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의 책문화공간 이야기1
가까이 있는 일본에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헌책방 거리가 있다. 일본에서 세계 제일의 고서점 역사를 지니게 된 곳은 다름 아닌 간다(神田) 진보초(神保町) 헌책방 거리(이하 ‘진보초 서점거리’로 표기)이다. 진보초 서점거리는 형성된 지가 벌써 한 세기를 넘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현재 진보초에는 33개의 서점과 141개의 헌책방이 있고, 출판사 및 인쇄 제본업자까지 포함하면 382개의 사업자가 출판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柴田 信, 2018).
진보초 서점거리의 형성 배경
간다는 도쿄도(東京都) 치요다구(千代田区) 북동부에 위치한 지역의 이름이다. 1947년 도쿄도의 구 개편 이전의 행정구역이었던 도쿄도 간다구 지역이다. 이 지역에 서점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이곳에 대학들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지명으로 말하면 이 진보초 사거리 부근은 ‘간다 진보초(1번가~3번가)’라고 하지만 이 주변을 아는 사람들은 간단히 ‘진보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진보초 고서점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간다 진보초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부에도 펼쳐진 고서점들을 포함한다. 이곳에는 메이지 10년(1880년) 무렵부터 메이지대학(明治大学), 주오대학(中央大学), 니혼대학(日本大学), 센슈대학(専修大学)이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교과서를 비롯한 책 수요가 늘어 서점이 하나둘 들어서게 되었다. 이때부터 대학생들에게 이념서적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 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이 교외로 이사하였으나, 메이지대학과 오차노미즈대학(お茶の水大学)은 이곳에 있다.
진보초가 지형적으로 변화, 발전한 요인에는 두 가지 큰 자연재해가 있었다. 하나는 1913년 화재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1923년 관동대지진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진보초 지역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진보초 서점거리는 크게 변화한다.
첫 번째 변화 시기는 1913년부터 1923년까지이다. 1913년 진보초는 화재 사고를 당한다. 이 부근이 전소되었는데, 이후 고등학교 교사 이와나미 시게오가 이곳에 고서점을 연 것이 고서점 거리의 시초이며, 이 고서점은 그후 이와나미 서점의 시작이 된다. 이와나미 서점이 이곳에 처음 문을 열면서 고서점 거리를 형성한 것이다. 대화재 전의 진보초는 스즈란 거리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지만, 대화재 후에는 현재 진보초1가와 진보초2가의 야스쿠니 거리 근처로 중심지가 이동하였다. 진보초1가 남쪽으로의 이전과 형성은 대화재부터 8년 뒤인 다이쇼 10년(1921년)까지 계속되었다. 같은 해에 진보초 일대에 125개의 가게가 생겨났으며, 그중 30개가 진보초1가 남쪽에 생기고 야스쿠니 거리를 따라 책방이 늘면서 현재의 헌책방 거리가 형성된다.
두 번째 변화 시기는 1923년부터 1955년까지이다. 1923년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에 의해 헌책방은 다시 손실되었다. 하지만 복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특히 잇세이도(一誠堂)는 피해 뒤 16일째에 재빠르게 천막을 쳐서 영업을 재개하였다. 다른 헌책방들도 판자를 설치해서 영업을 계속하였다. 출판업계와 인쇄업계뿐만 아니라 주변 대학과 도서관도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헌책에 대한 수요가 컸고, 정부의 부흥 계획이 실시되면서 헌책방은 그 특수성을 가장 먼저 받을 자격을 얻었다. 이렇게 헌책방이 점차 늘다가 현재와 같은 고서점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한 번의 큰 변화 시기는 1955년 이후로 본다. 1955년에 서점들이 연합해 시작한 헌책 축제가 현재까지도 매년 10월 말 진보초에서 개최되고 있다. 또한 1953년 이와나미 서점을 비롯한 슈에이샤(集英社), 쇼가쿠칸(小學館) 등 많은 출판사가 모여 진보초에 출판클럽 빌딩을 설립하기로 한다(백원근, 2019).
