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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란 Dec 27. 2020

왕가위 감독의 <2046> 영화 속  '홍콩의 정체성'

영화 <해피 투게더>와 <2046>을 중심으로

 



왕가위 감독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다. 그 중 내가 본 영화는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2046> 등이다.      

'사랑' 주제로 정리하자면, <중경삼림>은 통제될 수 없는 인연에 대한 갈망(사랑)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고, <해피 투게더>는 함께할 수 없는 연인에 대한 갈망(사랑)을 그린 영화, <화양연화>는 미완의 갈망(사랑)에 대한 포기가 결코 패배가 아님을 알려주는 영화다. 영화 속 ‘이별 연습’ 장면을 떠올리면 이들의 포기는 양보이며 용기다. 그래서 <화양연화> 영화는 애절해서 더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2046>은 <화양연화>의 연결선상에 있는 영화로, 주인공 차우가 과거와 현실 미래를 오가며 인간의 갈망(사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왼쪽 <중경상림> 포스터, 오른쪽 <해피투게더> 포스터


<화양연화> 포스터

 

여기서 잠깐! 

최근 홍콩 사태(2019년 송환법에 이어 2020년 국가보안법  문제 등)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봤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면 '남녀의 사랑'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홍콩과 중국의 관계'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1998)와 <2046>(2004)을 중심으로 영화 속 홍콩의 의미를 몇 가지 찾아보고자 한다. 두 영화의 공통된 소재는 ‘홍콩’과 ‘사랑’이라 할 수 있다. ‘홍콩’이라는 공간 속에서 생겨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는 왕가위 감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홍콩이라는 불안정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불안정한 주인공들의 사랑을 보다 보면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홍콩과 중국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자. 홍콩은 1842년 영국과 중국 간의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 할양되면서 영국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1949년 중국 대륙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주의와 뜻을 달리했던 정치적 망명자들이 홍콩과 대만으로 이동했고, 이후 홍콩에는 여러 이유로 대륙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섞여 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은 홍콩 사람들에게는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해피 투게더>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직후인 1998년에 개봉된 영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담고 있다. 

        

<2046> 스틸컷 

두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왕가위 감독은 홍콩이라는 공간을 통해 ‘홍콩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한다.      

그의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감독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다.  왕가위 감독은 상하이 출신 홍콩인이다. 당시 부모가 한 자녀만 데리고 홍콩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한 정책 때문에, 왕가위 감독은 다섯 살 때 부모와 함께 홍콩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의 형과 누나는 상하이에 남았는데 문화대혁명이 발발하면서 중국과 홍콩 국경이 닫히자 1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왕가위 감독은 영화 속에서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홍콩인과 홍콩 토박이들이 유지해온 그들 나름의 언어, 음식 문화, 생활 방식 등은 물론 이미 중국 대륙이 경제적·정치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정체성을 영화로 기록하고 기억하려고 했을 것이다.               

‘사랑’이 주제이고 ‘홍콩’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왕가위의 또 다른 작품으로 <중경삼림>(1994)이 있다.  <중경삼림>은 그야말로 홍콩 그대로를 말해주고 있다. 캘리포니아 드림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불안하고 불안정한 홍콩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직후에 개봉된 <해피 투게더>는 두 주인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중국과 홍콩의 상황을 극명하게 다르게 그리고 있다. 2000년에 개봉한 <화양연화>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관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해피 투게더>와 <2046>은 모두 주인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는 중국과 홍콩이라는 두 지역의 내적 갈등으로 비유할 수 있다. 장국영(보영)과 양조위(아휘)는 동성애자다. 모두 홍콩을 대변하는 중국 내 소수자 그룹에 속하는 ‘홍콩인들’을 비유하고 있다. 둘 다 주인공들의 성격이 정반대이고, 서로 좋아하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중국과 홍콩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음의 작용은 마찬가지로 근원적인 것이다. 홍콩에 대해 50년을 약속한 ‘일국양제’에서 20년 남짓이 이 시점에서 이미 ‘일국일제’로 향해 가려는 중국의 정치가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인용: 이병민, <웡카와이 감독 영화 속의 홍콩: 영화 <해피 투게더>와 <2046>을 중심으로>)                


여기서 보면 ‘일국양제’를 주장하는 홍콩의 모습과 ‘일국일제’로 향해 가려는 중국의 본심을 두 주인공을 통해 표현해내려고 했다. <해피 투게더>의 원제는 <춘광사설(春光乍洩)>이다. 뜻은 ‘구름 사이로 잠시 비치는 봄 햇살’이라고 한다. 2000년에 개봉한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아래 <중경삼림>에 이어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그리고 <2046> 모두 통한다.     


