오히려 자유로운 이동과 이주의 자유가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책은 현대 사회에서 이주민의 문제, 디아스포라 정체성, 난민 수용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책 속 한 문단을 잠시 감상해볼까요?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 여행에 필요한 것은 여권과 비자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열린 마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면 충분하다. 길고 먼 여행이 시작되는 곳은 수백만년 전 아프리카 대륙의 사바나 지대, 물방울이 맺힌 나뭇잎들 사이로 아침햇살이 파고드는 숲이다.” ― 조일준, 『이주하는 인간, 호모 미그란스: 인구의 이주 역사와 국제 이주의 흐름』


 이주와 관련된 사회 문제에 대한 아주 감성적인 접근이죠. 물론 지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은 서정적인 감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의 올바른 화합을 위해서 끝없이 또 자유롭게 이주하는 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신여성도 감성적인 드레싱을 가져왔습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쓴 『느낌의 공동체』에 담긴 ‘슬픔의 유통 기한’이라는 글입니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모티브로 한 책으로 저자가 2006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여러 매체에 연재한 글들을 엮은 것입니다. 이 중 ‘슬픔의 유통 기한’이라는 글은 영화 <중경삼림>의 명대사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대사를 ‘슬픔’으로 바꾸어 쓴 글입니다. 이 글에서 두 가지 시를 평론하는데 하나는 최정례의 「칼과 칸나꽃」이고 다른 하나는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입니다. 이 두 시 모두 슬픔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위로되고 새로운 감정으로 변하는지에 대해 노래합니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잃은 주인공 펀이 슬픔을 이겨내고 주체적으로 노매드의 길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죠. 그럼 시를 함께 감상해보겠습니다. 먼저 최정례 시인의 「칼과 칸나꽃」입니다. 


칼과 칸나꽃


너는 칼자루를 쥐었고

그래 나는 재빨리 목을 들이민다

칼자루를 쥔 것은 내가 아닌 너이므로

휘두르는 칼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나이므로


너와 나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

막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칸나꽃이 칸나꽃임을 이기기 위해

칸나꽃으로 지고 있다


문을 걸어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날 또한 슬플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걸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상갓집의 국숫발은 불어터지고

화투장의 사슴은 뛴다

울던 사람은 통곡을 멈추고

국숫발을 빤다


오래가지 못하는 슬픔을 위하여

끝까지 쓰러지자

슬픔이 칸나꽃에게로 가

무너지는 걸 바라보자


최정례, 『레바논 감정』 중 「칼과 칸나꽃」


이별의 능력

(...)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간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


김행숙, 『이별의 능력』 중 「이별의 능력」 일부


이렇게 두 시를 통해 영화 <노매드랜드>를 이별에 대한 이야기, 슬픔의 유통기한에 대한 이야기로 새롭게 감상해보았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드레싱은 꿈꾸미가 가져온 EBS 다큐멘터리 <건축탐구 집>입니다. 먼저 프로그램 소개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EBS 다큐멘터리 <건축탐구 집> 프로그램 소개 (출처: EBS 홈페이지)


위 소개처럼 <건축탐구 집>은 건축학적으로 흥미로운 집 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집들을 찾아다니며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집이 지어지게 된 독특한 사연 등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2019년 4월부터 방송을 시작해 유튜브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앞서 '투비오어낫투비(TO BE OR NOT TO BE)'에서 꿈꾸미는 <노매드랜드>가 집에 관한 영화라고 보았죠. 영화 <노매드랜드>가 ‘움직이는 집’을 보여주는 반면 <건축탐구 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특정 공간 위에 지어진 집을 소개합니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는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겠죠. 100개의 집이 있다면 그 100개의 집 모두 정답인 것이죠. 집에 대해서 또다른 고민을 하게 해줄 다큐멘터리 <건축탐구 집>을 추천하며 오늘의 <차이나는무비 플러스>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또다시 세상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좋은 영화로 돌아오겠습니다! 영화 이야기에 인문학을 얹었다! 한중일 횡단 토크쇼 <차이나는무비 플러스!>




ㅣ팟캐스트ㅣ
 더 자세한 내용을 들으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podbbang.com/ch/13254        


또 있습니다.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podty.me/cast/182234 


ㅣ네이버 오디오 클립ㅣ

오디오클립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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