1) 야구치 서점(矢口書店)
영화 · 연극 · 연예 · 시나리오 서적 전문 서점이다. 1918년 창업한 이 서점은 오랜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른 만큼 품격이 있다. 개업 초기에는 철학서와 경제 서적을 다루었지만, 1975년부터 선대가 좋아했던 ‘영화 · 연극 · 희곡 · 시나리오’ 분야를 취급하게 되었다. 영화 마니아나 전문 배우, 브로셔를 구입하려는 소년 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또한 영화에 관한 잡지도 소유하고 있다. 근대영화사(近代映画社)에서 1945년에 창간된〈근대 영화〉도 있고, 유문사(有文社)에서 출간한〈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사〉도 있다. 영화배우들의 수필, 영화감독들의 평론서, 시나리오 등 지난 30년간 야구치 서점이 갖춰온 구색이 한눈에 느껴진다.
2) 오야 책방(大屋書房)
‘에도 시대’의 서적을 취급하는 전문점이다. 야스쿠니 거리와 메이다오 거리가 교차하는, 스루가다이시타 교차로 근처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이 오야 책방이다. 간판에는 우키요에 화가로 유명한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아카후지’가 그려져 있고, ‘에도 시대의 고서, 고지도, 우키요에 판화’의 분위기가 가게 외관에서부터 느껴진다. 가게 안에 예쁘게 진열된 책들을 통해서도 ‘에도 시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현재 4대째 이 서점을 운영 중인 서점 주인의 딸 고케쿠리 씨는 특히 우타가와 쿠니요시(歌川國芳)나 그의 제자 츠키오카 요시토시(月岡芳年)의 작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3) 잇세이도 서점(一誠堂書店)
고서점계의 명문으로, 창업한 지 100년이 넘은 노포이다. 초대 사카이 우키치(酒井宇吉) 씨가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에서 1904년에 창업하고 3년 후에 진보초로 이전했다. 전문 분야는 서양서적을 포함하여 문과 계열의 고서적 전반이다.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는 주요 거래처에는 일본 내 각 대학이나 도서관과 함께 유럽의 주요 대학, 도서관 등의 이름도 있다. 1931년에 세워진 서점 건물, 입구 상부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대리석이 깔린 1층 실내 바닥 등에서 이 서점의 역사가 느껴진다. 서양서적, 미술서, 일서 등을 취급하는 2층 바닥은 손질이 잘된 나무로 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책을 찾아 밟았을 바닥에서 오래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4) 오쿠노카루타점(奥野かるた店)
카루타를 중심으로 한 ‘놀이’ 전문점이다. 3대 점주인 오쿠노 노부오(奥野伸夫) 씨의 할아버지가 메이지 시대에 장기짝 등을 파는 장사를 처음 시작하였고, 카루타를 파는 장사는 2대 점주가 다이쇼 10년(1921년)에 시바 공원에서 시작했다. 간다에 점포를 둔 지는 27년이 넘었다. 긴 역사를 가진 놀이 전문점인 것이다.
서점의 안쪽에는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백인일수(百人一首)’나 일본 각지의 화투 지방권 원판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층에는 카루타를 포함한 실내 게임 등을 모아놓았다.
5) 기타자와 서점(北沢書店)
1902년에 간다 진보초에서 창업한 기타자와 서점은 1955년에 서양서적 전문점이 되었다. 이후 50년 이상 인문과학 분야의 서양 고서를 판매해 왔다. 샹들리에의 은은한 빛이 비추는, 역사 깊은 서양관의 서재와 같은 책장이 가게 일각에 배치되어 있다. 최근에는 영국 미술 등 외국 서적을 중심으로 다양한 고서를 모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튤립, 장미, 백합 등의 식물을 모티브로 다룬 벽지나 커튼 천 등으로 한 세대를 풍미하고 100년에 걸쳐서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월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에 관한 것이 있다.