셋째,  <2046> 영화에서 홍콩의 정체성이 떠오른다.      

2046년은 일국 양제의 마지막 해로 홍콩의 자치권을 인정해주는 마지막 해이다. 영화 <2046>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그린다. 정치나 역사와 무관해 보이는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과 슬픔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화양연화> 스틸컷

          

“2046년은 주지하듯 중국이 홍콩의 원래 체제를 인정한다고 약속한 50년의 마지막 해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해이다. 하지만 왕가위는 그렇게 심각하게 의미 부여를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는 반사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화양연화>에서 또는 <2046>에서 방 번호를 정했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참고: 왕가위, 존 파워스 지음, 성문영 옮김, <왕가위 : 영화에 매혹되는 순간>, 씨네21북스)            


그렇다면 ‘2046’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2046’이라는 숫자는 <화양연화>에도 나온다. 화양연화에서 두 주인공이 함께 있던 호텔의 방 번호가 2046호임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한다.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이 세 영화를 한데 묶은 영화가 <2046>이라고 한다. <중경삼림>은 (혼란으로 가득한) 홍콩 그 자체를 설명하고 있으며,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중국과 홍콩의) 사랑을 가리킨다. 홍콩이 완전히 중국으로 반환되는 마지막 해(2046년)와 영화 <2046>은 결국 현재 홍콩이 처한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홍콩 반환 직전의 해에 불안함,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 영화 속에는 주인공이 2046호에 머물지 못하고 2047호에 투숙한다. 2047년은 홍콩 반환 이후의 해로 새로운 환경 속에 있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다(영화 속 주인공이 쓴《2047》소설을 보면 느껴진다). 2047에도 불안감이 내포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시 보니 왕가위의 모든 영화의 숫자는 다 의미가 있어 보인다.  <중경삼림> 영화 속에서 호텔방이 702호라는 숫자가 나온다. 홍콩 반환일은 1997년 7월 1일이었다. 그리고 통조림 유통기한에도 1994년으로 나온다. (이 글을 쓰다보니 숫자에 집착해 더 의미를 부여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해석이다.)      

         


2020년 8월 홍콩에서 지오다노 창업주 지미 라이(Jimmy Lai, 1948년생)가 체포되면서 시끌한 적이 있었다.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을 적용해 지미 라이를 붙잡았지만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홍콩 민주진영의 거센 반발을 의식해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과 중국의 관계가 가열되고 있구나 싶었다.    

                

지오다노 창업주 지미 라이 (제공:뉴스1)

         

지미 라이는 어릴 적 중국 광둥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 났으며 12살 때 낚시배를 타고 홍콩으로 밀입국했다.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하고 의류업을 통해 재산을 모은 이후 라이는 미디어에 과감히 뛰어들어, 홍콩과 중국 본토 리더십에 비판적인 신문사 <빈과일보(蘋果日報·영문명 Apple Daily)>를 창간했다. 1989년 중국 정부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이후 언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넥스트매거진(현재 넥스트디지털)과 <빈과일보>를 창간해 중국 지도부를 비판하는 반정부 성향의 기사를 가감 없이 내보냈으며, 2014년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과 2019년 벌어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지미 라이의 행동은 중국 당국에서 보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몇 편이 지금의 현재 홍콩이 처한 정치적 사회 시기와 더불어 다시금 되새겨보게 한다. 



<화양연화> 글을 좀더 읽고 싶은 분은 다음 글을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chran71/5



또 <중경삼림> 글을 좀더 읽고 싶다면? 

https://brunch.co.kr/@chran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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