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의 책문화공간 이야기
일본의 이마리시(伊万里市)는 규슈 서북부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로, 예로부터 아리타야키 도자기로 유명한 마을이다(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마리 아래에 아리타, 아리타 오른쪽에 다케오시가 있다).
이마리 도시의 중앙에 '이마리 시민도서관'이 있다. 시민과 함께 만든다고 해서 시민도서관이라 한다. 대체 시민과 뭘, 어떻게 만들었길래 도서관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그래서 결국 나는 큰 맘 먹고 다녀왔다.
이마리 시민도서관은 1995년 7월 7일에 건립되어 현재 25년(거의 3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 입구부터 최근 건물은 아니구나 느껴진다. 하지만 도서관을 조금이라도 둘러보면 다른 도서관과 다르구나를 알게 된다.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면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지금은 도서관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새롭지 않지만 이마리 도서관 개관 초기에는 공공도서관으로서 흔치 않았다고 한다.
개방감이 있으며 서가가 낮아서 보기 편하다. 일본 전통양식 방 형태의 서재처럼 되어 있는 책상이나 중고생이 그룹으로 사용할 수 있는 책상 등, 방문객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장소를 고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 머물며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게 했으며 책장 사이사이에도 좌석을 두어 책을 골라 바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또 마치 집의 개인 서재에 있는 것과 같은 조명 등을 설치해놓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동서가 놓여 있는 구역 안쪽에는 ‘노보리가마(산비탈에 설치한 도자기 굽는 가마)’라고 불리는 방이 있다. 이곳에서는 동화 구연 등이 열리는데, 조명을 어둡게 하면 천장에 은하수와 별자리가 나타나도록 되어 있어 아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입구 근처에는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고 장기나 바둑을 둘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놓아 은퇴한 어르신들의 쉼터로 사용된다. 눈이 불편한 사람에게 책을 읽어주는 ‘낭독코너’에는 갓난아이를 데려와도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겨울에는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담요도 구비해놓았다. 이 모두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설치된 것들이다. 도서관을 설계한 데라다 요시로(寺田芳朗)는 끊임없이 시민들의 의견을 설계도에 반영하여 사용하기 편리한 서가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한 공간을 많이 둠으로써 기존에 없었던 발상의 ‘체재형 도서관’을 완성했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마리 시민도서관을 시찰하기 위한 도서관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멀리서도 찾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 주민과 협력해서 시민이 만들어 나가는 도서관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시민들은 도서관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도서관 만들기 추진 모임’이라는 명칭으로 1986년부터 9년 동안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을 펼쳐왔다. 이마리 시민도서관이 생기기 전에도 도서관은 있었지만 협소했다. 그래서 자녀를 둔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도서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뜻을 모아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회원들은 규슈 각지의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면서 둘러보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도서관에서 어떠한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 강의를 들으며 도서관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 등을 학습하였다. 또 건설 계획을 놓고 행정단체, 시민, 건설업체가 함께 의견을 교환했다. 도서관을 사용할 주체인 시민들을 건설 단계부터 참여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탄생한 도서관을 시민들은 ‘우리들의 도서관’으로 지키고 키워나가고 있다.
시민들이 이마리 시민도서관에 무한한 애정을 쏟으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도서관 준공식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도서관 생일 행사’다. 1993년 2월 26일은 이마리 시민도서관의 준공식을 거행한 날인데 준공식이 끝나고 시민 봉사자 200여 명이 모여 만들어온 음식을 즐기며 도서관이 무사히 완공되고 발전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당시 시장이 이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오늘을 도서관 생일로 정합시다”라고 제안하여 2월 26일이 도서관 생일로 정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매년 이날이 되면 시민들이 음식을 만들어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행사를 한다.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곳에 봉사단체가 업무를 보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마리 시민도서관을 뒤에서 지원하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단체 ‘도서관 친구 이마리’가 사용하는 공간이다. 이 봉사단체는 1986년부터 9년 동안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시민운동을 펼쳐온 단체 ‘도서관 만들기 추진 모임’이 도서관이 개관된 1995년 9월 ‘도서관 친구 이마리’로 새롭게 이름을 바꿔 발족한 것이다. 지역 주민 약 400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현재 5개의 위원회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야기 낭독회, 이마리시 관련 작품 제작, 잔디 손질, 생화 전시, 가정 청소, 합창단 활동 등인데 각각의 필요에 따라 독자적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도서관 친구 이마리’ 외에도 총 12개의 단체가 도서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시의 보조금을 일체 받지 않고 회비와 기증받은 헌책을 판매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도서관 활동에 끊임없이 제안을 하며 도서관의 크고 작은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도서관 직원은 시민과 협동 관계를 유지하며 업무를 처리한다. 이마리 시민도서관은 공공도서관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 지역 주민이 찾아오는 문화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마리시가 시민들과 함께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것은 크게 ‘어린이 독서활동 추진’과 ‘지역 교육’이다. 독서 모임을 통해 소외 없는 도시를 선언하고 아이들의 독서 활동 등 다양한 주민 참여 행사를 추진하며 여러 교육을 펼치고 있다. 또한 주목할 점은 도서관 건립 전의 모임이 도서관 건립 후 명칭을 바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봉사단체 ‘도서관 친구 이마리’와 12개 단체가 도서관 직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이마리 시민도서관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이마리 시민도서관은 지역공동체와 협력하여 지역의 작고 생동감이 넘치며 진정성 있는 문화창출을 통해 시민들의 가치관 형성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독서 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의 바른 인성을 키워 건전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직장인들에게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적극 지원하여 안정적인 삶의 기반이 되는 경제활동을 돕는다. 도서관을 주축으로 개개인의 성장(자립 자율)과 성숙, 자기실현을 이끌어 결과적으로는 이마리시가 소외, 따돌림 없는 건강한 도시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사람을 만들고, 마을을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에, 나는 이마리 시민도서관을 다녀왔다. 이마리 시민도서관을 직접 방문하고나서야 그동안 이마리 도서관에 관한 기사가 사실 그대로임을 알 수 있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도서관이다. 건물이 멋져서가 아니다. 도서관 입구부터 생동감있는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져서다. 그래서 좀더 궁금한 게 생각나서 도서관 사서분께 관장님과 인터뷰 가능한지 요청드렸다. 갑자기 요청드린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관장님께서 기꺼이 시간을 내주셨다. 오늘 쓴 모든 이야기는 관장님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끝으로 관장님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여쭤봤더니 도서관이 거의 30년이 되다 보니 시설이 낙후되어 리뉴얼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조만간 도서관 리뉴얼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