또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미술평론가이자《근대화가론》,《건축의 일곱 가지》등을 집필한 존 러스킨(John Ruskin), 18세기 말~19세기 낭만주의의 화가이자 서양회화사 최초의 본격적인 풍경 화가로 꼽히는 영국의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에 관한 것도 있다.
6) 우치야마 서점(內山書店)
진보초 대로변 뒤 스즈란 거리에 있는 중국 전문 서점이다. 우치야마 서점의 역사는 1917년 상하이에서 시작된다. 1935년 10월 10일, 우치야마 간조(内山完造)의 동생 우치야마 가기치(内山嘉吉) 부부가 소시가야오쿠라 역(祖師ヶ谷大蔵駅) 앞에 열었다. 우치야마 간조는 중국에서 일본 책을 팔았고, 우치야마 가기치는 일본에서 중국 책을 팔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에 우치야마 간조와 우치야마 가기치가 루쉰(魯迅)과 관계를 맺었던 것을 계기로 중국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1968년, 진보초의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우치야마 가기치는 우치야마 서점을 아들 우치야마 마세(内山篱)에게 물려주었고, 우치야마 마세는 자신의 아들 우치야마 신(内山深)에게 물려주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진보초에는 고서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초에 가면 꼭 방문해보길 바란다.
1) 도쿄도 서점(東京堂書店)
진보초 대로변에서 한 블록 들어간 곳에 위치한 이 서점은, 진보초의 터줏대감인 대운당 서점(大雲堂書店)의 대표 오쿠모 겐지(大雲健治) 씨가 서점에 북카페를 접목시켜 성공한 곳이다. 2014년부터 서점 안에 카페 공간을 마련해 인기를 많다. 1층 카페는 1인용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 홀로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서점은 책의 진열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2층에는 책을 구매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책 읽는 공간이 있는데, 사람들은 1인용으로 배치된 편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도쿄도서점이 책분류도 맘에 들었고, 카페에서 작업하기도 좋았던 곳이라 강추한다.
2) 산세이도 서점(三省堂書店)
1881년에 개점한 산세이도 서점은 진보초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140만 권에 달하는 책이 분야별로 찾기 쉽게 배치되어 있다. 이 서점은 ‘아라이(新井)상’으로 유명하다. 아라이는 이 서점에 다녔던 영업본부의 문학담당 직원 아라이 미에카(新井見枝香)를 가리키는데, 그가 6개월 동안 읽은 책 중 제일 재미있던 책을 기준으로 수상작을 선정했다. 아라이상은 2014년 7월에 시작되었으며, 아라이 씨가 주재하는 개인상이다. 아라이상 이벤트 기간에는 나오키상 수상작보다 더 많이 팔리는 작품이 나오기도 하였고, 선정된 책이 영화화되면서 점점 더 알려지게 되었다.
3) 책거리(チェッコリ) 서점
도쿄 진보초에 있는 유일한 한국문학책방이다.
'책거리' 북카페는 2015년 한국인 김승복씨가 운영하고 있는 책방으로, 이곳 카페에서 한국의 떡, 한과, 오미자 등의 전통차를 맛볼 수 있다.
한국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한일 문화교류의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어 교재, 한국의 단행본 등 한국 관련 책을 살 수 있으며, '쿠온'이라는 한국 관련 서적 전문 출판사를 열어 박경리, 황석영, 한강, 박민규, 정세랑 등 다양한 한국문학 작품을 일본에 번역출판하기도 하였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지난해 ‘2022 한국문학번역상’ 공로상 수상자로 일본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를 선정했다. 김 대표는 2019년부터는 작가, 북 디자이너, 번역가 등이 독자들과 만나는 K-북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진보초 서점거리는 100년 넘게 현재까지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호에 이어가도록 하겠다.
<참고자료>
백원근 (2019). <기획회의>, 482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최준란 (2020). <진보초 서점거리의 지속 요인 연구>. 한국출판학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