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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기자의 긁적끄적 Jan 26. 2019

We all lie

스카이캐슬, '남얘기'와 '내얘기' 사이에서

비좁은 '뒤주 책상'에 딸을 가두고, 대형 피라미드 모형을 집에 놓고 '꼭대기'를 강조한다. 수억 원 하는 입시 컨설턴트를 붙여 학교 공부부터 사생활까지 엄격히 관리한다. '스카이캐슬' 속 상위 1% 학부모들의 사교육 이야기다. 실제 현실이라는 증언이 이어지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 직접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은 '저 정도'까지 하진 않기 때문이다. '우린 저 정도는 아니다'라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극에 나타난 상류사회의 비인간적 사교육 실태에 시청자로서 마음껏 분노한다. 그런데 이대로 좋은 걸까.


‘스카이캐슬’이 자극하는 감정은 한국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욕망인 '학벌 욕망'이다. 아무리 능력중심사회라지만 아직까지 학벌은 취업과 향후 승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 요인이다. 사교육을 안 할 수가 없다. 2017년 사교육비 지출은 18조원을 넘었다. 그나마도 공평하지 못하다. 같은 기간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45만5000원)는 월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 사교육비(9만3000원)의 4.9배에 달했다. 부모 세대의 학벌이 그대로 대물림되고, 이는 곧 부의 대물림을 의미한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공허한 경구가 된 지 오래다.

문제는 누구도 이 양극화의 수레바퀴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더욱 강화하길 원한다. 작년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이 그랬다. 시험지 유출은 당연히 지탄받을 일이다. 그러나 모두가 '공정한 경쟁의 훼손'에만 분노했다.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좋은 내신을 얻으려 했던 이유에 대한 회의는 실종됐다. 정시 확대 논의도 마찬가지다. 학생부종합전형 불신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학종이 '비리 전형'이 된 건 결국 모든 입시가 명문대 입학의 실현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고민이 없다면 아무리 공정을 외쳐도 시험만능주의 논리를 강화하는 데 그친다.

경쟁의 기본 원리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다. 승자가 있다면 당연히 패자도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경쟁의 패자가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하나의 경쟁을 중심으로 짜여선 안 된다는 말이다. 입시로 말하자면, 입시 외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그 지점에서 실패했다. 매년 수능 이후 많은 수험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다. 공정한 경쟁을 만들면 '내 아이'도 그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입시경쟁 자체에 대한 의심을 지우고 부조리의 재생산에 꾸준히 기여한다.


'스카이캐슬'은 극적으로 다듬어진 상류층의 잔인한 사교육 전쟁을 송출한다. 그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는 저 정도는 아니야'라며 안심하기 쉽다. 그러는 동안 입시지옥이라는 실재는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되고, 그를 만든 공동체 구성원의 책임감이 들어설 자리도 점점 좁아진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저 정도’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참에 공정성 신화와 시험만능주의, 우리 안의 욕망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 질문 없이 '우리는 저렇지 않다'고 위안해봐야 모두 거짓말(We all lie)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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